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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Mar 28. 2022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

미국에 의한 미국의 유럽연합

조지 프리드먼

홍지수 옮김

김앤김북스

2020년 1월 10일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한 승부수로 던진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뜻밖에 통과되면서 영국은 물론 유럽연합이 공황상태가 되었다. 국민투표에 붙인다는 뉴스를 듣고도 설마 했던 나 역시 몹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국민투표를 제안한 캐머런 총리조차 통과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뉴스에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사실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서 드러난 문제의 본질은 경제적인 현안을 정치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대체로 일반 시민은 이러한 고도의 정책적 결정을 내릴 만큼 현안에 익숙하지 못하다. 실제로 유럽연합 탈퇴에 찬성한 사람들 중에 적지 않은 숫자가 브렉시트 투표를 정치적 갈등으로 이해했을 뿐 유럽연합을 탈퇴했을 때 일어날 파장이 이 정도일 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정치인들이 시민의 무지를 악용했다가 함께 벼락을 맞은 셈이다.


그 후로 브렉시트가 실현되기까지 우여곡절을 지켜보면서 그것을 단지 몇몇 정치인의 기만의 결과였던 것인지, 아니면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브렉시트, 유럽연합의 와해 그리고 독일문제의 재부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 관심이 생겼다. 거기에는 자식의 가족이 독일 거주민이라는 개인적인 상황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유럽의 일원이 아닌 영국


브렉시트라는 키워드에 꽂혀 읽기 시작했지만 정작 이 책은 브렉시트가 결정되기 한 해 전에 발간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 배경을 짐작할만한 내용이 마지막 장에 일부 언급될 뿐이다.


저자는 영국이 16세기 스페인, 19세기 나폴레옹, 20세기 히틀러와 같은 막강한 군대를 패퇴시킨 배경에 영국 해군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영국 해군이 바다에 대한 장악력을 유지하려면 적이 함대를 구축하지 못하게 막아야 했는데, 이를 위해 적의 물자를 지상전에 투입하도록 만들어야 했고, 그래서 영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럽 국가들이 서로 불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 영국은 수시로 협력국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갈아치우면서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했고, 유럽 국가들을 내부사정에 묶어두면서 영국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유럽 국가들은 영국이 약속이나 책무에 개의치 않고 무자비하게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영국에게 배신자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저자는 영국은 미국과 프랑스와 독일을, 그리고 나머지 세상을 조종하면서 절대로 남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로 묘사한다. 그리고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를 이용해 시장에 접근하면서도 그 시장에 매몰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이는 영국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를 유럽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로 들린다. 유럽과 불과 헤엄쳐서 건널만한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인데 말이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영국은 유럽의 일원이 아니다”는 것이 영국인의 바탕에 깔린 정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브렉시트 결정은 해프닝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쟁은 왜 일어나고 어떻게 매듭지어지는가?


저자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프랑스와 러시아가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할 경우 참패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독일이 프랑스와 러시아가 전쟁을 계획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한 건 아니지만, 독일이 경제적으로 계속 급성장하면 그들이 위험을 느끼고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두 나라 가운데 하나를 신속히 꺾은 다음 여유롭게 나머지 하나를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은 우선 프랑스를 공격해 신속하게 항복을 받아낸 후 군대를 철도를 이용해 신속히 동쪽으로 옮겨 러시아를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와 소련 사이에 놓여 불안을 느낀 독일이 먼저 프랑스를 공격하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 패배했다. 두 대전이 발발한 원인은 똑같았고 결과는 비슷했지만 학살의 규모는 이번이 훨씬 컸다. 제1차 세계대전은 본질적으로 유럽내전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대서양지역뿐 아니라 태평양지역까지 관여한 명실상부한 세계대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과 민간인 5천1백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39년 당시 유럽 인구는 5억5천만 명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난 전쟁에 지친 소련은 더 이상 전쟁을 치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의도가 뭔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을 대대적으로 전진 배치해 미국을 억제하려고 했다. 마찬가지로 소련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미국이 보기에 소련은 기습공격으로 서유럽을 장악할 역량을 갖춘 것처럼 비춰졌다. 그렇게 되면 힘의 균형이 극적으로 변해서 미국의 장기적인 해상 장악력이 위협받고 미국의 안보도 위협받게 될 것으로 판단했으며, 그 결과 유라시아에서 철군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의 팽창을 봉쇄하기 위해 맞서는 전략으로 바꿨다.


