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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2. 2022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희귀금속은 어떻게 세계를 재편하는가?

기욤 피트롱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21년 2월 5일


2010년 중국이 센카쿠열도 영토분쟁을 이유로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다고 선언하자 첨단기술장비 생산국인 일본은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희토류는 첨단기술장비를 생산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 희토류 가격은 열 배 이상 폭등했고 미국은 그로 인한 피해에 대비하기 위해 폐광을 다시 가동한다고 법석을 떤 일이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희토류가 무엇인지, 어디에 쓰이는지, 어느 곳에서 주로 생산되는지 무엇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얼마 전에 이 책을 소개하는 방송을 들었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희귀금속은 어떻게 세계를 재편하는가?”라는 이 책의 부제를 듣는 순간 읽어야 할 책으로 여기고 독서목록에 올려놓았다.


먼저 희귀금속은 수요에 비해 매장량이 크게 부족하거나, 매장량이 풍부하더라도 추출이 어렵거나, 일부 국가에 편중되어 공급 리스크가 큰 금속을 말한다. 희토류(rare earth element)는 희귀금속 중 원소 주기율표 원자번호 57번에서 71번까지 15원소에 스칸튬과 이트륨을 더한 17개 원소이다. 원소가 정해져 있는 희토류와 달리 희귀금속에 대한 정의는 국가와 그 국가의 산업구조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금속 56종을 희귀금속으로 지정해 관리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 희귀금속에 포함된 마그네슘ㆍ니켈ㆍ인ㆍ비소ㆍ안티몬ㆍ주석ㆍ비스머스 등 7종을 제외하는 대신 칼슘ㆍ루비듐ㆍ토륨ㆍ우라늄ㆍ플라토늄을 추가해 53종을 희귀금속으로 관리한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지정한 희귀금속에서 마그네슘ㆍ카드뮴ㆍ인ㆍ실리콘 4종을 제외한 52종을 희귀금속으로 관리한다.


프랑스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PD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인 저자는 중국의 희토류부터 알래스카의 석유, 수단의 고무에 이르기까지 원자재와 관련한 세계의 정치ㆍ경제ㆍ환경 문제를 꾸준히 취재해 왔으며 40여 개국에서 100편 이상의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책으로 프랑스 최고의 경제학서적에 수여하는 튀르고상과 글로벌 뉴스채널 BFM TV에서 수여하는 경제학 분야 최우수상, 같은 해 콩피에뉴 과학기술대학교에서 기술 분야 최고의 책에 수여하는 로베르발 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3대 에너지원인 석탄ㆍ석유ㆍ천연가스 소비량은 현상을 유지하거나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희귀금속의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희귀금속이 최신 과학기술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소재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오늘날 세계는 희귀금속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희귀금속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광산을 선점하기 위한 갈등과 영토분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 각국이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희귀금속 채굴량을 15년마다 두 배씩 늘려야 하며, 지금과 같은 생산속도라면 일반금속과 희귀금속 15개 정도는 50년 이내에 고갈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에 따르면 희귀금속으로 자동차 배기가스를 줄이고, 작은 전력으로도 전등을 켜고, 더 가볍고 견고한 산업용 신소재를 만들고, 자동차나 비행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각종 디지털 기기 속을 흐르는 전류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모터의 핵심 부품인 자석의 크기 때문에 휴대폰의 크기를 줄일 수 없었지만, 크기가 1/100에 불과한 초강력 희토류 자석이 나오자 모터 크기가 줄어들어 휴대폰을 소형화할 수 있었으며 에너지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희토류를 사용하면 모든 물체를 더 작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희토류 자석은 전기 모터의 힘을 배가시킨다.


희귀금속은 전쟁무기를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탱크ㆍ구축함ㆍ레이더ㆍ스마트폭탄ㆍ대인지뢰ㆍ야간투시경ㆍ수중음파탐지기ㆍ레이저대포에도 쓰인다. 21세기 들어와 분쟁은 점점 늘어나고 교전국들은 육지와 바다에서만 맞붙는 게 아니라 하늘과 우주와 사이버 공간에서도 맞붙는다. 점차 전자 전쟁ㆍ미디어 전쟁ㆍ가상 전쟁으로 옮아가는 중이다. 새로운 전쟁에는 서버와 드론ㆍ레이저 전투기ㆍ위성 편대ㆍ우주 발사용 로켓과 같은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려면 희귀금속이 필요하다. 사실 여기에 필요한 희귀금속의 양은 매우 적다. 런던의 한 분석가는 향후 3년간 미국 방위산업에 필요한 희토류 총량은 배낭 하나에 담을 정도로 적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몇 줌 안 되는 희귀금속이 때맞춰 공급되지 않으면 미국은 군사대국의 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기술 강국, 산업 강국인 미국이 희토류와 희귀금속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그 위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이 향상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소재가 달라지고, 달라진 소재가 어디에서 생산되느냐에 따라 세력 판도가 달라지는 건 역사 이래 지금까지 되풀이된 일이다. 그러니 희귀금속이 필요해지고 희귀금속을 생산하는 국가의 영향력이 커지는 건 자연스럽다. 문제는 희귀금속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더구나 그것을 무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오늘날 에너지 전환의 두 축이 되는 저탄소 에너지와 디지털산업에 없어서 안 되는 일련의 희귀금속을 독점하고 있다. OPEC의 14개 회원국은 세계 원유의 41%를 생산하고 있는데도 세계 에너지 시장을 좌우하는데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95%를 담당하고 있으니 그 영향력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1992년 등소평은 중동에는 석유가 있지만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며 일찍이 희토류의 영향력을 언급하며 적대적인 희귀금속 무역정책을 천명한 바 있고 그 연장선에서 2005년부터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2005년 6만5천 톤이던 수출량은 2006년 6만2천 톤, 2009년 5만 톤에 이어 2010년에는 3만 톤까지 줄어들었다. 또한 희토류 뿐 아니라 모든 희귀금속 수출량을 줄였다. 그리고 2010년 9월에는 희귀금속을 무기화해 센카쿠열도를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에 급기야 수출 금지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일본은 첨단기술장비 생산에 재앙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시장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국가들이 광업개발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결과 희토류를 장악한 중국의 독점적 지휘는 무력화되었을까? 저자는 그 시도가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한다. 2010년 중국이 수출 금지령을 내린 직후 상한가를 찍은 희토류 가격은 그 후 뚜렷한 이유 없이 폭락을 거듭했다. 저자는 분석가들의 시선을 빌려 중국이 고의로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말하자면 중국이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른다는 것이다. 중국은 생산한 희토류를 국내에 묶어둘 수도 있고 한꺼번에 풀어서 가격을 후려칠 수도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광산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모델을 구상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갑작스럽게 광물가격이 5배 10배씩 떨어진다면 어떻게 파산을 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실제로 많은 광산기업이 파산했고 광산개발 허가권은 고작 수백 달러 선에서 거래되었으며, 단기적인 이득을 겨냥하고 섣불리 광업활동을 재개했다가 중국의 계략에 빠져 낭패를 봤다고 말한다.


