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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l 15. 2022

식량위기 대한민국

지구온난화가 식량위기에 미치는 영향

남재작

웨일북

2022년 6월 20일


책 후반에 들어갈 때까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었다. 식량위기를 제목으로 삼은 책이 식량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식량위기가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저자의 방송을 듣고 이후 온라인 인연으로까지 이어져 저자가 식량위기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꼽는 줄은 알았지만 책에서 지구온난화 자체에 더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자는 생물 다양성의 붕괴라는 제목의 글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됨으로 써 인류는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온실가스 증가라는 결과에 직면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면서 온실가스 증가와는 무관한 사례를 서술한다. 늘어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습지를 메우고 숲을 베어내면서 농경지를 확대했고, 인간의 영역이 극지방까지 확대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자연보호구역 정도로 줄어들었고, 그 결과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과 물질순환이 곳곳에서 끊어져 살던 곳에서 쫓겨난 생물들이 멸종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 역사에서 일어난 다섯 번의 대멸종에 이어 현재 여섯 번째 대멸종에 접어들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지구 생태계 최고의 포식자인 인간’의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온실가스 영향을 배제하고도 성립하는) 아울러 저자는 온실가스의 결과로 알려진 엘니뇨현상으로 해류 흐름이 약화되어 멸치어장이 타격을 입고 그것이 대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사례와 꿀벌이 사라진 사례를 아울러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이 중 꿀벌이 사라진 현상은 일부 지역 일부 시점에서 감소가 관찰되긴 하지만 전 세계로 눈을 돌려 보면 꿀벌은 오히려 큰 폭으로 수가 늘고 있어 더 이상 갑작스러운 절멸을 걱정해야 하는 종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고, 멸치어장이 타격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결과이다. 저자의 의도와 내용이 서로 맞지 않아 보인다.


물론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농업과 식량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단편적인 사례에 지나지는 않지만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받은 느낌은 이 사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저자는 해수면 상승으로 농지가 없어지고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역이 북상하는 등 온실가스로 인해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 말고는 온실가스의 영향이 딱히 식량위기라는 이 책의 주제로 이어질만한 연결고리를 나는 찾지 못했다. (오해는 마시라, 내 이해가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저자 스스로 모든 현상은 명암이 있게 마련이라고 말하듯 온실가스로 인한 모든 변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텐데, 저자를 비롯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많은 인사들 중에 온난화로 인한 긍정적인 변화를 언급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역이 북상한 것이 누구에게는 재앙이겠지만 누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열리게 되어 러시아가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도 하지 않는가.


저자의 주장을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서 읽고 싶었던 내용은 온난화보다는 식량위기 그 자체였다. 저자는 온실가스를 제어하지 못한 채 티핑포인트를 지나면 고생대에서 중생대로 넘어올 때 생물종의 95%가 멸종되었던 일이 다시 되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지금과 같은 자연파괴를 이어간다면 굳이 온실가스가 아니더라도 멸종에 이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가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따라가기가 어렵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화학비료와 농기계와 살충제의 증가가 농업과 식량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육류소비 증가가 식량의 불평등을 가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며, 식량 자급률을 바탕으로 식량 공급망을 어떻게 안정시키고 다변화시킬지 제안한다. 유럽에서 축산의 과잉으로 일어나는 지하수 오염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저자는 작물은 기온이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성장속도가 빨라지는데 이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어린 묘에서 열매 맺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면 생체량과 열매 키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고, 기온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면 작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작물은 이를 해소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성장이 지체되기 때문에 그 결과 벼 이삭에 달리는 알갱이 수와 크기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온실가스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농업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실감했다. 그런데 기온이 올라가서 이득을 얻는 부분은 없을까?


저자는 기후변화로 인해 문명이 위기에 처한다면 그것은 식량위기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돌이 부족해서 석기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 아니듯 석유와 석탄이 부족해서 산업화 시대가 막을 내리지 않는다면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전체 인류가 필요한 양보다 오히려 5% 정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8억 명, 인구의 약 10%는 기아의 위협에 노출된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와 기후위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자는 “에너지를 적게 쓰고, 육식을 줄이고, 친환경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비행기 타는 여행을 줄이고,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물 사용량을 줄이고, 제철 농산물과 로컬푸드를 먹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을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역할로 제시하는데, 이런 일은 궁극적으로 삶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일이니 지구온난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감당해야 할 일이다.