다행하게도 냉전 동안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양측 모두 전쟁을 치르는데 이골이 났고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고 전쟁 가능성은 늘 상존했지만 전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저자는 미국과 소련의 정치인들은 유럽인들보다 훨씬 신중했고 핵무기의 괴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지금 세상은 온통 지난달에 러시아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뒤숭숭하다. 대체로 푸틴 대통령이 예전의 제국을 회복할 야망에 눈이 멀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진다. 하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유럽 친화적인 정책이 러시아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물론 나 역시 이 전쟁이 제국 회복의 야망에 눈 먼 푸틴의 선택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위협에 대한 자위권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푸틴의 항변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인류의 재앙으로 평가될만한 제2차 세계대전도 히틀러가 죽자 금방 끝나버렸다고 말한다.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가 사망하자 저항은 며칠을 넘기지 못했고 독일은 마법처럼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영제국도 독일처럼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꿈도 품었던 이상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전쟁 중에 영국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처칠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퇴출되었고, 전쟁 결과 유럽은 하나같이 가난해졌고, 그들의 운명은 미국과 소련이 좌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 승전국이나 패전국 모두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잘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결국은 러시아에 무릎을 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불과 며칠 사이에 전쟁이 마무리되었듯 푸틴이 러시아 반전세력에 의해 축출되고 며칠 사이에 전쟁이 끝나게 되는 건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으로 유럽이 하나 같이 가난해 지고 미국과 소련의 손에 운명이 좌우되기에 이르렀듯,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조만간 매듭지어진다고 해도 그 결과 얼마나 많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겠는가.


저자가 말하듯 위협적인 상황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위험을 지레짐작해 대응하느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전쟁으로 승전국이나 패전국 할 것 없이 모두가 피해당사자가 되는 일이라면, 그 해법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그 해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닐까? 혹시 전쟁이 주변국의 위협을 지레짐작해 일어나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책임회피용 논리인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미국의 선택의 결과인 유럽연합


반도이지만 섬과 다름없는 나라에서 나고 자라면서 외국이라면 으레 비행기를 타야 가는 곳인 줄 알던 내게 유럽에서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일은 매우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이웃나라와 정말 이웃처럼 지내는 유럽인들이 느끼는 국가라는 개념이 우리와 같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유럽 역사를 살피다 보니 동쪽과 서쪽의 국경이 통째로 평행 이동한 경우도 있었다. 우리처럼 지형적인 조건으로 국경이 나뉜 곳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역사가 있었던 데에는 유럽 전체가 거의 평지로 이루어진 것도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조건에서 살다 보면 어느 날 이웃나라와 한 나라가 되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유럽연합은 유럽인들의 오랜 꿈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저자는 유럽연합은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미국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직후인 1947년 미 국무부 윌리엄 클레이튼 차관은 조지 마셜 장관에게 유럽과 관련한 제안서를 제출했는데, 이 제안서에는 미국이 유럽에게 즉각적이고 상당한 원조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분열이 유럽을 휩쓸게 될 것이며, 이는 세계 평화에 끔찍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미국의 잉여 생산물 소비시장이 사라지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경기침체가 초래되는 경제적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이 실렸다. 말하자면 유럽의 분열을 막는 일이 유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적 필요’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이유 말고도 미국은 소련이 침략할 경우 독일을 통할 것이 분명했고, 이를 봉쇄하기 위해 독일이 필요했고, 그를 위해 독일이 풍요로워야 했으며, 따라서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가 어떻게 생각하든 독일에게 전쟁 책임을 묻겠다는 생각을 곧바로 포기하고, 독일에게 원조를 하고 미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자국 시장을 관세로 보호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미국이 지배하는 군사동맹과 통합된 경제구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결국 유럽통합은 소련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계획’이었으며 유럽인들은 각자의 상황 때문에 이에 저항했지만 결국 미국의 의도대로 유럽연합이 탄생한 것이다.


비록 그렇게 출범하기는 했지만 유럽연합은 유럽 국가들을 통합하는데 그치지 않고 유럽인들을 하나로 통일하려고 했다. 국가적 정체성 못지않게 유럽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요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다른 역사와 문화와 언어를 가진 다른 민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설령 가능하다 해도 과연 그게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을 보면 그런 의도는 이미 틀어진지 오래가 아닌가 싶고, 이제는 오히려 유럽연합의 와해 가능성을 판단하는 게 시급한 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나약한 경제적 강자, 독일


2014년 일어난 그리스 위기는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대립이라기보다는 그리스와 독일의 대립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말하자면 독일과 나머지 유럽이 과연 공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인 셈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독일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독일의 총수출은 GDP의 절반을 차지한다. 따라서 독일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독일 수출환경 최적화’를 위해 자유무역지대와 유로와 브뤼셀의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스가 빚을 갚지 않고도 멀쩡하다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똑같은 길을 선택하게 되며 이는 독일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셈이다. 그래도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다면 상당한 고통을 감내하게 해서 아무도 그리스를 흉내 낼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를 눈감아 준다고 해도 그리스가 유럽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독일이나 유럽은 전혀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를 눈감아주면 (독일이 중심이 되는) 유럽이 추구하는 프로젝트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선례를 남기게 된다.”


