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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6. 2022

보이지 않는 중국

무엇이 중국의 지속성장을 가로막는가

스콧 로젤, 내털리 헬

박민희 옮김

롤러코스터

2022년 4월 15일


2009년 사우디에 부임할 때만 해도 중국은 싼 값 하나로 승부하는 나라에 지나지 않았다. 일을 감당할 실력이 안 되니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사업을 수주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결국에는 계약을 해지 당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발주처로서는 그것이 결코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런 저가 낙찰이 곧 바로 잡힐 것으로 생각했다. 그 후로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중국 기업들은 아직도 건재할 뿐 아니라 오히려 시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싸구려라는 이미지로 대표될만한 저가의 생산기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최준영 박사가 추천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경쟁자일 뿐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대상’으로 바뀌었다. 부임 당시 고속전철은 한국이 중국보다 기술력이 앞섰고 더구나 우리 회사가 그 분야에서 선두에 서있었기 때문에 사우디에서 발주되는 고속전철 사업에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년 사이에 엄청난 고속전철 건설실적을 쌓아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멀리 달아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는 이런 사례가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지경이 되었다.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라는 표현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도 애써 무시하거나 보여주지 않으려는 문제가 없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인 스콧 로젤은 이 책에서 40년 가까이 중국의 농업과 경제, 교육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오면서 확인한 중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중국을 적대시하거나 중국이 세계 강국의 대열에서 탈락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저자는 중국이 자신들의 문제를 하루 속히 해결하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중국의 경제 쇠퇴로 인한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세계 모든 나라들의 이익을 부합되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선 지난 30년간 효과를 발휘했던 경제 전략은 저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중국의 비교우위가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저숙련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해오던 기업은 좀 더 싼 임금을 찾아 눈길을 중국 밖으로 돌리거나 공장 자동화를 통해 인력을 줄였다. 실제로 삼성전자 공장은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나이키 공장 역시 중국 바깥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그뿐 아니라 저숙련 인력을 가장 많이 흡수한 기간시설 건설도 이제는 거의 끝으로 치닫고 있다. 2017년 현재 중국의 전체 도로망은 13만 킬로미터를 넘어 세계 최장 규모를 자랑한다. 도로가 놓일 만큼 다 놓였다는 말이고, 그래서 이에 참여했던 인력은 갈 곳을 잃었다는 말이다.


“중국 제품이 월마트의 진열대를 완전히 점령하던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중국 저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이 임금은 젊은 남녀를 농지에서 끌어낼 만큼 높았다. 시간이 흘러 임금이 올라야 할 상황에서도 엄청난 인구 덕분에 농경지를 떠나 공장으로 유입되는 인력은 언제든 있었기 때문에 낮은 임금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농촌에서 빠져나올 인력이 고갈되기 시작한 2005년부터 임금이 연평균 10%씩 인상되면서 공장들이 낮은 임금을 찾아 중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의 노동력은 2010년 정점을 찍었다. 출산율 감소로 노동시장에 유입되는 사람보다 은퇴하는 사람이 많아져 전체 노동력이 감소했기 때문에 임금이 줄어들 일이 없게 되었고 오히려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 상승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중국이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가 설명한 대로 저임금에도 취업을 희망하는 노동력이 끊임없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력이 더 이상 공급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임금상승이 불가피 하고 그것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고급화하거나 부가가치 높은 산업으로 옮겨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고급 노동력이 받쳐줘야 한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중국의 딜레마가 있다고 진단한다. 임금이 오른 만큼 숙련도가 높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기에는 중국의 교육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은 12.5%에 불과하고 이들을 포함해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30%를 넘지 않는다. 비슷한 수준의 멕시코나 태국, 터키에 비해서도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일부 엘리트는 탁월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취업인구 대다수는 저학력으로 숙련도가 요구되는 일을 감당할 역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교 대상인 한국이나 대만의 경우 국민 대다수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어 중국과 같은 상황을 맞았을 때 높은 숙련도가 필요한 고임금 일자리로 쉽게 옮겨 앉을 수 있었고 그것이 경제 전환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중국의 첨단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만큼 낮은 것이 사실이다. 저숙련 노동력이 새롭고 창의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일자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이 갖춰져야 한다. 새로운 상품에 대해 이해하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동료들과 협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중국 노동력의 70%가 중학교 이하의 학력으로 저숙련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앞으로 구조적 실업자가 2~3억 명에 이를 것이고, 이로 인해 몇 십 년 심각하게 양극화된 경제를 겪어야 할 것이며, 양극화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자신을 스스로 부양할 수 없는 이들 때문에 경제성장에 쓰일 공공자원을 고갈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멕시코가 개발도상국을 곧 벗어날 것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추락한 것도 이와 같이 인적자본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평균 교육기간은 8년 정도인데 구체적으로는 15년 이상이거나 8년 이하인 경우로 나뉠 정도로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중 8년 이하가 3억 명이어서 전체 인구로 보면 절대다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을 생각한다면 그로 인한 영향범위는 훨씬 커진다. 그리고 교육양극화는 필연적으로 경제양극화로 이어진다.


