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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04. 2022

평균의 종말

평균의 함정

토드 로즈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2021년 6월 14일


미 공군은 1940년 전투기 추락사고가 연이어 일어나자 그 원인을 파악한 결과 전투기 모든 장치가 1926년에 측정한 조종사 평균 신체치수를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냈다. 공군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당시 조종사들의 신체치수를 다시 측정해 이의 평균값을 기준으로 장치 설계를 재조정하기로 했다. 이때 설계 엔지니어 한 사람이 평균값을 적용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전투기 장치에 평균 신체치수를 적용할 경우 어느 누구의 신체조건에도 맞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확인해보니 그가 지적한 대로 당시 조종사 4,063명을 대상으로 측정한 10종의 신체치수 평균값과 모두 일치하는 것은 물론, 그 범위를 평균값의 ±30%로 넓혀도 이에 드는 조종사는 단 한 명이 없었다.


연구 끝에 이는 조종사라는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신체치수가 극도로 다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냈다. 따라서 평균값을 기준으로 장치를 설계할 경우 어느 조종사의 신체에도 맞을 수 없다고 판단한 공군은 각 조종사의 신체에 맞도록 맞춤설계를 요구했다. 설계팀에서는 조종사 개개인의 신체에 맞도록 맞춤설계를 하는 대신 조종석을 포함한 각 장치를 조종사 각자가 조정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으로 해결했고, 여기서부터 조절 가능한 시트가 시작되었다.


저자는 이 사례를 비롯해 수많은 사례를 열거해가며 평균값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증명해나간다. 평균적인 여성, 평균적인 뇌, 평균적인 게놈을 찾아낸다 해도 그런 평균값에 해당하는 경우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평균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평균이라는 개념은 당초 표준화(standardization) 과정에서 개발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산업화 시대에 수많은 사람을 가려내고 표준화하고 등급화해서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는데 평균은 더 없이 좋은 도구였다는 것이다. 덕분에 의사결정을 좀 더 빠르고 투명하고 능률적이면서 안정적으로 내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평균이라는 것이 개인별 비교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룹별 비교 분석에는 아주 효율적인 도구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를 뒤집어 보자면 평균은 독창성을 저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체격ㆍ재능ㆍ지능ㆍ성격ㆍ창의성과 같은 사람의 거의 모든 특성은 들쭉날쭉하고 동일한 지능이라고 해도 분야에 따라 발현되는 양상이 다르다(들쭉날쭉의 원칙). 둘째, 사람은 내향적ㆍ외향적, 사고형ㆍ감정형 등으로 단순하게 분류되지 않으며, 대부분 양쪽의 감정을 함께 보유한다. 사람마다 정체성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고 특정한 경우에만 일관성이 발현되기도 한다(맥락의 원칙). 셋째, 평균적인 사람이 따르는 올바른 경로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경로의 원칙).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신체적ㆍ심리적 특성을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 발을 내딛은 후 사십 년 넘게 자연현상을 조사ㆍ측정해서 경향을 파악하고, 그 경향을 바탕으로 자연에 인위적인 변화를 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예측하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는 일을 해왔다. 그를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이 평균값이었다. 그러나 자연이란 본디 불균질한 것인데 거기에 평균값을 바탕으로 현상을 예측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측정횟수를 늘리고, 측정값의 범위와 오차한계를 표시해 ‘평균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니 여느 사람들보다 ‘평균의 함정’을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느끼는 편이다.


그런 한계는 비단 내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숫자가 개입된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평균의 함정’을 지적하고 그 오류에 매몰되지 않기를 조언하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경우에 평균값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현상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데 평균값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스포츠의 모든 기록이 평균값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평균의 함정’으로 일컬어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평균값이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지금까지 평균값을 대체할 수단이 개발되지 않은 것일까? 대체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값이 가지는 한계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조수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평균의 함정’을 지적한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실 이 책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이 단지 ‘평균의 함정’을 열거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평균의 함정’과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경우에 평균값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분석하고, 어느 정도 대안까지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말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이지 이 책의 완성도와는 무관하다. 기대와 다른 것은 책에 대한 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덕분에 이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할 책이 더 생겼다. 당장은 마땅한 책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에 덧붙여, 책 표지에서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어렸을 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판정을 받았다고 소개하는 것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물론 그 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만으로 누구나 그런 성취를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우리 사회가 앞으로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불이익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마련하는데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얼마 전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 때문에 소란스러웠을 때 누군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매우 인상 깊게 읽은 일이 있다. “지금 ‘장애인의 교통편의’를 이유로 ‘시민의 일상’이 볼모로 잡힌 것이 아니다. 지금껏 ‘비장애인 시민의 일상’을 핑계로 ‘장애인 시민의 삶’이 볼모로 잡혀온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시혜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애인에 대한 교육제도 또한 이와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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