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한지 오십 년이 된다. 사십 년 되던 해는 멀리 있어서 참석을 못했는데, 기념행사 주관한 친구 말이 요란하게 치르고 나니 남는 것도 없이 후회만 되더란다. 그래서 오십 년 되는 내년에는 기왕에 마련해놓은 재정으로 오붓하게 지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년이면 한 번에 그리운 얼굴들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반갑고 기대된다.
리야드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그저 휴가로 잠깐 다니러 왔을 때나 친구를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친구들은 시간이 엇갈려 아예 볼 수 없었고. 오늘 뉴욕에, 북경에, 시애틀에 나가 있던 친구들을 모두 한 자리에서 만났다. 동창 모임을 늘 주선하는 친구는 자기 페북 담벼락에 “참 동시에 만나기 힘든 뉴욕 친구, 북경 친구, 리야드 친구, 시애틀 친구. 겨우 호국의 달 5일 5시 5명이 만났다.”고 썼다. 하여간 말 만드는 재주는.
서울 올 때마다 제일 먼저 연락하고 제일 먼저 만나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가 유독 예뻐서는 아니고, 그를 통해야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모이는 곳으로만 모인다는. 그가 소식을 가장 많이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물어보고, 그러면서 자기 소식을 그에게 남겨놓고. 그래서 그는 언제나 친구들의 소식에 정통하다. 그렇다고 해도 연락 오는 친구마다 언제 시간이 되느냐, 누구를 만나고 싶냐 물어서 약속을 잡고, 매번 그 자리에 참석하는 일은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생각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유달리 결속력이 높은 집단이 있다. 집단 안에 면면히 흘러내리는 전통 때문에 결속력이 유지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누군가 그 일에 미쳐서 자기를 내던지는 희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일에 미친 누군가가 바로 오늘 모임을 주선한 친구다.
모임을 주선한 것까지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매번 참석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이 친구는 그것으로 얻은 상흔이 완연하다. 이미 부인에게서 신용을 잃을 만큼 잃고 몸도 상당히 축 났을 것이다. 회복과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