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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03. 2022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의 인류학

김관욱

창비

2022년 1월 20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다산콜센터를 자주 이용한다. 어지간한 민원 사항은 굳이 해당 관청을 찾지 않아도 친절하게 안내 받을 수 있고 소소한 생활정보도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어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이니 당연히 서울시에 소속된 직원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온라인 서점인 Yes24에서 책을 사보고 있다. 서울시 콜센터와는 달리 이곳 콜센터는 문의보다는 불만을 쏟아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전화 걸 때부터 목소리에 가시가 돋쳐있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면 슬슬 짜증스러워지고, 제대로 대답할 사람을 연결해달라는 데도 연결은 하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돌리면 급기야는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간혹 나중에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와 답변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바에야 고객의 부아를 돋울 일이 뭐 있었겠나 싶었다.


서울시 다산콜센터 상담사는 서울시 직원이고 Yes24 콜센터 상담사는 Yes24 직원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비록 상담사가 정규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해당 기관이나 기업 직원으로서 업무에 대해 상당한 훈련을 받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콜센터 산업이란 근본적으로 비용절감을 위한 하청구조’로 이루어지다 보니 상담사가 기관이나 기업에 소속되기는커녕 해당업무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지도 못하고, 게다가 하청을 준 기관이나 기업은 콜센터를 방패막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고객 전화를 자기들에게 연결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내가 불만을 가져야 할 대상은 상담사나 콜센터가 아닌 경영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콜센터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기관이나 기업이어야 했다. 그러나 콜센터 뒤에 꼭꼭 숨은 그들에게 무슨 수로 불만을 전달할 수 있을까.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오랫동안 흡연과 중독, 감정노동과 건강에 대해 연구해왔으며 최근 콜센터 상담사, 이주노동자, 흡연자, 부랑인시설입소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17년간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일해 온 저자는 ‘노동 때문에 질병이 불가피한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이후 노동과 건강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의 길에 들어선다.


‘공순이’에서 ‘콜순이’로, ‘타이밍’에서 ‘담배’로


저자는 2012년에 콜센터 상담사 연구를 시작해 2021년 마무리 지으면서 여성 상담사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나 그 과정에서 건강을 잃어가는 모습이 50년 전 여성 공장노동자들에 비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비록 그들이 과거 공장노동과는 달리 콜센터라는 현대적 건물에서 전자통신기계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본능적으로’ 적합하다는 편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 말하자면 1970년대 소위 ‘공순이’로 불리던 여공의 삶이나 50년 지난 현재 스스로를 ‘콜순이’라는 자조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콜센터 여성 상담사의 삶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콜센터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주로 몰려 있는데, 공교롭게도 여기는 1970년대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공장노동을 했던 곳이 디지털정보 중심의 산업단지로 바뀐 곳이다.


콜센터 여성 상담사를 떠올리면 ‘감정노동’이 가장 먼저 생각날지 모르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콜센터는 먼저 담배연기가 끊이지 않는 건물 옥상을 그린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옥상은 상담사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인도의 콜센터도 다르지 않은데, 인도 상담사들은 까다로운 백인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시차나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고 흡연이 하나의 도피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파악한 어느 콜센터 여성 상담사들의 흡연율은 37%로 일반 성인 여성 흡연율 6.2%의 무려 여섯 배에 이르렀다.


저자가 연구를 위해 돌아본 구로공단 노동자 생활체험관에는 업주가 야간작업을 위해 여공들에게 먹였던 ‘타이밍’이라는 각성제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와 같이 노동력을 높이기 위해 먹인 식품이나 약물을 ‘드러그 푸드(drug food)’라고 하는데, 이는 현실을 잠시 잊도록 만들어주거나 커피나 초콜릿처럼 영양분의 공급 없이 노동력을 증가시킨다. 50년 전 여공들이 먹었던 ‘드러그 푸드’인 ‘타이밍’은 50년 후 같은 자리에서 일하는 여성 상담사들이 피우는 담배로 바뀌었을 뿐, 여공이나 여성 상담사의 근본적인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상담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관리자가 프로그램으로 감시한다. 상담사가 2~3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관리자가 즉시 체크한다. 그러다 보니 상담사는 특별한 사정없이 그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고, 따라서 흡연 시간도 4분을 넘기지 못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회사에서도 4분 정도의 흡연시간은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 콜센터에서는 흡연실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 동선을 짧게 만들기도 했다. 회사가 이런 시간을 허용하는 것은 콜센터에 담배 피울 이유가 확실히 존재한다는 뜻이며, 여건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흡연자를 담배를 피울 것이니 흡연실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콜센터가 상담사의 흡연을 방조하다 못해 조장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전문의로서 저자는 상담사들이 노동의 결과로 얻은 질병과 그런 노동환경을 방치하는 기업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저자에 따르면 비단 콜센터 상담사 뿐 아니라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가 방광염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는 고객이 많으면 화장실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콜센터에서는 상담사가 졸지 못하도록 4월에 에어컨을 겨기도 하고 창을 가려 상담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마치 양계장에서 닭이 최대한 많이 산란하도록 계사의 온도와 빛을 엄격히 조절하는 것처럼 상담사의 체온과 시각마저 통제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상담사가 두통, 만성피로, 수면장애, 청력손상, 위장장애, 피부질환, 그리고 다양한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한다.


