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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Apr 19. 2022

대통령의 숙제

경제를 성장시키는 효율적인 제도로서의 정치

한지원

한빛비즈

2022년 3월 28일


나는 내가 우파 성향을 지니고 있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극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의 글을 읽으려 애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매일노동뉴스에 <금융과 노동>이라는 칼럼을 맡아 격주로 글을 쓰고 있는 한지원이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그의 글을 만난 후 몇 년째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다. 내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우파의 대척점에 서있지만 그렇다고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자기 소신과 신념을 바꾸는데 주저함 없는 여느 좌파들과는 달랐다. 최근에 그가 레디앙에 기고한 <문재인 5년이 가르쳐주는 윤석열 5년간의 사회운동 과제>가 여러 곳에 공유되고 있다. 그의 글을 오래 읽어온 내게는 특별히 놀랄만한 내용은 아닌데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현 정부와 민주당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차기 정부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에 이 책의 발간 소식을 들었다. 서평도 적지 않게 보이고 책 내용 중 인상적인 부분이 여러 곳에 공유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자의 글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터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여러 곳에 공유된 내용으로 보아 현 정부에 대한 정치 비평서가 아닐까 짐작했다. 물론 정치 비평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작금의 정치행위가 경제성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한 저자가 그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이었다.


저자는 먼저 현 정부가 큰 성취로 여기고 있는 ‘국민소득 3만 달러’가 갖는 위기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국민소득 3만 달러에 도달한 선진국 모두 어떤 식으로든 어려움을 겪었는데,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성장을 재개하기도 하고, 성장이 장기간 둔화되기도 하고, 아예 추락한 나라도 있었다며,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는 아예 추락한 나라의 상황보다 오히려 못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 분석을 외면하고 여론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의 타락(포퓰리즘)’이 시장을 실패하게 만들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또한 이와 같은 정치의 타락은 우리의 정치체제인 제왕적 대통령제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저자는 그에 대한 해법으로 의원내각제를 제시하고는 있지만, 입법부가 이를 감당할 역량은커녕 무능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우리 상황에 그것이 오히려 자신과 행정부를 함께 몰락시킬 수 있을까 염려한다. 그래서 양당 독점구도를 개혁해 다당제로 나아가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라는 소극적 제안을 내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아마 그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어 저자도 개운하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책을 받아드니 채 삼백 쪽도 되지 않아서 만만하게 여기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사와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깊이를 따라갈 수 없어서 어느 부분은 건성으로 읽고, 어느 부분은 아예 건너뛰고,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부를 읽었을 뿐이다. 그렇게 읽고 쓴 것을 서평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읽은 것을 정리하고 되새기겠다는 생각으로 인상 깊거나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을 요약한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효율적인 제도


