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잉여일기

2022.05.18 (수)

by 박인식

한동안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대남문 올라가는 모임을 가졌다. 내려와서는 구기동 두부집에서 막걸리 마시고 헤어지곤 했는데, 아마 한 해는 훌쩍 넘었지 싶다. 도심 가까운 곳에 그렇게 깊은 산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철마다 바뀌는 풍경은 또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그 중 압권은 문수사에서 계곡 건너편에 가지마다 핀 얼음 꽃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비 오는 날 맑은 물 넘치는 계곡을 바라보는 것도 그에 못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그저 평지나 걷고 가급적 산에는 가지 말라고 했지만, 홍제천길을 걷고 안산자락길을 걷다 보니 예전에 자주 올랐던 대남문을 가볼까 싶은 생각이 살살 들기 시작했다. 전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열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났다. 거뜬해진 몸으로 물 병 하나 챙겨들고 홍제천길을 따라 세검정까지 올라가 구기동 길로 접어들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카페 발코니에 나이 든 분이 앉아 있는데 낯이 익었다. 지나치는데 목소리까지 귀에 익었다. 정경화 선생이셨다. 잠시 망설이다 되돌아가 정 선생님이시냐고, 지나가다 반가워 인사라도 드리려한다고 말씀드렸다. 귀에 익은 유쾌한 목소리로 뭐 하시는 분이냐, 어디 가시느냐 물으셨다. 모습도 그렇고 목소리도 오십대라고 해도 믿겠더라. 그저 하는 일 없이 세월만 축낸다는 대답에 세상에 하는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은퇴했다고 하니 뭐 하던 분이냐 물으며 면박을 주시는데 그것도 유쾌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기억으로만 남기기로 했다.


산을 오를 때는 숨 가빠서 모르겠더니 내려올 때 무릎을 마음대로 펼 수가 없었다. 욕심을 잠시 접어두었다가 얼음 꽃이 필 때쯤 한 번 와야겠다. 그게 너무 멀면 큰비 내리고 계곡물 보러 한 번 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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