어느 상담사는 갑자기 돌발성 난청이 생겼다. 치료를 받아도 원래 기능의 30%만 회복이 된다고 했다. 이의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의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상담사는 병가 신청에 필요한 진단서에 증상이 덜 심하게 써달라고 부탁한다. 증상이 심하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병가는 당연히 무급이다. 저자는 이와 같이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질병을 얻었는데도 그에 대한 보상은커녕 해고를 걱정해서 오히려 이를 숨기고, 병가조차 무급으로 처리하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사회 일각에서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크게 낙담한다.


여성 상담원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콜센터라는 기업으로부터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콜센터가 철저하게 실적위주의 경쟁을 시키다 보니 상담사들 사이에 극단적이 따돌림이 발생한다. 상담사는 고객과 관리자에게 항상 을의 위치에서 수동적으로 당하는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 을들끼리 서로 물어뜯는 것이다. 팀장이 어떤 건을 배분하느냐에 따라 상담 건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팀장에게 잘 보이려고 상담사 사이에 경쟁이 아주 노골적이고 필사적으로 일어난다. 이는 자칫 상담사 사이의 문제로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더 많은 성과를 거두려는 회사의 의도가 반영된 구조이니 결국 콜센터라는 기업이 비판받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구로 콜센터의 코로나 집단감염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에 한국콜센터에 전년 대비 180%가 넘는 전화가 걸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담사들은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온갖 상담을 처리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구로 콜센터에서 130여명이 코로나에 집단 감염되었다. 일부는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위중했으며 안타깝게도 그 중 한 직원의 배우자가 사망에 이르렀다. 이는 서울에서 발생한 코로나 첫 번째 사망자였다.


언론에서는 상담사의 인권보다는 콜센터가 코로나 감염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 사태로 콜센터 상담사들이 고도로 밀집한 환경에서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세간의 관심은 여기까지였다. 저자가 이후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봤지만 감염된 상담사들의 처우와 노동환경이 개선되었는지, 콜센터의 전반적인 노동환경이 개선되었는지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 초기에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피와 땀을 갈아 넣는 의료진의 헌신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보도에 따르면 그들에게 후하기는커녕 당연한 보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피해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콜센터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감염되었거나 감염자 때문에 격리된 상담사들은 보상은 고사하고 콜센터 개인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임금을 삭감 당했다. 급여에서 수십 만 원이 삭감된 것은 상담사 개인에게는 상당히 큰 타격이었다. 상담사가 감염되었거나 격리된 것은 밀집된 노동환경으로 인한 높은 감염 위험성 때문이었지 상담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에도 감염 결과로 인한 실적 감소의 책임을 상담사에게 물은 것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콜센터 집단감염은 이렇게 철저히 피해를 상담사가 떠안는 ‘개인적 문제’로 마무리되었다.


콜센터 집단감염이 마무리되기까지 원청회사와 하청회사 어느 누구도 공식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원청사가 확진자에게만 20만 원어치 상품권과 과일바구니를 전달했을 뿐 감염된 상담사 때문에 함께 격리된 가족에 대해서는 어떤 보상도 없었다. 게다가 감염된 상담사들은 산업재해를 신청해서 승인 받기도 어려웠고, 승인 받아도 월급의 70%만 보장받았다. 그들이 감염, 격리, 치료 과정에서 받았던 심적 고통은 아예 보상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피해는 감염되거나 격리된 상담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 기간 중에 상담사들은 마스크를 쓰고 상담을 해야 했는데, 상담 중에 숨이 막히고 뜨거운 입김이 올라와서 피부발진이 자주 발생하고 눈이 시린 사례가 속출했다. 또한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서 말을 할 때마다 힘을 주어야 해서 몹시 힘들어했다. 더욱이 마스크 안에서 내뱉은 숨을 다시 들이마시면서 호흡곤란과 구토 증세를 호소한 사례도 일어났다. 그들은 회사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는데 사회에서는 콜센터를 코로나 감염의 ‘진원’이고 ‘온상’이며 ‘감염소굴’이라며 상담사들을 손가락질해 그들을 더욱 큰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비전문가의 전문적 상담


코로나 사태가 상담사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단순히 상담 건수가 폭증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자가 만났던 상담사들은 상담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몹시 불안해했다. 긴급을 요하는 민감한 문제인데도 상담사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기 일쑤였다. 예컨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스크 상담은 당일 오전에 10분가량 선채로 설명 들은 후 바로 상담에 투입되었다. 나머지 내용은 자료로 대체되었고 그나마도 수시로 바뀌고 이후에 쪽지로 몇 백 개가 추가되었다.


