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by 박인식

가치 있는 삶 (2021.05.02)


하루를 가치 있게 살기를 꿈꾸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래도 크게 망가지지 않은 건 아침마다 하루를 가치 있게 살겠다는 각오를 되뇐 덕분이 아닐까 한다.



감사 (2021.05.02)


고통스러운 시간을 오래 겪으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 짐작해 염려하는 악습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장한 일 (2021.05.04)


나이가 들어가니 어느 자리에 가서 흉잡히지만 않고 돌아와도 장한 일이다 싶다.



백신 유감 (2021.05.06)


백신 개발은 돈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성공한다고 해도 선수를 빼앗기면 개발비조차 건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 기업으로서는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비상 상황이니 비상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백신을 개발한 기업에 그 결실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난해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걸 보상할 방법을 찾아야 옳지 기업을 탐욕의 존재로 여기고 보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 이번엔 어떻게든 넘어간다고 치자. 그러고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기업에게 백신 개발에 나서라고 요구할 수 있겠냐.


백신 여권도 다르지 않다. 하루 빨리 일상을 회복하도록 백신 접종을 늘일 방법을 찾아야지 백신 맞지 못한 사람들을 차별해서 안 된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게 공동선에 부합하는 일이냐. 백신 맞지 못한 사람이 받는 차별만 눈에 보이고 일상이 무너져 고통 받는 사람은 안 보인다는 말이냐.



고생하는 성경 (2021.05.09)


미국 남북전쟁은 노예제도를 고수하려는 남부와 폐지하려는 북부의 충돌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남부와 북부 모두 자신의 주장이 성경의 정신을 따르는 길이라고 내세웠다는 것이다. 성경이 고생이 많다.



감사 (2021.05.18)


나는 하나님께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심고 가꾼 것보다 더 많이 거두고 살았거든.



번역 (2021.05.20)


아픈 곳이 없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어딘가 되게 아파봐야 비로소 아프지 않은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알게 된다. 글도 그렇다. 술술 읽힐 때는 모르는데 읽으면서 어딘가 불편하고 몇 번씩 읽어야 겨우 무슨 말인지 알 정도가 되면 글을 잘 쓴다는 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된다. 번역은 더욱 그렇다. 마치 몸이 아프지 않을 때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처럼 글을 읽으면서 아무런 방해받지 않고 내용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라면 매우 훌륭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번역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기는 하는 건가 싶은 번역도 많으니 문장이 매끄럽고 읽기 편한 번역을 바라는 건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치스러운 책을 읽고 있다. 필력이 대단하신 부산대 곽한영 교수께서 추천하신 책이다. 추천하신 대로 번역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읽기 편하고 문장이 매끄럽고, 그러다 보니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닌데 한 번 읽어서 무슨 말인지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책의 내용은 곽한영 교수만큼 쓸 재간이 없으니 그저 번역에 대한 소감으로 여러분께 읽기를 권한다.


아, 번역은 윤영수 박경환 두 분이 하셨는데 부부시란다. 역자께서 자기소개를 이렇게 하셨다.


“2002년 회사 일로 한국을 떠나 지난 20여 년간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한국인으로 일본과 중국에 살며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와 문화에 자연스레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 태가트 머피가 쓰고 윤영수 박경환 두 분이 번역하신 일본의 굴레를 읽으면서



삶의 한 과정으로서의 죽음 (2021.05.21)


나이가 들어가니 주변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는 말이다.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범죄 (2021.05.23)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대중 앞에서 자식이 장애인이 아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가 목회자이고 그곳이 설교단이라면 그것은 범죄이다.



투병 중인 친구를 위한 기도 (2021.05.23)


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가 지난 번 검사에서 전이가 확인되었다. 항암치료 단계를 높여야한다고 했다. 엊그제 연락해보니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 치료받지 않기로 했단다. 무엇을 기도해야할지 막막하다.



자세 (2021.05.25)


등이 많이 굽은 것 같아 얼마 전부터 의식적으로 가슴을 펴고 걷는다. 외출에서 돌아오다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보니 영 꼴사납다. 엉덩이는 뒤로 빠지고 가뜩이나 나온 배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싫다고 말하는 것 (2021.05.28)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권력이라고 합니다. 심한가요? 그러면 이렇게 바꿔서 이야기해보지요. 여러분은 싫으면 싫다고 말하세요? 아니면 싫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나요? 그럴 때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건가요, 아니면 못하는 건가요? 하지 못하는 거라면 왜 하지 못하는 건가요?


최근에 아내와 아주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서너 살 때 프랑스로 입양 간 사십 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철길에 버려진 기억을 더듬으며 한국에 옵니다. 그리고 입양아로 살던 시간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는 양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떼쓴 적이 없다. 비싼 학용품, 여행, 왁자지껄한 생일파티 같은 것. 몸살 기운이 있어도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잠든 척했고,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인종차별 섞인 성희롱을 당해도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외식이라도 하는 날엔 양부모가 고른 것보다 싼 음식을 찾느라 메뉴판을 샅샅이 살폈다. 양부모가 선생님에게 불려가 귀찮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모든 규율에 순종했다.”


그리고 자기를 버린 엄마를 왜 만나고 싶어 했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만인 것을 눈치 보지 않고 표현하는 것, 왜 버렸고 왜 다시 찾지 않았는지 아픈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물어보는 것.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런 게 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아무리 사랑을 받고 자랐더라도 자기가 버려졌다는 기억은 벗어나기 힘든 굴레입니다. 그래서 많은 입양아들이 다시 버려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절제하고 삽니다. 이 여인은 혈육을 찾으면 다른 게 아니라 늘 감추고 살았던 자기를, 자기감정을 내놓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사장이 어떤 직원을 싫다고 말할 때, 선생님이 어떤 학생을 싫다고 말할 때, 이건 단순한 개인 취향이 아니라 바로 권력 그 자체가 됩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싫다”고 하는 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싫다”고 하는 말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난민이 싫다”고 하는 말은 난민이 “한국인이 싫다”고 하는 말과 같을 수 없지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방송에서 어떤 소수집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그 소수집단을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신호”라고 말입니다.


여러분과 생각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형편이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불편하십니까? 그래서 싫다고 말하고 싶으십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십니까? 그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권력을 가진 겁니다. 그리고 이미 그 권력을 사용한 겁니다. 차별이나 폭력이 대단한 것 같지만, 별 거 아닙니다. 싫어서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거, 그거 멋있는 거 아닙니다. 그게 권력이자 차별이고, 또한 폭력입니다.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했다고 하십시다. 물론 칭찬하고 격려하는 뜻에서 한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아주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말일 수 있습니다. 엉뚱한가요? 아니요.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건 장애인의 삶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남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지난 주 예배 때 들었던 간증에서 입양한 자식이 장애인이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비교하는 게 감사의 제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다 아는 일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대중 앞에서 자식이 장애인이 아니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설교단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건 차별을 넘어선 범죄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나왔습니다. 그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차별은, 그리고 폭력은 이렇게 우리 삶 곳곳에 매우 은밀하고 집요하게 스며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문제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누군가가 싫어서 싫다고 말하기 전에,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하기 전에 그게 권력일 수 있고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구역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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