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밤새 비가 내린 것 같기는 한데 빗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흐리기만 하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후에 외출하는데 공교롭게도 실내에 있을 때는 쏟아지던 비가 건물을 나서기만하면 멈추곤 했다. 저녁에 친구 만나고 돌아올 때도 우산을 펼까말까 할 만큼만 내렸다. 오늘도 비 맞는 데는 실패했다.
사우디에도 비가 내리기는 한다. 일 년 내내 내리는 비가 이곳 장마철 하루 내리는 양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비에도 교통이 마비되고 휴교령이 내린다. 부임한 해 5월에 리야드에 삼십 밀리미터쯤 비가 내린 일이 있었는데, 지하차도에 갑자기 빗물이 밀려들어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운전자가 익사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제다에 칠십 밀리미터가 내려 백 명 넘게 목숨을 잃고 삼백 명 넘게 실종되고 삼천 대 넘는 차가 침수되거나 쓸려내려 갔다. 제다 시내 여러 곳이 허리께까지 물이 차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수요일에는 서울에 백 밀리미터가 넘게 비가 내렸어도 자고 나니 흔적도 없던데. 그날도 외출하고도 비를 못 맞았다. 비가 나를 피해 다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조금 전 호우경보가 내렸다. 위험 지역에서 대피하고 외출을 자제하란다. 내일은 비에 한 번 제대로 젖어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