비단 코로나 관련 사항 뿐 아니라 콜센터에서 처리하는 모든 상담 내용이 이와 같이 충분한 교육 없이 자료 형태로 상담사에 전달된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상담사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기대할 수 있을까. 더구나 정부 콜센터인 한국콜센터는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업무에 대해 숙지해야할 정보가 산더미 같아 업무 자체의 난도와 강도가 일반 콜센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데, 저자는 그들 역시 스스로 자료를 익혀가며 해결한다고 말한다. 앞서 상담사의 답변이 미진해 언성을 높였던 부끄러운 내 모습을 고백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와 같이 답변이 미진한 경우는 수많은 전화상담 사례 중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충분히 교육받지도 못하고 자료가 충분하지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들은 자기 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저자는 상담전화를 건 시민 대부분은 정부기관에 전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콜센터는 비전문적인 민간업체에 지나지 않고 그것도 2년마다 높은 실적과 낮은 인건비로 정부기관의 재계약을 얻어내야 하는 을의 위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시민이 쏟아내는 폭언과 콜센터를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나 몰라라 하는 해당 기관의 태도는 이미 자기 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상담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추가적인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를 만난 상담사들은 하나같이 정확한 상담을 위한 충분한 교육과 적절한 업무량을 호소하더라고 말한다.


상담사들은 콜센터가 원청회사 직원들이 민원을 받지 않게 하는 ‘총알받이’라고 생각한다. 고객이 교육 받지 못한 내용을 물으면 원청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연결해줄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이런 전화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고객에게 전화번호를 직접 알려주지 못하도록 한다. 그럴 때는 상담사가 먼저 원청회사 직원에게 물어본 후 답변하도록 규칙을 만들어 놓았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개인 평가점수가 깎이고 따라서 월급도 깎인다. 말하자면 콜센터는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서 원청회사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언젠가 Yes24에 전화해 (나는 그게 콜센터일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충분하지 않은 답변에 언성을 높이며 제대로 답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해달라고 요구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상담사가 담당자가 전화하도록 하겠다고 하도 간곡하게 이야기해서 그가 말하는 대로 전화를 끊고 십여 분 지난 후 담당자의 답변 전화를 받았다. 답변 전화를 받으면서 왜 상담사가 굳이 고객의 부아를 돋우면서까지 담당자를 연결해주지 않았을까 의아했는데, 거기에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상담사가 담당자에게 답변하도록 요청하느라 겪었을 고충과 수모를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기사를 보며 <사람입니다, 고객님>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상담사들을 애먹이는 진상고객들의 이야기와 그로 인해 상담사들이 받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언이 이 책의 주제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예상과 달리 저자는 그런 내용은 일체 거론하지 않고 대신 상담사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한 노동조합 이야기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는 이제는 콜센터 업무가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업무가 되었지만 왜 상담사들이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당연한 듯 방치되어 있는가, 그리고 왜 그 대상이 여성이어야 하는가 묻는다. 그래서 그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기들을 억누르는 환경에 저항하려 했던 상담사들의 이야기를 연대하는 마음으로 기록했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제목은 진상고객을 떠올리는 <사람입니다, 고객님>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을 부추기는 기업주를 떠올리는 <사람입니다, 사장님>이 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만약 적절하지 않아 보이는 제목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독자를 기만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사람들 대부분은 핸드폰 화면에 지역번호로 시작되는 모르는 번호가 뜨면 으레 판촉 전화일 것으로 생각하고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익숙하게 종료버튼을 누르지만 자신은 그런 전화를 빼지 않고 받을 뿐 아니라 통화를 마칠 때 반드시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야 상담사가 추가 점수를 얻어 월말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담사는 무엇보다 상담 건수를 많이 올려야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고객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이미 현대사회의 필수업무가 되었음에도 형편없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상담사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을 위해, 그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한 것처럼 상담을 받고 나서 상담사에게 감사함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너무 이것저것 물어서 상담사의 상담건수를 줄이지 않도록 유의하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연대의 표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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