저자는 18세기 서유럽에서 발전한 자유민주주의는 엘리트만 아니라 주민 모두가 권리를 가지는 시민이 되는 제도로, 엘리트들이 이런 변화를 수용한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효율적인 제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경제성장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202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31,489달러로 G7 멤버인 일본과 이탈리아를 넘어섰다.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던 G7 국가들 사이에서 분기가 발생했던 시점은 3만 달러 부근이었다. 이 지점에 도착한 나라들은 어떤 식으로든 어려움을 겪었는데, 미국ㆍ캐나다ㆍ독일은 잠시 주춤한 후에 성장을 재개했고, 영국ㆍ프랑스는 성장이 장기간 둔화되었으며, 일본ㆍ이탈리아는 아예 추락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시장은 없고, 시장은 작든 크든 실패의 연속이다. 장기적 경제성장은 정부의 시장 실패 대처 능력에 큰 영향을 받는데, 정부가 이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 경제의 잠재적 크기가 결정된다. 정부 대처능력의 토대는 바로 민주주의다. 과학적 분석을 경시하고 여론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포퓰리즘은 시장의 실패를 키운다. 경제력이 흐르는 물이라면 민주주의는 그릇이다. 그릇의 크기만큼 물을 담는다. 민주주의 수준이 경제적 수준의 상한선을 정한다. 일본과 이탈리아가 비슷한 경제적 수준에서 곤란에 처한 것은 두 나라의 민주주의가 담을 수 있는 경제력의 크기가 그만큼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진입한 1980년대 초에 정책개혁을 단행했다. 자산과 소득의 격차를 키우는 부작용이 상당했지만 여론에 좌우되지 않고 의회와 함께 경제학적 근거를 가지고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했다. 1990년대 말에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도달한 독일에서도 대대적인 개혁이 진행되었는데, 슈뢰더는 자신의 지지 세력인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금과 노동시장 개혁에 나섰고 포퓰리즘과 거리를 두며 당대에 필요한 일을 추진했다. 슈뢰더에서 메르켈로 이어지는 21세기 독일 정부는 유럽에서 포퓰리즘과 가장 거리가 먼 정부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한국의 1인당 GDP는 박근혜 탄핵 전후로 일본과 이탈리아가 추락을 시작하던 때와 같은 수준에 올라섰지만, 문재인 정부 동안 미국이나 독일처럼 개혁을 추진하기는커녕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인구감소와 사회갈등도 극심해져서 일본과 이탈리아가 타락한 민주주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던 때와 비슷해졌다고 일갈한다. 그렇게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경고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겪었지만 상황은 도리어 악화됐다. 현재의 민주주의가 담을 수 있는 경제력의 크기가 최대치에 달했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일본과 이탈리아보다도 훨씬 짧다. 축적된 규범도 적다. 그래서 경제성장에 맞추어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하면 두 나라보다 훨씬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


포퓰리즘 사례


저자는 경제학의 기본법칙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경구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함께 내세웠던 소득주도성장은 “세상에 공짜도 있다”로 요약된다고 비판한다. 공짜 식사로 손해 본 요리사는 더 노력해서 그 손해를 만회하려 들기 때문에 공짜 식사를 즐긴 사람과 공짜로 요리한 사람 모두 결과적으로 이득을 얻는다는 논리이라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두 가지 논리로 이루어졌다. 첫째, 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매출이 증가하고, 매출이 증가하면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가 상쇄된다. 둘째, 임금이 올라 이윤이 줄어들면 사업주는 줄어든 이윤을 만회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투자가 늘면 노동생산성이 상승해 이윤이 회복된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임금을 올릴 정도로 경제가 나쁘면 노동자는 임금 상승분 전체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일부를 저축한다. 임금이 오른 만큼 매출이 늘지 않으면 수익성이 낮은 기업부터 어려움이 생겨 고용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임금 인상효과가 없어진다. 인위적으로 임금 인상이 필요한 기업은 생산성 향상이 쉽지 않은 산업인 경우가 많다. 이런 조건에서 임금 인상으로 투자를 유도하고 그 투자로 이윤 감소를 만회한다는 건 비현실적이다. 결국 인위적 임금 인상은 고용감소를 가져올 뿐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치명적 결함은 이미 경제학계에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7.3%로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임기 초반 2년간 14%로 급격하게 인상했다가 임기 후반 3년간 3%로 급격하게 낮춘 결과였다. 놀랍게도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저임금에 대한 여론에 비례했다. 2017년 긍정이 부정보다 17% 높았을 때 16.4%를 인상했고, 2018년에 이 차이가 1%로 낮아지자 10.9%를 인상했고, 2019년에 부정이 긍정보다 28% 높아지자 2.8%를 인상했고, 2020년에 이 차이가 31%로 더 확대되자 1.5%만을 인상했다. 결국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여론의 추이였다. 차라리 여론주도성장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당할지 모른다.”


정권교체의 동력이 되었던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주택 가격 상승을 투기꾼 탓으로 규정하며 부동산 적폐 청산을 주장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문재인 정부 4년간 15%씩 상승했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연평균 상승률은 5%였다. 물가까지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의 서울 아파트 실질 가격 상승률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높았다. 전국적으로 보면 자가 점유율이 60% 정도이다. 그렇다면 집값 상승에 대해 60%는 긍정 반응을 보여야 하지만 모든 여론조사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었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집값이 서울이 두 배 오를 때 지방은 별로 오르지 않았고 서울에서도 강북은 강남보다 덜 올랐다. 그래서 강남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모두 집값이 하락한 꼴이 되었다. 부동산 불만은 집값의 절대가격 상승이 아니라 상대가격 하락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시장 가격을 거스르는 정책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서울의 세입자에게만 서울 아파트를 분배하는 건 불공평하다.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고 싶은 전국 모든 사람에게 공평해야 한다. 전국 2천만 가구 모두에게 서울 주택을 분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시장에서 가격에 따라 매매하는 것 말고는 우리가 아는 방법이 없다.”


