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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31. 2021

짜장면, 곱빼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

박찬일

세미콜론

2021년 12월 10일


술과 돼지고기가 금기라는 사우디에 발령 받았을 때 술 없이 살 일은 걱정했어도 그깟 돼지고기야 없으면 뭐 어떨까 싶었다. 살다보니 돼지고기 들어간 음식이 그렇게 많은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운 음식을 꼽으라면 순댓국이 제일 첫머리에 나오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짜장면이다. 나는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다. 그저 주머니가 넉넉지 않거나 급하게 한 끼 때울 음식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돼지고기가 없는 곳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순댓국 턱밑에까지 치고 올라올 정도로 먹고 싶고 그리운 음식이 되었다.


사우디엔 돼지고기만 없을 뿐인데 짜장면을 왜 못 먹는다는 건지 궁금할 것이다. 물론 만들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데, 먹어보면 소고기 짜장면은 짜장면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언젠가 휴가 때 짐을 풀고 어머니 집 앞에 있는 중국집부터 찾았다. 조금 고급스러운 곳이어서 그런지 소고기 짜장면만 있다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키기는 했는데, 소고기 짜장면을 어떻게 돼지고기 짜장면에 비하겠는가. 나오면서 고급 식당은 개뿔, 짜장면이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중국집 간판을 달고 있냐고 한참이나 궁시렁댔다.


알고 보니 사우디에서 먹는 짜장면이 짜장면일 수 없는 건 그것 말고도 이유가 많았다. 저자는 “짜장면은 설탕과 미원과 탄수화물과 고기와 지방을 넘어서는 그 무엇, 정서적인 자극과 거의 종교에 가까운 복종이 그 한 그릇에 있다. 그래서 죽었다 깨어나도 짜파게티는 짜장면이 아니며 집에서 내가 만든 짜장면도 짜장면이 아니다. 주문을 넣고, 단무지와 양파, 춘장이 깔린 탁자 앞에서 기다리는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진짜 짜장면이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짜장면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이 깔린 분위기가 갖춰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짜장면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있다. 저자가 고등학교 때 매점에서 사먹던 짜장면은 제 맛이 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스텐리스 젓가락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에 말한 분위기에 나무젓가락이 더해져야 비로소 짜장면이 완전체를 이룬다는 말이겠다. 그런 줄 알았으면 소고기 짜장면을 먹을 수밖에 없을 때 나무젓가락이라도 갖춰놓을 걸.


하지만 그 짜파게티조차도 사우디에서는 제 맛을 온전히 내지 못한다. 사우디에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모든 식품은 할랄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돼지고기나 술 성분이 섞여서는 안 된다. 스프에 돼지고기가 빠지고 메밀국수 찍어먹는 소스에 맛술이 빠지면 얼마나 밍밍한지 모른다. 그래서 한국에서 출장 오는 이들의 선물로 라면이 인기가 있고, 받으면 한두 봉지라도 꼭 이웃과 나누는 게 사우디의 미풍양속이 되었다.


이 책은 편집자가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햄릿의 질문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말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뒤이어 저자는 “짜장면은 얼추 망가졌다. 교세는 기울었고 신흥종교가 득세하고 있다. 더구나 교단 내 헤게모니는 짬뽕에게 밀렸다”며 짜장면교의 독실한 신도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한다.


저자 말대로 요즘 짬뽕이 대세인지도 모르겠다. 대세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짜장면에게 수위를 내준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짜장면이나 짬뽕이냐” 하는 것이 햄릿의 질문보다 무겁고, 그 질문의 해결책이랍시고 ‘짬짜면’이라는 해괴한 음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짬뽕이 이렇게 세력이 커졌을까? 내가 학교 다닐 무렵에는 짬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존재가 희미했다. 당시에 학생이 택할 수 있는 메뉴로는 그저 짜장면 아니면 우동이었다. 그래서 여럿이 중국집에 가면 메뉴는 늘 ‘우짜우짜우짜짜’였다.


요즘은 중국집에 가도 우동을 찾을 수 없고, 이제는 우동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검색 결과 나온 생김새는 영락없는 ‘백 짬뽕’이다. 짬뽕의 연원을 살펴보니 중국 초마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고 일본식 짬뽕이 수입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검색으로 찾은 생김새를 보면 볼수록 우동이 맵게 변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월이 흐를수록 입맛이 점점 강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변해 가는데, 그러다 보니 순한 맛의 우동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점점 벌겋고 맵게 바뀐 것이 아닐까?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중국집 우동’으로 검색해보라.


그나저나 짜장면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화려한 시절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스스로 “짜장면 교의 열렬한 신봉자요 짜장면 추적단을 꾸려 맛있는 짜장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저자는 좋은 짜장면 집은 대도시가 아닌 곳, 도시화 진행이 늦거나 농촌지역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금산과 청양이나, 보령과 예천이나, 정선과 강진 같은 지역에, 그것도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고 노령화가 진행되어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인구소멸예정지역’이라고 부르는 면 단위 지역에 거의 몰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멸이 눈앞에 보이는 그 동네들처럼 짜장면의 소멸도 미구에 닥쳐올 현실이 되지 않을까 몹시 염려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머지않아 소멸되어 없어질 나이에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런데 과연 짜장면이 없어지는 게 저자가 지적한 대로 무성의한 요리여서, 면 뽑는 기술이 예전 같지 않아서, 거기에 사람들의 무관심과 홀대까지 겹쳐졌기 때문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짜장면이 생겨났으면 또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지. 사라지는 것이 섭섭하기는 해도 그 섭섭함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설고 낯선 이방 땅에서 살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음식이 아닐까. 요즘은 세월이 좋아져서 돈만 있으면 어지간한 한국 식재료를 구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다. 막상 그렇게 구해서 음식을 만들어놔도 기억 속의 그 맛을 되살려내지는 못한다. 하물며 음식의 주재료인 돼지고기와 술이 빠진 음식은 또 얼마나 밍밍할까. 그래서 한국에 갈 날을 앞두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음식 목록을 만들고 기어코 먹고 오고야 말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하지만 막상 와서 먹어보면 기대한 것과 너무 다른 맛에 매번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그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입맛이 바뀌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순댓국과 짜장면을 벌써 몇 번이나 먹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기억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맛을 경험하지 못했다. 섭섭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을. 저자는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이탈리아 음식 전문 요리사가 되었고, 지금은 돼지국밥과 평양냉면을 주 메뉴로 하는 식당과 무국적 퓨전 양식을 선보이는 식당을 운영하며,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깔스러운 글을 쓰는 셰프로 알려졌다. 그렇기는 했어도 아직 이순에도 이르지 않은 그의 연륜으로 보아 기억하고 기대했던 맛도 세월 따라 사라져 가는 게 자연의 이치인 것을 깨닫는 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좋아서 읽는 책이기는 하지만 매번 읽고 난 느낌을 글로 쓰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낄낄거리고 웃을만한 책을 읽고 또 그렇게 느낌을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목차만을 보고 굳이 혹한을 뚫고 서점에 다녀왔다는 어느 페친의 글을 보고 바로 주문해서 올 한 해의 독서를 마무리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로 우여곡절 많은 한 해였다. 해가 바뀐다고 당장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올해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한 해를 접는다. 모두들 새해에는 더욱 큰 복을 받으시라. 그래서 그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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