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비인데 막상 며칠 계속되니 사방이 눅눅해져서 메마르기 짝이 없던 리야드 날씨가 그리워진다. 사람이 간사하기는. 비 내린 후 날씨는 언제나 청량하다. 도서관 오는 길에 굳이 경복궁에 들렀다. 사방이 기대했던 그림이었다. 맑은 하늘에 늘어진 수양버들 뒤로 보이는 경회루 하며, 용이 주무시는 곳이라 용마루가 없는 강녕전, 근정전 처마 끝에 걸린 뭉게구름까지. 마음만 먹으면 이런 풍경을 누릴 수 있으니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다. 이 모두 차를 포기하고 나서 얻은 즐거움이다.
벌써 두 해도 넘은 일이다. 리야드에서 교통사고를 겪었다. 다친 데는 없었지만 견인차에 실어가야 할 만큼 큰 사고였다. 이전에도 크고 작은 사고를 겪기는 했어도 상대방 차가 내 쪽으로 돌진해오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건 처음이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래서 차를 쳐다보기도 싫었다. 대중교통이 없으니 달리 방도가 없어 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내가 퇴근해야 움직일 수 있었던 아내는 한동안 집에 갇혀 살아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이심전심으로 차는 없는 것으로 했다.
차를 포기하고 나서 많은 것을 피할 수 있었고 또 많은 것을 얻었다. 체증을 겪지 않아도 되고, 주차하느라 애 먹을 일도 없고, 친구 만나 한 잔 할 때 집에 갈 걱정이 없어졌다. 게다가 요즘은 차 사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된다지 않은가. 경제적 부담은 또 어떻고. 주유소에 걸어놓은 기름 값을 볼 때마다 차 없이 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아도 하루 만 보는 너끈하다. 오늘처럼 오가는 길에 고궁에 들러 눈이며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낼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