또한 문재인 정부 일각에서 우리 정부의 채무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며,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는) 무지한 생각은 총선의 매표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일부 지식인들은 한국 정부의 채무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2021년 한국정부의 채무비율은 약 50%였는데 상위 40개국 평균은 약 120%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한국이 비교해야할 대상은 선진국 전체가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 기축통화국을 제외해야 한다.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의 정부 채무 상한선이 다르다는 건 경제학에서 정형화된 사실이다. 그럴 경우 평균 채무비율은 약 50%이다. 같은 조건의 스웨덴은 40%, 대만은 30% 정도이다. 또한 채무 증가 속도도 우려할 정도로 높다. 국채를 발행하려면 국민 저축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국민 소득보다 국채 발행이 더 빨리 증가하면 금리가 오르고, 정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날 뿐 아니라 빠르게 늘어나는 채무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부자들이 안전 자산을 해외로 옮긴다. 한국의 정부 채무 증가율은 선진국 중에서 최상위권이었고 2021년 이후 5년간은 1위일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재정을 사용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단적인 예가 전국민재난지원금이다. 정부가 결정한 거리두기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보상하는 건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러나 피해가 없고 심지어 이득을 본 사람들에게까지 전 국민이라는 명분을 붙여 재정을 지출하는 건 명분도 근거도 없다. 더욱이 이 지원금은 총선을 앞두고 결정됐다.”


정치의 타락


저자는 정치의 타락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가 궁극적으로 서술하고자 했던 ‘경제성장의 정체로 인한 위기’가 바로 ‘정치의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타락한다는 것은 국민이 주권을 오남용해 민주주의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21세기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변화는 쿠데타 같은 급격한 파괴가 아니라 국민의 선택으로 시나브로 이뤄지는 타락이다. 언론에서는 타락한 민주주의를 포퓰리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다수 여론의 지배로 이해하며, 정치적 경쟁보다 정적의 청산을, 합리적 제도보다 대중의 열광을, 집단적 숙의보다 영웅적 결단을 선호하는 정치경향을 지칭한다. 개인적 자요, 개성을 키우는 다원주의, 과학에 근거한 제도, 전문가 존중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원리와 상극이다. 포퓰리즘은 개인과 이성이라는 인간 고유의 속성보다 집단과 두려움이라는 동물적 속성을 이용한다.”


“문재인은 이전의 권위적인 통치 스타일을 답습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력 권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타락한 민주주의는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방 동의 없이 게임 규칙을 변경하며, 경기 외부자를 이용하는 운동선수와 같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가 바로 이러하다. 청와대는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사법기관을 집권세력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심판 매수), 야당 합의 없이 선거법을 개정하고(일방적 규칙 변경), 코로나라는 국가적 위기를 총선 승리를 위해 정파적으로 활용(외부자 이용) 했다. 말하자면 합법적 독재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사상적 기조인 분단체제론 바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남북관계 개선이 현실적으로 무모하고 무지한 정책이었음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북한의 세습정부와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일까? 20세기에 공존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도 통일이 이뤄진 적이 없는데 어떻게 현대적 자유민주주의와 전근대적 군주정이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일까. 분단체제론은 이런 질문 자체를 회피한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이라는 상황에만 주목하며 통일의 상대인 북한의 상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탈냉전시대에도 변화 자체를 거부했다. 1950년대에는 소련의 탈스탈린 정책을 비판하며 이에 동조한 간부를 숙청했다. 1960년대에는 청와대를 급습하고 푸에불로호를 나포하고 미 해군 정찰기를 격추했다. 통일을 위한 전쟁을 준비한 것이다. 1970년대 북한 경제는 스탈린 정책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1980년대부터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도리어 냉전시대의 전략에 더 집착한 것이다. 1990년대 그나마 있던 자원을 핵무기 개발에 쏟아 부어 GDP가 30% 넘게 하락해 2010년대 말까지 1989년의 80% 수준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모한 정책은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뿌리인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실제로 아무런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김대중 정부는 햇빛정책으로 북한과 경제교류를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는 이를 계승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남북관계 개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북한은 1945년 이후 노선에 큰 변화를 준 일이 없다. 분단체제론은 친일잔재와 보수청산, 북한 친화적 외교정책을 주장한다. 이런 세계관을 따른 결과 과거사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고 한일 양국 시민들이 서로에 대한 혐오감정만 키웠다. 하노이에서 북미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 다음 북한은 남한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핵공격을 위한 필수무기를 개발했고 핵무기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제