어찌되었든 충분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방송을 들으면서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설명에 좀 더 지면이 할애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는 지질학을 공부하고 그것으로 사십 년 넘게 밥벌이를 하고 있다. 지구와 생태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지극히 한정된 분야에서 한정된 일을 하고 있으니 온실가스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오십 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머문 사람으로서 가진 감각으로는 인간의 탄소배출로 온난화가 이루어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탄소배출량만 줄이면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복잡계의 대표적인 존재인 지구의 온도가 변화하는 것을 탄소배출 억제 하나로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가 매우 무리하게 여겨진다.


지구의 역사는 인간의 단위와 다르다. 저자도 고생대 중생대를 이야기하고 수만 년 전의 지구 상태를 거론하고 있지 않은가. 복잡계의 대표적인 존재인 지구의 기온이 오르는 원인을 탄소배출 하나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위험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저자가 거론하듯 지구는 빙하기와 온난기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의 온난화 속도는 지구 역사 이래 예외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혹시 그것이 지구 온도 변화라는 경향(trend) 중에 ‘아주 짧은 기간’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편차(deviation)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탄소배출과 지구온난화는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가 아닌 것은 아닐까? 인과관계라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은 아닐까?


책임자의 자리에 서게 되면서 무엇보다 집중한 것은 일감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우위를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는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그것을 어떻게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 궁리해야 했다. 교토의정서가 채택되고 나서 두 가지 사업에 집중했다. 시장이 잠시 주춤해서 접을까 생각했던 원자력사업을 계속하는 것과 토양오염복원사업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교토의정서의 해답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수년이 지나고 나서 교토의정서가 원자력 업계의 전략이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지 음모론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안전성 때문에 원자력이 퇴출될 지경에 이른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지구온난화가 탄소배출의 결과라는 주장이 음모라는 것은 아니다.


교토의정서를 공부하면서 적지 않은 문헌을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구온난화가 탄소배출의 결과이니 탄소배출만 통제하면 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단순논리에 회의적인 내 생각을 굳힐만한 일련의 논문을 만났다. 그 논문에 들어있는 그래프에서는 탄소배출량과 온도변화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인과관계였다. 탄소배출량이 늘어난 후 기온이 오른 것이 아니라 기온이 오른 후 탄소배출량이 늘어난 것이다. 말하자면 늘어난 탄소배출량 때문에 온난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온난화가 이루어진 결과로 탄소배출량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저자도 책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내가 언급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논점으로 인용한 것이지만 말이다. 저자는 영구동토층에 대기보다 2배나 더 많은 탄소가 묻혀 있는데 극지방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영구동토층이 녹고, 영구동토층에 포함되어 있던 유기물이 이산화탄소 또는 메탄으로 분해되어 배출됨으로서 다시 기온을 올리는 되먹임(feedback loop)이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읽었던 논문에서는 온난화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기온을 올리는 되먹임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구온난화의 근본 메커니즘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몇 년 전에 그 논문을 다시 확인하려고 있는 자료를 다 찾았지만 워낙 오래된 자료여서 끝내 찾지 못했다. 아쉽게도 검색으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읽었던 논문이 많은 지지를 얻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만일 그랬더라면 지금도 손쉽게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당시 논문에 들어있던 그래프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어쩌면 편견일지 모를 내 생각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지엽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하나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저자는 얼마 전에 발표된 그린택소노미(Green Taxonomy)와 관련해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원자력이 재생에너지가 될 수 없다고 언급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우라늄이 가채연수가 정해진 유한한 자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년까지 확인된 전 세계의 우라늄 매장량은 590만 톤으로, 매년 전 세계가 6.2만 톤을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95년 정도 쓸 수 있는 양이다. 또 우라늄은 지각 속에도 2200만 톤이 인산염과 함께 섞여 있고, 바닷물 속에도 40억 톤이 녹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므로 필요하다면 바닷물을 정제해서 우라늄을 얻어낼 수도 있다. 원자력이 안전하지 않은 에너지원이어서 저자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우라늄 양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건 확인이 필요하겠다. 그렇다고 저자와 다투자는 건 아니다. 1980년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 월성 원자력 후속기 지반평가였고, 다음 주에 신한울 원전 재개에 따른 지반평가 때문에 현장에 출장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부리는 심통으로 이해하시라.


지난달 중순에 난데없이 출판사 마케팅팀으로부터 신간 리뷰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메일을 받았다.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남재작 박사의 신간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터여서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리뷰라고 써놓고 나니 리뷰 마감시간을 훨씬 넘겼고 내용도 출판사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 이래저래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책값을 내지 않아서 미안한데 어찌해야 되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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