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4 (수)

by 박인식

“고통은 하나님의 뜻인가” 하는 명제는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회사의 전부가 걸려있는 소송을 몇 년째 감당하면서, 회복될 수 없는 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을 만나면서 드리는 기도의 대부분은 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어느 것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지만 어느 구절을 가장 의지하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라”고 대답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출발점이자 뿌리이기도 했다. 그런 내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모순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여러 책을 읽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이런저런 글도 쓰면서 나름 고통에 대한 이해를 키워왔다. 이제야 조금 맥락이 잡혀간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맥락이 잡혀가는 정도일 뿐 아직 생각이 확실하게 다듬어진 것은 아니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책을 하나 소개받았다. 신학자가 일상의 언어로 욥기를 풀어낸 책인데, 일상의 언어로 썼음에도 길지 않은 그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시 읽고, 다시 앞으로 가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다 읽기는 했는데 정리하자면 또 그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그동안 내가 가져온 생각에 가장 가까운 글이다 보니 더 공들여 읽게 된다.


양명수 <욥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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