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살펴보기 (1)
보수 기독교계에서 <차별금지법> 반대를 선포하고 나섰다.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죄로 여겨 금하시는 것인데, 이 법은 오히려 동성애를 보호할 뿐 아니라 이를 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막는 악법이라는 까닭이다. 한국 범 개신교 차원에서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조만간 그 여파가 우리 교회까지 미칠 것이다.
논쟁에 휩쓸리고 싶지는 않지만, 이에 대해 생각을 밝혀야 될 상황이 생긴다면 굳이 피할 생각이 없다.
이 문제는 2007년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이후 논란이 계속 되어왔다. 이와 관련해 몇 년 전부터 이런저런 글도 찾아 읽고, 서로 다른 주장을 살펴보고, 그들이 제시한 근거를 확인해 오고 있어서 나름의 판단을 갖고 있기는 하다. 그렇기는 해도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일이 없으니 이를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나름의 판단이 타당한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도 있겠고.
설명이란 내 뜻을 상대에게 전달하자고 하는 것이니, 무엇보다 상대가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 상대가 잘 알아듣게 설명하자면 먼저 내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런 까닭으로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정리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기왕에 정리한 것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면서 검증하는 것도 내 생각을 다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주제가 확장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는 “1) <차별금지법>이 신앙의 자유를 속박하는지, 2) 동성애는 타고난 성적지향인지, 아니면 전환치료가 가능한 질병인지, 3) 성경은 동성애를 죄로 여겨 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살펴볼 생각이다.
어느 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적으로 아는 것이 없으니 앞으로 하려는 작업의 결과가 매우 거칠 수 있겠다. 여러분의 이해와 의견을 기대한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 중에 대표적인 것이 “교회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면 처벌받는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쪽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고,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민주적으로 성숙한 오늘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니, 그런 의도로 법안을 발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나. 다만 (얼마 전 선거법 파동에서 본 바와 같이) 좋은 의도로 만들었다고 해도 그 법이 의도한 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걸 감안한다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쪽에서 주장하는 대로 악용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발의된 이래 모두 일곱 차례 발의가 이루어졌다. 이 법안들은 성적지향 관련 조항이 문제가 되어 다섯 건은 회기만료로 폐기되었고, 가장 나중에 발의된 두 건은 발의자가 스스로 철회했다. 2016년 20대 국회에 들어서고 나서는 강고한 반발로 법안을 아예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따라가다 보면 법안 찬반의 논리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번에 발의된 법안이 그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개신교계에서는 법안에 성적 지향을 포함시킨 것을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하고 있다. 성경에서 금하는 동성애를 합법화하는 법안이니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성애라는 성적지향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성적 일탈’이기 때문에 성경이 금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지만, 동시에 당시의 지식수준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니 성경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려면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대의 지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예컨대, 성경에서 미친 것을 귀신들린 것으로 여기고 영적인 방법으로 이를 치료하지만, 현대의학은 그것을 정신질환으로 치료하고 있고,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동성애가 죄라고 단정 짓기에 앞서 그것이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살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의학의 영역이다. 만약 현대의학에서 동성애가 타고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환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동성애를 문제 삼고 이것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여느 학설과 마찬가지로 성적지향은 의학계 안에서도 선천적이어서 전환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학설과 이에 반하는 학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인으로서 그걸 판단하는 게 불가능하거니와, 판단할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임상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학계에서 임상적으로 어느 학설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니 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겠다.
‘동성애’라는 용어는 1867년에 크라프트에빙(Kraft Ebing)이라는 독일인 의사가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며, 스스로를 독자적인 정체성으로 인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같은 성적지향의 범주도 없었고 시각도 없었다는 말이다. 성적지향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성적지향을 죄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반대의 논거가 되는 ‘동성애는 죄’라고 해석하는 본문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 개신교의 정경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 필사자의 견해나 선택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성경이 역사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서라는 주장에 매우 공감하는데, 그것은 이런 오류의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은혜를 얻는데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먼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하여 본문이 어떤 뜻으로 기록되었는지 해석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합당한 해석인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니, 이는 ‘성경 본문’이라는 나무에 매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라는 숲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자료를 챙기다 보니 무모한 계획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살펴야 할 분량이 방대하다. 시작한 걸 도중에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다 보면 후회할 일이 왜 없을까. 하지만 그동안 가져왔던 생각이 옳은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것이 옳은 것이었고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루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혹시라도 잘못 생각한 것이어서 바로 잡아야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에 들인 수고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이 누군가의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 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