저자는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는 것은 인적 자원의 수준에 달렸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멕시코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사례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50%가 넘지 않는 어떤 나라도 중진국의 함정을 뛰어넘지 못해 결국 고소득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 비율은 일본 99%, 미국 90%, 독일 87%이며 OECD 평균도 78%에 달한다.


물론 저숙련 노동력을 재교육 시키는 방안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저자는 개발도상국에서 성인 재교육이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기엔 농경지가 너무도 협소해 그것 역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빈곤의 악순환을 유발하게 되고, 범죄율이 상승하고, 경제성장 능력이 약화되며, 외국기업의 투자를 꺼리게 됨으로서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중국의 교육수준이 이렇게 낮은 것은 정부의 의도적인 교육정책 때문이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1966-1976년 동안 정치적 이유로 모든 대학과 인문계고등학교의 문을 닫았고 고학력자를 조직적으로 모욕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목을 정치와 사상으로 제한한 결과 등소평이 집권하던 1988년에는 집권 초기인 1978년에 비해 오히려 고등학교 진학률이 낮아졌다. 중국은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고등학교 교육에 덜 투자했고, 2006년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상교육을 시작했다.


이와 같이 중국이 농촌 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학력 격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는데 저자는 그 원인이 농촌 아이들이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저자에 따르면 농촌 신생아 절반 이상이 영양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영양부족으로 빈혈을 겪는 아이들이 30%에 달했고, 33%에 달하는 아이들이 장내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어 그렇지 않아도 문제였던 영양부족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 결과 유아는 절반 넘게 발달지체를 겪고 있다. 또한 시력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20%에 달했는데도 안경을 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6학년 아이들 중에 1/3이 안경이 필요했지만 안경 낀 아이들을 찾을 수 없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은 30% 정도인데, 도시는 44% 농촌은 11%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 단지 도농 간에 교육 자원이 불평등하게 배분되었기 때문만은 아니고 청소년의 건강이 매우 취약해 교육받을 환경이 된다고 해도 제대로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데에는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60년대부터 시행한 호구(후커우)제도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호구제도는 호구(출신지)를 도시와 농촌으로 나누고 자신의 호구에서만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사회복지 혜택을 받게 한 것이니 현대판 카스트제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취업을 위해 도시로 이주해도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게 되었고,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인지 발달이 지체된 경우가 많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중국이 그토록 드러내기 싫어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중국이 계속 성장하고 안정을 유지하며 번영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제를 지적할 뿐 아니라 책 말미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갓난아기부터 다섯 살까지 모든 어린이에게 평생을 위한 건강한 인지 능력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한다. 모든 농촌 어린이가 의료 서비스와 학습을 위해 필요한 영양을 갖출 수 있도록 보장한다. 농촌 지역의 질 낮은 직업고등학교의 문제를 극복한다. 12년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무상교육기간 동안 과도한 교육격차를 줄이고 모든 학생이 어디서 태어났든 상관없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중앙정부에서 교육투자를 관리한다. 농촌 어린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막고 있는 호구제도를 제거한다.”


저자는 이러한 조언이 받아들여질 경우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최소한 1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성장은 급속히 둔화되고 실업률은 빠르게 증가하며 사회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지는 장기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한다. 저자도 이런 경우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지만, 만약 중국이 인적 자본을 현재 상태에서 전혀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상황은 급격하게 통제를 벗어나 경제 급락을 겪고, 실업률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고, 경제의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전 세계 시장으로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가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가 내내 주지한 것처럼 세계 공급시장으로서 중국의 영향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피해는 단지 중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국이 경제력을 기반으로 거대한 군사력을 갖추고 주변 국가에 거침없는 언사와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매우 불편하고, 어쩌면 내심 그들의 몰락을 바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몰락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중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정도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협력을 통해 그들이 경제 전환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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