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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8. 2022

깻잎 투쟁기

이주노동자들은 누구인가?

우춘희

교양인

2022년 5월 18일


나는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았다. 하는 일에 따라서 대접이 다르기는 해도 사우디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예외 없이 족쇄에 묶여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사우디에서 거주허가를 얻은 이주노동자는 자기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게 불법이었고, 사우디 밖을 여행하려면 고용주를 통해 출입국 비자를 얻어야 했다. 그래서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내 여권 가지고 내 나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고용주가 해고하고 출국시키면 그 고용주의 동의 없이는 취업을 위해 사우디에 재입국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저임금 이주노동자 중에는 고용주로부터 폭력과 수모를 당하고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불법 체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도처에 널렸었다.


내가 사우디에 부임하던 2009년에도 이미 한국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 있었지만 이제는 3D 업종은 그들이 아니면 돌아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전체 농어업 임금 노동자 10명 중 4명은 이주노동자이고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이 비중이 훨씬 커서 이제는 이주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주인권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저자 우춘희가 4년여 동안 농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겪었던 어두운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 책 또한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사우디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와 억압과 폭력을 우리 땅에서 그대로 당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한국도 이주노동자들이 크게 늘고 그들이 푸대접 받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것조차 견디기 힘들었던 사우디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의 수모가 우리 땅에서 똑 같이 되풀이 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건 한국 뿐만은 아니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사람들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농업 이주노동자로 일한다. 동유럽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서유럽으로, 캄보디아ㆍ태국ㆍ베트남ㆍ네팔 사람들은 한국이나 대만 또는 일본으로 간다. 독일의 허드렛일은 터키 사람들이 아니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나라에서 한국처럼 이주노동자들을 대우했는지 모르겠다. 잘 알다시피 우리가 이주노동자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오래 된 일이 아니다. 멀리는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가 있었고 가까이는 열사의 중동 사막에 파견된 건설노동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의 업무가 힘들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들이 인간적인 수모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주노동자를 홀대하기로 이름난 사우디에서도 우리 건설노동자들을 그렇게 취급하지는 않았다. 문득 우리 경험이 이런데 이주노동자를 홀대하다 못해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의문이 일어난다.


저자는 우리 땅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불법 부당한 일들이 우리 짐작을 넘어선다고 고발한다. 악덕 고용주들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불법적인 일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시간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 그 노동의 대가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체불하거나 아예 떼어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숙소라고 제공하고 도심 주거비보다 비싼 기숙사비를 뺏어간다. 언어폭력은 말할 것도 없이 물리적인 폭력에 성폭력까지. 파렴치범의 전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숙소가 얼마나 열악한지 책 여러 곳에서 자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농지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그 안에 샌드위치 패널이나 컨테이너로 방을 만든다. 불법 건축물에는 정화조 신청을 받지 않기 때문에 화장실도 없다. 햇빛도 들지 않고 환기도 되지 않으니 어두컴컴하고 습해 온통 곰팡이 천지이다. 비바람이나 화재 같은 재난에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기숙사비로 통상임금의 8%(임시주거시설)~15%(상시주거시설)를 공제한다. 서너 평에 불과한 방 같지도 않은 방에 서너 명을 묵게 하고 한 사람에게서 월 15~20만 원을 받으니 방 하나 임대료가 45~80만 원인 셈인데, 이는 도심에서도 그보다 훨씬 좋은 방을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견딘다. 임금을 받기 위해 견딜 수밖에 없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출국조치를 당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비용을 보상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그대로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남기도 하고, 부당한 대우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이주노동자들을 옭아매는 장치 중 하나가 바로 ‘고용허가제’이다. ‘고용허가제’ 아래에서는 고용주가의 동의하지 않는 한 이직이 불가능하고 계약을 해지하면 출국해야 한다. 물론 현행법에서는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부당하게 대우하거나, 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일을 계속할 수 없거나, 고용주가 휴업이나 폐업했을 경우 고용주의 동의 없이 이직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규정을 알지도 못하고, 안다 해도 언어 장벽으로 이를 제대로 소명할 수도 고용주의 불법을 입증할 방법도 없고, 입증해도 주무 관청에서 부인당하고, 이러는 과정에 출국 일자가 다가오면 예외 없이 떠나야 하니 이런 구제 절차는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이를 방지하자면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해야 한다. 저자는 근로계약서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계약 조건을 물론 자기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온다고 말한다. 예컨대 ‘11시간 근로에 3시간 휴게’ 조건으로 근로계약을 만들고 8시간 작업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작업 목표를 설정해 휴게시간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고용허가제’가 농어촌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제도이지 저개발국가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이용만 할 뿐 한국에 정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촘촘한 규정으로 그들을 옭아매고 강제노동의 삶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참다못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앞에서 “우리는 노예가 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고용허가제’의 가장 큰 해악은 이주노동자가 쉽게 직장을 옮길 수 없도록 만들어 사실상 강제노동을 가능하게 만든 사업장 변경 규정이다.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사업장 변경 허용’에서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조건을 열거하고 있지만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사실상 사업장 변경 제한 규정으로 작용한다. 사우디에도 동일한 규정이 있어 이의 폐해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익숙하다. 이에 대해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강제노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으면 고용주의 동의를 얻어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고용주의 계약위반 사항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20년 이주인권단체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지만 다음 해에 헌법재판소는 이 청구를 각하하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것은 고용주의 안정적 인력확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효율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헌법재판소에서조차 기본권을 해치는 법령을 합헌으로 판단한 것이다.


