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처하면 아버지를 찾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버지에게 구해달라고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면 구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하는 것인지 살피고, 그렇지 않으면 기도조차 하지 못한다. 기도를 들으실지 아닌지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일 것이니 위험에 닥쳤을 때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리라.
며칠 전 TV에서 정민 군 사건의 전말을 재구성한 것이 방송되었다. 정민 군이 취기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물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는 추론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방송 말미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A군의 아버지에게 왜 그런 오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자식이 죽었는데. 자식을 잃은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나.” 그래서 오해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자 그동안 오해를 감수해왔던 A군의 부모는 무책임하게 루머를 퍼트리고 살인범으로 몰아간 모든 사람들을 형사고발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고발이 루머를 퍼트린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오히려 자기 자식을 향했을 것이다. 자식 잃은 이의 아픔은 존중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식이 살아가는 내내 그 굴레에 묶여 있는 걸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선언이자 자식을 향한 격려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느 부모도 자식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오랫동안 막연히 기대했던 일이 있다. 반신반의했지만 뭔가 기대할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어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섭섭하기는 했지만 생각만큼은 아니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기대했던 것을 놓친 것보다 불확실성 하나가 제거된 것이 더 낫게 여겨진 모양이다.
투병 중인 이웃을 위해 기도할 때면 병 때문에 겪는 고통과 험난한 투병과정을 잘 견뎌낼 수 있기를 구했다. 생각해보니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그 때문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도 그 못지않게 힘겨울 것이고, 만만치 않은 치료비에 투병하는 동안 수입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도 투병만큼이나 힘겨운 일이겠다. 투병하는 본인 뿐 아니라 그 가족을 위해서도 더욱 힘써서 기도해야겠다.
이웃에서 초대해 저녁도 잘 얻어먹고 늦도록 웃고 떠들다 돌아왔다.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생활에 큰 즐거움이 되었다.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이다 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고, 급기야 신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뜬금없이 아내가 내가 남과 비교하면서 살지 말자고 말했고 살면서 한 번도 그러지 않아서 고마웠다고 했다. 사십 년 넘도록 살면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나 역시 남과 비교하지 않는 아내가 고마웠는데. 그래서 사십 년 넘도록 고비 없이 살았던 모양이다.
영예로운 죽음이니 비참한 죽음이니 하는 건 산 사람의 평가일 뿐, 정작 죽은 사람은 관심을 가질 일도 아니고 가질 수도 없는 일이다.
젊은 국회의원이 타투업법 제정을 요구하며 올린 사진 때문에 소란스럽다. 타투를 그린 등을 드러낸 파격적인 복장이어서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동안 타투 논쟁은 단순히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로 알고 있었는데 주장을 들여다보니 거기에 생계가 걸린 사람이 24만이요 시술한 사람도 1,300만에 이른단다. 결국 노동권에 대한 문제요 엄청난 시술 인원을 모두 불법을 저지른 사람으로 만드는 법적 안정성에 대한 문제였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는 사람들이야 언제든 있었던 일이고, 그래서 이번과 같은 일에 비난과 모욕을 퍼부어대는 건 놀랍지도 않다. 그런데 뜻밖의 인물이 그 국회의원을 저급한 말로 비난하고 나서서 매우 놀랍고 실망스러웠다. 중앙 유력일간지의 북한전문기자인 그는 남북문제에 대해 여야가 당리당략에 따라 이치에도 닿지 않는 억지를 써가며 머리 터지게 싸울 때에도 늘 사실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기사를 써서 많은 사람의 신뢰를 얻어왔다. 나 역시 남북문제로 여야가 첨예하게 갈릴 때는 제일 먼저 그의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런 그가 법안의 내용이 아닌 법안 제정을 주장한 국회의원을 향해 이상한 애니 또라이니 하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양식을 믿는다. 그의 글은 아마 법안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편향된 시선과 즉흥적인 감정으로 뱉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여태 그가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방식으로 비난한 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더 늦기 전에 사과하고 잘 마무리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이번 일을 마무리한 후에 잘 정리해서 조목조목 비판하기를 바란다.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비판하는,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그 방식 그대로.
차범근 감독이 TV에 나와 선수시절을 회고하는 중에 일본과의 경기에서 무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조명되었다. 그런데 무패의 기록은 그것 뿐 아니다. 그가 대학시절 출전했던 연세대학과의 경기가 또한 그렇다.
대학 입학하면서 가장 기다려진 것이 연세대학과 가지는 정기전이었다. 내가 입학하기 전해에는 4승 1패를 거둬 연세대학에 수모를 안겼다. 정기전이 다가오자 학교 앞에 응원 문구를 적은 플래카드로 넘쳐났다. 연세대학에서 내건 플래카드는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전의 날이 왔다! 싸우자 최후까지!” 거기에 비해 우리 쪽에는 승자의 여유가 그대로 묻어났다. “연세에게 우정을!”
정기전 첫날, 야구로 시작해 농구와 아이스하키를 모두 이겼다. 그것으로 그해 승부는 끝났다. 둘째 날에는 그저 승리를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첫 경기인 럭비에서도 이겼다. 지난해와 같은 성적을 다시 거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축구 하나. 축구마저 이기면 정기전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었고, 그 확률은 100%에 가까웠다. 차범근 선수가 출전한 경기에서 연세대학에게 진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경기는 그가 재학생으로 출전한 마지막 경기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기고 말았다. 4승 1무.
나는 그것이 그가 연세대학에 보내는 최고의 우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무패의 기록을 깰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원한 맞수를 전패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기에는 그의 심성이 너무 곱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칭송하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비하하는 모양이 되었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것이 이 글의 본심이 아님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들에게 갈 수 있게 된 걸 감사하다 정작 아이들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감사를 잊고 있었던 걸 깨달았다. 아이들 없는 삶이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아이들은 우리 내외의 삶에 큰 부분이 되었다. 짐작조차 못했던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의 결정을 지지하며 그가 낙심했을 때 격려할 뿐 아니라 필요할 때 구체적으로 도와야 비로소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돕는 것도 격려하는 것도 결정을 지지하는 것도 그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해야 가능한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아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해보니 그만한 가치는 있더라.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걸 보면 내게도 같은 은혜가 임할 것을 확신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