결국 희토류를 포함한 희귀금속의 대부분은 중국이 갖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광산개발을 추진할 경우 중국이 저가 정책을 펼침으로서 기업을 고사시키고,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국가에게는 이를 무기화하고 있기 때문에 희귀금속에 관한 한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책에서는 희귀금속 개발을 위한 다른 국가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찾기 어렵다. 말하자면 이 책의 부제인 “희귀금속은 어떻게 세계를 재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한 셈이다.


희귀금속과 관련한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광산개발에는 필연적으로 오염이 수반되는데, 제련과정에서 사용하는 화학제품 뿐 아니라 이때 발생하는 분진과 제련과정에서 발생한 광미(광물찌꺼기)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광물을 추출하기 위한 광석 분쇄과정에 질산이나 황산과 같은 화학제품을 사용하며 희토류를 소재로 만들기까지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 희토류 1톤을 얻는데 물 200톤이 필요하니 그만큼 수질이 산이나 중금속으로 오염되고 그 결과 각종 공해병이 발생할 뿐 아니라 주변 농작물이 고사하게 된다. 희토류를 포함한 희귀금속이 에너지 절감의 주요 도구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환경오염을 감수해야 한다는 딜레마는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희귀금속으로 중국이 서방국가와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등소평은 경제 덤핑, 환경 덤핑 정책을 선택한다. 그 결과 중국 내 경작 가능한 면적의 10%가 중금속으로 오염되었고, 지하수의 80%가 사용이 불가능해졌으며, 500대 도시 중 다섯 곳만 대기질이 국제기준을 충족하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 300만 명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비단 중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콩고, 카자흐스탄,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만 비난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찌 보면 중국은 누구도 하지 않으려는 궂은일을 도맡아 한 것뿐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희귀금속은 일반적으로 합금형태로 존재하므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분리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재활용율은 3%를 넘지 않는다. 희귀금속은 오롯이 광산개발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이와 같이 희토류나 희귀금속을 얻기 위해 광산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은 외면하고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탄소배출량 감소, 청정에너지 같은 것에만 관심을 쏟는다고 지적한다. 전기차는 이들이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교통수단이지만 공해를 피할 수 없는 광산개발로만 얻을 수 있는 희토류가 필수적인데 어느 누구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물자원을 개발하는 일이야 말로 환경을 척박하게 만드는데도 말이다. 환경운동가들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환경운동가들이 내세우는 주장 가운데 상당수가 모순으로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의 발표를 빌어 전기차를 생산하는데 휘발유차보다 4배나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운영 중에는 탄소 배출이 적으므로 결과적으로 전기차의 탄소배출량이 휘발유차의 3/4 정도에 그치기는 한다. 그러나 전기차의 역량이 향상될수록 생산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기 쓰일 것이며 그에 따라 배출되는 온실가스도 늘어날 것이므로 긴 안목으로 보면 전기차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2016년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에서는 생산부터 폐기까지 제품 수명 주기의 전 과정을 본다면 전기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휘발유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별 차이가 없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올리비에 비달은 풍력터빈을 설치할 경우 전통적인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설비보다 콘크리트는 15배, 알루미늄은 90배, 철과 구리와 유리는 50배 이상 쓰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7년 세계은행은 수소나 태양광 발전도 풍력발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저자는 녹색에너지 전환이 남길 생태 발자국을 제대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수명 주기에 대한 훨씬 더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광업에 드는 물 사용량, 에너지 운송과 비축,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녹색 기술 재활용에 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에너지 전환 활동이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크고 작은 영향까지 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희토류를 포함한 희귀금속 시장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 그들이 이를 무기화하는 것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사실과 희귀금속을 확보하기 위해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할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책을 읽고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암담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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