저자는 하고많은 농작물 중에 왜 깻잎 농사에 뛰어들고 책 이름마저 그렇게 지었을까? 농업 이주근로자를 고용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농한기라고 한다. 농업 특성상 농한기가 없을 수 없는데 이주노동자로서는 몇 달을 쉬면 그만큼 손해이다. 그런 가운데 깻잎농사는 일 년 내내 쉴 틈 없는 일이다 보니 고용주나 이주노동자의 조건에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위면적당 수입도 다른 작물보다 높고 현금 회전율이 높은 것도 장점이지만, 아무튼 이주노동자의 특성 때문에 우리 농업의 판도가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언어 때문에 불평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작업장에 숙소를 마련해 놓으니 출퇴근에 시간 빼앗길 일도 없고, 식사나 새참을 준비해 주지 않아도 되고, 명절이라고 일을 쉬는 경우도 없으니 고용주로서는 이주노동자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된다. 그러다 보니 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고령의 농촌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뺏는 사회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해 사업장을 이탈하는 이주노동자가 생긴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업장 이탈로 불법체류자가 된 이주노동자들은 체포와 추방의 위험을 제외한다면 오히려 운신의 폭이 넓어져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고용주 역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기 때문에 쉽사리 그들을 신고하지 못한다.


이제는 국제노동기구나 국제이주기구의 결정에 따라 더 이상 그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부르지 않고 미등록 노동자라고 부른다. 사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를 불법운전자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체류규정을 위반했다고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건 워낙 맞지 않는 일이었다. 불법체류자를 미등록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들에 대한 대우도 차츰 나아져가기는 한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진 초기에는 미등록 노동자들이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 추방될까 두려워 백신 접종을 기피했던 일이 있었지만, 그것이 인권에 관계된 일이기도 했고 바이러스가 합법체류자와 불법체류자를 가려 전파되는 것도 아니어서 쉽게 그들까지 백신 접종을 받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이 사우디에서도 있었고 불법체류자를 거칠게 다루기로 이름난 그들 역시 체류 자격에 관계없이 모든 거주민들이 백신을 맞도록 조치하였다.


이밖에도 저자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직접 겪고 지켜본 고통을 세세하게 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겪는 홀대와 고통이 알려지기도 했고 우리사회도 조금씩 성숙해 가면서 그들에 대한 대우가 나아지기는 한다. OECD 기준에 따르면 외국인이 5%를 넘는 사회는 다문화사회 또는 다인종사회로 분류된다. 최근에 코로나로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4.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문화사회, 다인종사회가 되면 당연히 국가정책이나 사회구성원의 태도가 그에 걸맞게 성숙해져야 한다.


지난 봄, 반은 은퇴했다는 이유만으로 잉여인력이 된 것을 견디지 못해서 반은 아직 힘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객기로 부산 공사현장에서 인부로 일했다. 여섯 명 중 몽골 중년 하나와 우즈베키스탄 청년 하나가 있었는데 섬세하지는 못해도 힘이 좋고 요령도 크게 피우지 않았다. 힘이 넘치는 그들 때문에 내 힘이 달린다는 게 더욱 두드러져 결국 한 달 만에 일을 접어야 했지만, 덕분에 이주노동자가 우리 삶에 생각 이상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공사현장마다 이주노동자들이 빠짐없이 있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조주 앞에서는 인간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창조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인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누구도 다른 누구를 업신여기거나 홀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이제는 그들의 기여 없이 사회가 굴러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지 않았나. 나는 이것이 종교가 개입하는데 더욱 힘써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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