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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19. 2022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

재미있는 주사(酒史)

박일환

달아실출판사

2020년 7월 20일     


예전에는 집집마다 국어사전 한 권씩은 있었다. 국어사전 모바일 앱이 생기고 나서 없애기는 했지만, 나 역시 국어사전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곁에 두고 익숙하지 않은 용어에 맞닥뜨리거나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 수시로 찾아보곤 했다. 요즘은 검색 한 번이면 뜻은 물론이고 상황에 따른 용례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 종이책 사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몇 년 전 <말모이>라는 영화에서 우리말사전을 만드는 이들의 수고가 조명을 받은 일이 있었다. 처음 만드는 사전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 그들의 수고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말의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또 그만큼 없어지기도 하니 요즘이라고 해서 사전 만드는 일이 결코 수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종이책으로 된 사전은 거저 준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니 사전을 편찬하는 일이 수익을 기대하기는커녕 투입된 원가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어사전은 누가 어떻게 관리하는지 아는 바가 없다. 수지타산을 맞출 재간이 없는데도 기업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계속 개정을 해나가던지, 아니면 국립국어원 같은 정부기관에서 맡아서 개정을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지금까지 발간된 국어사전이 몇 종이나 되는지 검색하다 보니 저자가 우리말사전과 관련해 출간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다. <국어사전 혼내는 책>, <국어사전이 품지 못한 말들>, <미친 국어사전>, <어휘 늘리는 법>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저자가 보기에는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우리말사전이 부정확한 것도 많고 미처 반영하지 못한 말도 적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국어사전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책은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국어사전에서 캐낸 ‘술 이야기’>일 것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시종일관 술 이야기를 펼쳐나가지만, 그보다는 국어사전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실망이 먼저 느껴졌다.     


이제는 국민주(國民酒)가 된 소주는 뜻밖에도 오래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맛보았던 ‘아락’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레바논 전통 결혼식 피로연에 만난 무색무취한 ‘아락’은 너무 독해서 물에 타서 마셔야할 정도였다. 물에 타는 순간 우윳빛으로 변하던 모습과 목을 타고 넘어갈 때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몽골군대가 아랍을 정벌할 때 ‘아락’을 배워왔고 이것이 고려시대에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소주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를 아라키주, 아락주, 아랑주라고도 부른다. 아랑주는 지금도 소주를 고고 난 찌꺼기로 만든 질 낮은 소주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소주는 본디 곡주나 고구마술을 끓여 얻은 증류주를 일컫는데 지금은 알코올에 물과 향료를 섞어 만든 희석주의 이름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안동소주로 대표되는 증류주가 있기는 하다. 예전에는 상표에도 모두 한자를 썼는데 유독 ‘소주’는 다른 술과 달리 ‘주(酒)’가 아닌 ‘주(酎)’를 써서 의아하게 생각한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진한 술 주(酎)’는 ‘물을 타지 않은 술의 진국, 세 번 빚은 술’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예로부터 그렇게 쓴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부터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소주는 소줏고리에서 내릴 때 (증류할 때) 마치 떨어지는 이슬을 받는 것 같다고 해서 노주(露酒)라고 한다면서 소주의 대명사인 ‘진로’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영조 때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의 <소주소독방> 편에 소주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이 실린 것을 보면 증류주는 예로부터 매우 독하고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안동소주를 처음 마셨을 때는 맛이나 도수보다는 매우 썼다는 기억만 남았다.     


지난달에 읽은 탁재형PD의 <일은 핑계고 술 마시러 왔는데요>에서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술을 소개하면서 우리 술로 ‘죽력고(竹瀝膏)’를 꼽았다. 나도 술이라면 한 마디쯤 거들 줄 아는 사람인데도 생전 처음 들은 이름이었다. 저자는 ‘고(膏)’라는 이름의 술이 있는데, 이는 식물이나 과실 따위를 졸여 고아 엉기게 한 즙(죽력)으로 만든 술이라고 설명한다. 중국 원산의 볏과식물인 솜대의 신선한 줄기를 불에 구워 받은 액즙에 생지황, 꿀, 계심, 석창포 등과 섞어 빚은 술이다. ‘죽력’은 중풍, 열담, 번갈 같은 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고 ‘죽력고’는 아이들이 중풍으로 별안간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쓰인다고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중풍으로 별안간 말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하도 귀한 술이니 그냥 마시기 민망해서 덧붙인 말은 아닐까? 탁재형PD의 책에서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죽력고’가 어떤 맛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너무 귀하다보니 글로만 만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동아 새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술과 관련된 고사는 허풍과 과장이 많기로 유명하다. 저자는 술 이름 중에 가장 기가 막힌 이름으로 ‘석탄주(惜呑酒)’를 꼽는다. 시커먼 석탄이 아니라 ‘아까워할 석(惜)’, ‘삼킬 탄(呑)’을 쓰는, ‘입에 머금고 아까워 도저히 삼키지 못하는 술’이라는 말이겠다. ‘석탄주’는 ‘석탄향(惜呑香)’이라고도 쓰는데 흰죽에 누룩가루를 섞어 빚은 뒤 닷새 뒤에 찐 찹쌀을 넣고 다시 담근 술로서 맛이 쓰면서도 달아 은은한 과일향이 난다고 한다. 비슷하게 빚은 술로 ‘녹파주(綠波酒)’가 있다. 나는 그 술을 마시면 마치 푸른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이 든다는 줄 알았다는데 술 빛이 푸른 파도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하긴 맛있는 술 마시고 밋밋한 표현을 써서야 되겠는가.     


