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으로 이사 온 손윗동서와 안산자락길을 걷고 내려오는 길에 동서가 좋아하는 복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소주가 예전보다 훨씬 순해져서 아쉬웠는데, 그래서 점심 때 반주하기는 오히려 나아졌다. 음식 맛을 돋우는데 술이 없을 수는 없고 대낮부터 취기가 오르는 것은 싫을 때 딱 안성맞춤이거든.
아내 때문에 동서를 알게 되었지만 결혼까지 이른 데는 동서 힘이 컸다. 아직 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어서 툭하면 술 사달라고 찾아가고, 동서는 마다않고 늘 반갑게 맞아줬다. 형제 없이 외롭게 자란 탓인지 사람을 가리기는 했어도 박절하지는 않아 따라다니는 이들을 내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동서가 잠시 처가살이할 때 동서 후배라는 이름으로 처가 문턱을 어물쩍 넘었다.
조용한 성격인데다가 대인관계가 요란한 편이 아니어서 손에서 일을 놓은 후로 어지간해서는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모처럼 휴가 왔을 때도 처형만 보고 동서는 보지 못했다. 갑자기 집을 옮기게 되어서 굳이 우리 동네로 오시라고 했다. 노년에 함께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 꼼짝 않고 집에만 있는 아버지 때문에 걱정하는 조카들 안심 시킬 수 있겠다 싶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외출이 드물었으니 산길이 만만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내가 미안하지 않게 열심히 따라 걸어서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이사 오기로 한 후 몇 번 만나는 동안 보지 못했던 밝은 표정에 내 자신에게 칭찬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굳이 돌려세워서 사진을 찍고 조카들에게 보냈다. 덕분에 조카들에게 점수 좀 땄다.
사람 사는 게 그렇지 않은가. 일이 있어야만 만나는 것도 야박하고, 만나서 꼭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나 밥 먹고 반주도 한 잔 하고. 그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나. 다음 주에는 홍제천길 걷고 연희동 이품에 가서 청요리에 백주 한 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