brunch

매거진 Book Review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식 Dec 28. 2021

사우디아라비아 통치기본법

이슬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헌법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모시는사람들

2016년 5월 25일


얼마 전 자료를 검색하던 중에 사우디 헌법인 ‘통치기본법(The Basic Law of Governance)’을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에서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중동연구소에서는 2010년부터 10년간 해외지역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협력체(GCC) 6개국의 헌법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명칭은 ‘두 성지 메카ㆍ메디나의 수호자(The Custodian of Two Holy Mosque Mecca and Madinah)’이다. 자국이 ‘이슬람국가’이고 그 ‘이슬람의 중심’이라는 선언이다. 자국이 이슬람국가라는 정체성은 ‘통치기본법’ 곳곳에 드러나 있다. 자국은 이슬람국가이고, 국가의 모든 권력은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출발하고, 그래서 이슬람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첫 번째 목표이며, 정부의 모든 정책은 이슬람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군대도 이슬람 신앙과 두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파드국왕이 재임하던 1992년 3월에 제정된 총 9장 83조에 이르는 ‘통치기본법’은 주석을 포함해도 30분이면 읽을 수 있을 만큼 짧다. 이슬람국가로서의 왕국의 통치 구조와 근간이 중심을 이루기도 하지만 뜬금없이 초두에 국기(國旗)에 대한 규정(제3조)이 나오는가 하면 통신 감시와 언론 규제가 일상화 되어 있는 국가에서 통신 수단을 규제할 수 없다는 규정(제40조)은 아이러니 하다.


이슬람 제일주의


통치기본법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은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이슬람 주권국가이며, 이슬람 경전인 ‘쿠란’과 예언자의 가르침인 ‘순나’가 헌법(제1조)이고, 정부의 권력은 ‘쿠란’과 ‘순나’에서 나올 뿐 아니라 ‘쿠란’과 ‘순나’가 모든 법률을 지배한다(제7조)고 규정한다. 아울러 국가는 이슬람 신앙을 보호하고 이슬람 종교법인 ‘샤리아’를 실행하는 존재(제23조)로서 두 성지를 정비하고 관리해 순례자들이 ‘대순례(핫지)’와 ‘소순례(움라)’를 안전하게 행할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다(제24조)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국왕은 단지 이슬람 규범인 ‘샤리아’에 부합하는 국가정책을 수행하고 ‘샤리아’에 의거해 국가를 보호하고 감독하는 존재(제55조)일 뿐이다. 국민의 첫 번째 의무도 이슬람 신앙(제34조)이다.


군대가 존재하는 목적 역시 이슬람 신앙과 두 성지를 수호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국가를 수호하는 건 그 다음이다(제33조). 사우디 군대는 국방부(Ministry of Defence) 휘하의 육군ㆍ해군ㆍ공군 이외에 국방수호부(Ministry of National Guard) 휘하의 국방수호군(National Guard)을 두고 있는데, 국방부 휘하 군대는 헌법에 따라 이슬람 신앙과 성지와 국가를 보호하는데 첫째 목적을 두고 있는데 반해 국방수호군은 쿠데타와 같은 내부 위험요인으로부터 왕실인 사우드 가문을 보호하는데 첫째 목적을 두고 있다. (국방부 휘하에 육군ㆍ해군ㆍ공군 이외에 대공방위군과 전략미사일군이 있다.) 참고로 이 책이 개정된 2016년 당시 병력은 227,000명 정도로 추산한다.


처음 사우디에 부임했을 때 내국인 취업자가 상당히 적은 원인 중 하나가 남자 대학생 상당수가 이슬람을 전공해 채용하려고 해도 마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교육도 군대와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에게 이슬람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 사회에 유익한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 다음(제13조)인 것을 보니 의아하게 보인 모습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이밖에 제2조에서는 라마단 끝난 후 이어지는 알피트르 축제와 순례절(핫지) 끝난 후 이어지는 알아드하 축제 기간을 두 명절로, 헤지라력을 국가의 역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3조에서는 국기의 색과 규격, 그리고 국기 중앙에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문구를 두며 그 아래에 칼집에서 뽑은 칼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 조문으로는 이례적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이슬람국가로서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조문 끝에는 독특하게도 “국기는 결코 뒤집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 눈길을 끈다.


국가의 통치구조


사우디아라비아는 ‘군주제(monarchy) 왕국’으로 초대 압둘아지즈 국왕의 직계자손만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제5조). 아직도 세계에 많은 왕국이 존재하고 있지만 대부분 입헌군주국(constitutional monarchy)이고 인근 GCC 국가들은 실질적인 군주제 국가이기는 하지만 국가를 ‘왕국(kingdom)’으로 부르거나 군주를 ‘국왕(king)’으로 부르지 않는다.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군주를 Emir로, 아랍에미리트는 대통령으로, 오만은 술탄으로 부른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는 명실 공히 ‘왕국’으로 ‘국왕’이 다스린다. 그래서 사법부ㆍ행정부ㆍ입법부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모두 국왕의 지배를 받는다(제44조). 당연히 각 부가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입법부인 국회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슈라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슈라위원회는 공식적으로 국왕의 자문기구로 법을 입안하고 제안만 할 수 있을 뿐이고 모든 법안은 왕명(royal decree)으로 선포된다. 최근에는 법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어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슈라위원회는 국가 예산을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장관을 불러 질의하거나 자문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결정권한은 없다. 결정적으로 국왕이 슈라위원을 지명하고, 아울러 해산과 재구성 권한도 국왕에게 있다.