저자는 찹쌀로 빚어서 여름에 마시는 막걸리를 ‘합주(合酒)’라고 하고 꿀이나 설탕을 타서 마신다고 소개한다. 술을 빚어서 위의 맑은 술을 떠낸 것이 청주, 체로 걸러 탁한 술을 탁주라고 하는데, 체 대신 베로 거른 술을 합주라고 하고, 청주와 탁주의 맛이 다 들어 있다 해서 합주라는 부른다는 것이다. 술이 금기인 이슬람 국가에서 산다고 술을 안 마실 수는 없는 일. 흔히 하는 대로 포도주스에 이스트를 넣고 와인을 만들어 마셔봤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서울에서 누룩을 가져다가 술을 빚어 마셨다. (술을 소지한 것이 발각되면 입국이 거부되거나 추방되기 때문에 술을 가져올 수는 없지만 누룩은 세관에서 봐도 무엇인지 모른다.) 찹쌀과 물, 그리고 누룩만으로 빚은 술은 한국 어느 막걸리에도 뒤지지 않았다. 술이 다 익고 나서 위에 뜬 맑은 술만 따라서 김치냉장고에 몇 달 숙성시키니 청주가 아니라 오히려 와인에 가까웠다. 사실 술을 빚으며 위에 뜬 맑은 술을 청주라 여기고 나머지를 탁주인 막걸리라고 여기면서도 그게 맞는지 확신하지는 못했다.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위에서 떠낸 맑은 술은 청주가 분명하겠다. 그건 그렇고, 술 자체가 꿀맛인데 왜 거기에 또 꿀을 타야했을까?     


명나라 화가 오빈은 술 마시기 좋은 시간으로 봄날 한적한 교외로 나갈 때(春郊), 꽃이 피었을 때(花時), 가을 하늘이 맑을 때(淸秋), 초여름 녹음이 우거질 때(新綠), 비 그치고 날이 갤 때(雨霽), 눈이 쌓였을 때(積雪), 새롭게 둥근 달이 뜰 때(新月), 서늘한 저녁 때(晩涼)를 꼽는다. 내게는 술 마시기 좋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저자는 조선시대 임금이 신하를 위해 베풀어준 연회를 장미음(薔薇飮)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초여름에 예문관 관원들이 모여 술 마시던 모임에 태종2년(1402년) 임금이 장미를 상으로 내리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는 장미가 근세에 들어와서 서양에서 수입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태종이 장미를 상으로 내렸다니 놀랍다. 검색해보니 서양 장미와 다른 품종의 장미가 우리나라에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개성 송악산에 붉은 장미가 피었다는 기록도 있고, 이규보나 이색의 시에도 나타나고, 조선 후기에 정약용이 남긴 다산화사(茶山花史)라는 시에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장미를 분에 심어 길렀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술 이야기라고 생각해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국어사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말과 글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어법이나 문법에 틀린 글을 보면 몹시 불편하고,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말은 가능한 쓰지 않거나 뜻을 확인한 다음에 쓴다. 나이 탓인지 외국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서인지 가끔씩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 애를 먹는데, 그럴 때마다 사전을 찾는다. 하지만 지금 모바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아 새국어사전>은 설명도 만족스럽지 않고 빠진 어휘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게 되는데,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설명을 만날 때면 그 설명을 믿어야 할지 어떨지 망설여진다. 그래서 출처가 확인될 때까지 검색을 계속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 책으로 사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니 내친 김에 저자의 역저인 국어사전 시리즈를 시간 나는 대로 살펴볼까 한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 궁금한 것은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으니 공부삼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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