결국 독일은 그리스 문제 자체를 염려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 사태가 선례가 되는 걸 경계한다는 말이다. 사실 독일은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막강한 국가였고 유럽연합은 주로 경제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결정적으로 독일의 이익은 나머지 유럽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수출 의존도가 독일보다 낮은 다른 회원국들보다 독일이 훨씬 더 유럽연합이 필요하다. 동시에 다른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에서 벗어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저자는 독일은 유럽연합 몇몇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는 그들이 게으르고 흥청망청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그 국가들은 독일이 유럽연합의 경제체제를 자국에게 유리하게 조작한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현재 유럽연합이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이런 틀 안에 있으며 독일과 나머지 유럽연합 회원국들을 점점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유럽연합의 분열이 와해로 이어진다면 독일은 무관세 혜택 때문에 생긴 수출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결국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를 막자면 독일이 양보하는 수밖에 없는데 독일은 과연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몰락이 되었든 양보가 되었든 독일 경제는 침체가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독일은 전범국가라는 트라우마 때문에 오직 경제적인 영향력만 지키려고 할 뿐 그밖에는 어떤 종류의 힘도 가지려 들지 않는다. 독일에게는 정치적이나 군사적 힘을 키우는 것은 전혀 원하지 않는 선택지이다. 한나 아렌트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처지가 부유하고 나약한 처지라고, 부는 오로지 힘으로만 지킬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국가는 절박한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는데, 그 대상이 부유하고 나약한 국가라면 그런 행동을 취하는데 망설임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독일 자체에 대한 반감에 긴축정책에 대한 반감이 더해지면서 독일과 독일의 이익에 대한 공격은 점점 심해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그 공격을 받아들이든가 막대한 경제력을 정치적 또는 군사적 힘으로 전환하든가 양자택일일 수밖에 없는데, 후자는 선택지에서 원천 배제되어 있으니.


종이호랑이 NATO


기존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동유럽 국가를 회원국으로 끌어들이면 유럽의 평화가 보장되리라 생각했다. 러시아가 다시 부상하지 못하게 할 막강한 장애물을 구축하고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역에 번영과 자유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2008년 8월 러시아가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 NATO는 조지아의 지원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NATO는 이미 이빨 없는 호랑이로 전락해 있었지만 아무도 이 기구를 건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나약함이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중에 러시아는 NATO를 건드렸고 아무도 조지아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하지 않는 이들을 NATO(No Action, Talk Onl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정말 NATO가 NATO한 셈이었다.


물론 조지아가 NATO 회원국이 아닌 건 맞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 같은 NATO 회원국들은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와 대결해왔고 조지아를 지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은 NATO의 불능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다. 그 결과 2014년과 2022년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쟁을 참화를 겪게 되었다.


한국에 대한 조언


저자는 출간 5년 후인 2020년 한국에서 번역판이 발간되는데 즈음하여 특별 서문에서 한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미국과 중국 역시 상대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해 갈등을 벌이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과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과 공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미국에서 취하는 경제적 이익을 어느 정도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 조언에 대해 평가할 만큼 아는 게 없어 그대로 옮긴다. 그 중에 우리나라가 대양에 진출하는 길목을 중국과 일본이 봉쇄해 고립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는 매우 충격적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모두 장악하게 되자 중국은 미국이 이 힘을 사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이 때문에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장악하기로 결정한다. 이 두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을 미국이 이용할 경우 중국이 세계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중국이 이 중의 일부를 장악할 경우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중국이 봉쇄망을 뚫을 경우 태평양에서 중국의 선택지가 확대된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이 두 바다를 장악하면 미국의 선택지가 확대된다. 두 나라 모두 이런 선택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두 나라 모두 상대의 의도가 뭔지 확신할 수 없다.”


“한국은 미군 철수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미 유럽에서 어느 정도 철수했고 중동에 대한 개입도 줄였다. 미국은 현재 서태평양 지역에 관여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관여 지역을 재조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군이 철수할 경우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본은 장거리 군사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미군철수에 대비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한국이 공해에 접근하는 경로를 중국이나 일본이 막아 한국이 고립될 수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북한과 타협하고 군사비를 해군력과 공군력을 강화하는데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 화해가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지만 그러한 이익이 북한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지도 모르게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은 반드시 미국과 공조해야 한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양국 간의 경제적 측면에 대해 우려를 표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과 공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경제적 관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 북한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논의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북한이 현재 상태에서 탈피하려면 격변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북한에서 격변이 일어나면 지금 당장은 한국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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