저자는 이 모든 정치의 타락과 그로 인해 야기된 정치의 실패는 우리가 가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단언한다. 저자가 인용한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서 안창호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현행 헌법은 6월 민주항쟁 이후 여야 합의로 개정된 것으로 장기독재의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현행 헌법에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상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과 예산편성ㆍ제출권, 광범위한 행정입법권 등 그 권한이 집중되어 있지만 이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장치가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행 헌법으로 대통령의 자의적 권력행사가 가능하다”고 권한남용의 배경을 설명하였다. 저자는 현행 헌법에서 모든 대통령이 불행했던 것은 권한남용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촛불집회는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을 탄핵한 일보전진을 이루었지만 더 강해진 대통령과 더 난폭해진 여론이라는 이보후퇴를 가져왔다. 새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국정농단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 게 아니라 새 집권세력의 입지를 다지는데 사용됐다.”


“개헌에 관해 여론을 조사하면 미국 같은 4년 중임제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다. 그런데 4년 중임제는 미국처럼 대통령 권력이 충분히 의회에서 견제될 수 있을 때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강한 대통령, 약한 국회라는 조건에서는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 국민들은 미국의 상하원과 정당이 가진 역량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아울러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이 탄탄한 입법부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무시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국회를 대통령으로 가는 사다리로 여겼을 뿐이다. 그래서 내각제 개헌논의를 방해하고 대통령이 된 후 입법부를 활성화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를 보조하도록 만들었다.”


정치개혁의 방향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개할 방안으로 저자는 의원내각제를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무능한 우리 입법부 때문에 그 해법이 입법부 뿐 아니라 행정부까지 함께 몰락시킬 수 있다고 염려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궁극적으로 의원내각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실증적으로도 의원내각제가 선진국 정부와 경제에 유리하고, 원리적으로 봐도 미국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입법부 주도의 정부를 구성하는 게 현대 민주주의의 본류에 가깝다. 다만 한국의 현실에서 당장은 이를 도입하는 게 쉽지 않다. 입법부의 역량이 크게 향상되어야 의원내각제가 적절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무능이 해결되지 않으면 의원내각제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몰락시킬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은 입법부의 능력과 주도성을 키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무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범위를 넓혀야 하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추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민주주의의 본령에서 벗어난 정부 형태다. 이를 개혁하려면 먼저 입법부가 제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당장은 국회의 양당 독점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다만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낫다는 일반론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어차피 입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니 새로운 정당이 국회에 진입할 기회를 넓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개헌에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개헌을 방해하는 듯한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지 회의한다.


“김영삼은 1990년 3당 합당을 하면서 차기 정부를 의원내각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김대중은 의원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김종필과 연합했다. 노무현은 정치개혁과 책임총리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명박은 4년제 정부통령제 개헌을 공약했다. 박근혜는 책임총리제와 청와대에 대한 감사 기능 강화를 공약했다. 문재인은 문민화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에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으나 대통령 권력 개혁에 전혀 나서지 않았고 오히려 청와대 정부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더 커졌다. 2018년 4년 중임 지방분권 개혁안을 불쑥 던져놓고 끝이었다. 심지어 2020년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는데 정부 형태 변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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