우리나라는 법무부와 검찰청은 행정부에 법원은 사법부에 속해 있어 서로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지만 엄격히는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입법부나 사법부의 권한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사우디 사법부의 정점에 있는 최고사법위원회는 법무부장관, 법무부차관, 대법원장, 상고법원장 4명, 검사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원장은 법무부장관이 맡도록 되어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법무부장관의 휘하에 들어가 있는 구조이다. 하긴 사법부ㆍ입법부ㆍ행정부가 모두 국왕의 지배 아래 들어가 있으니 삼권분립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통치기본법은 모든 국민(가족구성원)에게 이슬람 신앙 다음으로 통치자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다(제9조). 명실 공히 군주제 왕국이라는 말이다. 또한 국민을 국가의 위대한 역사에 대해 자긍심을 갖도록 양육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제9조) ‘조국을 사랑하며 조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제13조). 국민으로서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헌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전제주의 왕권국가가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국왕은 실질적으로 충성위원회에서 선출한다(제5조). 엄격히 말하자면 충성위원회는 왕세자를 선출할 뿐이지만 국왕이 서거하면 왕세자가 자동으로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니 왕세자 선출이 곧 국왕 선출인 셈이다. 국왕은 왕세자에게 왕권 일부를 위임할 수 있고(제65조) 국왕이 외국 방문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국왕을 대신해 국정을 수행할 뿐 아니라 왕령(법)도 선포할 수 있다(제66조). 이때 왕령에 왕세자가 국왕을 대신해 선포했다는 내용을 밝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국가재정 관리


사우디는 대표적인 산유국으로 국가 수입의 절대 부분을 석유로 충당한다. 이는 지표ㆍ지하ㆍ해저를 막론하고 국가의 통제 아래 있는 영토나 영해에 존재하는 모든 부와 이에 따른 수입이 국가 소유라고 선언한 제14조에 따른 것이다. 사실 사우디 국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람코의 수입이 국가재정에 어떻게 유입되는지 궁금했는데, 이 조문을 보니 아람코는 그저 국가의 위임을 받아 석유개발과 관련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자원개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제15조)을 보면 석유를 비롯한 사우디의 지하자원은 모두 국가 소유인 것이다.


조세는 법률로 정하며(제20조), 흔히 종교세로 불리는 ‘구빈세(救貧稅, 자카트)’를 징수해 ‘샤리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제21조). 자카트는 신앙고백ㆍ기도ㆍ금식ㆍ순례와 함께 이슬람 5대 의무의 하나로, 무슬림들이 매년 정해진 비율만큼의 재산을 신앙공동체에 현금이나 동물이나 곡식으로 내놓는 전통이 있었다. 자카트는 가난한 사람, 여행자, 마음의 위안이 필요한 사람, 전쟁포로나 노예, 신앙종사자에게 사용하며, 요즘은 대체로 2.5%를 부과한다.


기타


제25조는 “국가는 아랍공동체와 이슬람공동체의 희망을 실현시키고 관계를 강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근 아랍공동체나 이슬람공동체와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는 사우디의 현재 상황과 동떨어져있어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생각해 보니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면서도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머쓱했다.


사우디에 십년 넘게 살면서 사우디 정부로서 껄끄러운 외신기사가 차단되어 있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았다. 그럴 때마다 한국 언론에 전재된 기사를 확인하거나 독일에 있는 자식에게 링크를 보내 기사를 메일로 받아보기도 했다. 그런 나라의 헌법에 통신수단이 보호를 받는다는 조문은(제40조) 몹시 생경하게 느껴졌다.


2009년 부임한 이래 가장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일이 환경사업이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 유전을 파괴해 사우디 동부해안이 원유로 뒤덮인 것을 복원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그 이후 수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내놓을만한 환경사업을 해보지 못했다. 동부해안 복원사업은 유엔이 이라크에게 받아낸 전쟁보상금을 재원으로 사용해 가능한 일이었을 뿐, 얼마 전까지도 사우디는 환경보호에 재원을 투입할 생각은 물론 환경보호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부임 13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는 환경보호가 필요하다는 정도까지는 생각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재원이 투입되기까지는 또 그만큼의 시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내게 “국가는 환경 보존, 보호, 개선과 오염 방지에 노력해야 한다”(제32조)는 선언이 헌법인 통치기본법에 들어있다는 것은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래된 유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