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닐 때 몹시 가난했다. 한동안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중학교 가는 것도 아득해 보였다. 하지만 가난하다는 것이 특별히 부끄럽지 않았다. 돌아보면 어떻게 견뎠나 싶기는 해도 그때는 그것이 고통인 줄 몰랐다. 모두 그렇게 살았으니 말이다.
작년 가을 한국에 돌아와 가장 자주 만나는 이들이 그 어려운 때를 함께 지낸 친구들이다. 우리 때는 중고등학교 6년을 함께 다녔다. 그 중에서도 국민학교 때 한 동네에서 살면서 함께 과외공부를 한 친구가 있는데, 오래 전에 미국에 자리 잡아서 졸업한지 오십 년 가까이 되도록 한 번을 못 만났다. 최근 십여 년 꽤나 자주 한국을 찾았지만 나와는 늘 엇갈려 전화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언젠가 전화하면서 죽기 전에 얼굴 한 번 보겠나 한탄하기도 했다.
그가 집안 혼사로 잠깐 다니러 왔다. 짧은 일정이어서 자주 보지는 못하고 일요일에 다른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번 보고 보내기는 영 섭섭해 시간 날 때 잠깐이라도 보자고 했다. 오늘 시간이 나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오십 년 만에 만나니 이야기가 쉽사리 이어지지 않는다. 어머니 이야기, 형제들 이야기, 자식 이야기.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 나누는데 나는 그가 대견했고 그 역시 나를 그렇게 바라봤다. 왜 안 그렇겠나, 어렸을 때 만난 친구들이 험악한 세월을 지나며 일가를 이루고, 이젠 재롱떠는 손주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좀 더 볼 날이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뭘 장담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별이 되었다는 소식으로 찾아오는 친구가 하나둘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