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Review

히잡은 패션이다

인도네시아 여성 무슬림의 변화사

by 박인식

김형준

서해문집

2018년 6월 25일


2019년 9월 사우디에서 관광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비자정책이 바뀐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이전에 금기로 여겼던 것들이 해체될 가능성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광객이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여성 복장규정이다. 사우디에서는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은 아바야로 전신을 가리고 히잡이나 스카프로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도록 감싸야 한다. 부임할 때만 해도 아내가 아바야만 입고 스카프를 쓰지 않고 외출했다가 종교경찰에게 지적을 받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외국인 여성들은 스카프를 쓰지 않게 되기는 했다. (공식 허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관광비자를 허용하면서 관광객에 한해 아바야와 스카프 착용을 면제했고, 관광객 아닌 거주민 여성들이 하나둘 아바야를 벗게 되었고, 지금은 상당수 외국인 여성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다닌다.


나는 사우디 여성들이 아바야와 히잡을 ‘의무’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사우디에서 출국하는 사우디 여성들 대다수가 도착지에 내릴 때 아바야와 히잡을 벗어버리고, 돌아올 때는 평상복 차림으로 탑승했다가 아바야와 히잡으로 갈아입고 내리는 걸 늘 보아왔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도 아바야와 히잡을 착용한 사우디 여성들이 있기는 해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여성들이었다. 물론 그런 복장을 여성존중의 표상으로 여기거나 자기 신앙도 나타내고 성희롱도 피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히잡에 대한 이해가 그 정도이니 <히잡은 패션이다>라는 책을 봤을 때 궁금증이 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우디에서는 아바야와 히잡은 몇 천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비싼 것은 그저 비싸 보일 뿐 모양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사우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정부들이 많은데, 그들이 쓰고 있는 히잡도 모두 천편일률적이다. 그런데 그런 인도네시아에서 ‘히잡이 패션’이란다.


출장가기 전까지는 인도네시아가 이슬람국가인줄 몰랐다. 출장 첫날 이슬람 사원에서 들리는 독경(아잔) 소리에 잠을 깼다. 호텔 부근만 그런 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독경소리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광경이 독특하면서도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당시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2천만 명이었고 그 중 무슬림이 2억 명이라고 했다. 국민의 90%가 무슬림이고 세계 무슬림 17억 명의 10%가 넘었다. 지금도 세계최대의 이슬람 국가라는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인구 2억6천만 명에 무슬림이 2억3천만 명이다.


이슬람 독경 소리가 낯설다 못해 기괴하게까지 느껴진 1990년 첫 출장 때에도 길거리에서 히잡 쓴 여성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2000년 들어서면서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늘어났고 2010년 이후로는 히잡 착용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무채색 일변도에 커다란 모양이었던 것과 달리 색깔도 다양해지고 무니도 들어가고 크기도 줄어들었다. 나는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남성을 유혹하지 않도록 신체 어느 부분도 드러내지 말라는 꾸란의 가르침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도네시아에서 히잡이 그렇게 다양한 모양으로 진화하는 건 그동안 착용하지 않던 히잡을 다시 착용하는 경향에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히잡을 착용하게 된 것은 이슬람 성향이 강화된 결과일 것이니 말이다. 그런 궁금증을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히잡 착용의 근거와 형태


저자는 근대 이전의 인도네시아에서는 히잡을 착용하는 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이슬람 사회의 후진성이 이슬람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무슬림들이 이슬람 정체성을 회복할 방편으로 히잡 착용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히잡에 정치적 의미를 투영한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꾸란 24:31에서는 남성을 유혹하는 것은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안 되므로 머릿수건을 써서 가리라고 가르치며, 35:59에서는 외출할 때 머리를 가려서 남성이 간음할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친다. 물론 꾸란의 가르침에 대한 해석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이슬람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여성이 몸을 꾸미고 멋을 내는 것은 사적 영역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나 남편 외에는 보여줘서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적 영역에서 미적 표현 자체를 금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히잡이 여성을 통제하는 방편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자기표현을 지지하는 이들은 꾸란의 이 가르침이 단지 ‘정숙함을 넘어선 과도한 멋내기’에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슬림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복장은 1)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스카프 형태의 ‘히잡’, 2) 얼굴만 내놓고 전신을 가리는 ‘차도르’, 3) 눈만 내놓고 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가리는 ‘니캅’, 4) 눈조차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로 나뉜다. 중동의 이슬람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보수적인 GCC 국가에서는 니캅과 부르카가 주종을 이루고, 개방적인 요르단이나 레바논에서는 주로 히잡을 착용하지만 전혀 착용하지 않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차도르는 이란 여성들이 주로 착용한다고 들었다.


1.jpg


이슬람 전파와 히잡의 역사


저자는 인도네시아 히잡의 역사를 따라잡기 위해 이슬람이 전파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된 것은 14~15세기경으로 인도-동남아 교역을 담당하던 무역상들이 통로가 되었다. 이슬람 왕국은 15세기 말이 되어서야 출현했고, 그때까지 종교활동은 종교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토착종교와 이슬람이 공존했다. 히잡은 일부 제한된 집단에서만 착용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중동에 유학한 이슬람 학자를 중심으로 이슬람 강화운동이 일어났다. 그 일환으로 무장투쟁이 일어났고, 네덜란드의 개입으로 진압되었으나, 그 영향력이 수마트라 지역에 지속되면서 히잡 착용을 강제하였다. 1912년 근대식 이슬람 단체인 무함마디야가 창립되었다. 개혁성향을 지닌 이들은 여성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 교육과 사회활동을 장려하였으나 히잡 착용을 오히려 의무화하였다. 이 세력은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수카르노에서 수하르트로 이어지는 독재세력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을 억압했다. 그 과정에서 히잡은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하고 공공장소에서 단속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후 수하르트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이슬람 포용정책을 펼치면서 다시 히잡을 허용하게 되었다. 1998년 수하르트의 장기집권이 무너진 이후 이슬람 세력이 정치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이슬람에 대한 비판적 행동이나 태도를 용인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슬람 신앙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많은 무슬림들이 편하게 정체성을 드러냈으며 히잡 착용도 아울러 확산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에서 히잡이 다양한 모양을 띄게 되었고 패션화되었다는 점이다. 히잡을 착용한 연예인이 나타나고 2011년에는 히잡 패션 커뮤니티가 결성되면서 히잡을 착용한 여성을 부르는 히자버(hijaber)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히잡을 착용하는 꾸란의 근거는 이전과 마찬가지였지만 히잡이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된 것 역시 아이러니하게 꾸란의 같은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만 꾸란에 나오는 “알라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구절을 이 구절에 연결시켜 히잡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길을 만든 것이다. 물론 보수적인 무슬림은 이러한 모습이 이성에 대한 유혹을 금지한 꾸란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이슬람 대 反이슬람의 대립이 아니라 이슬람 정신은 그대로이고 단지 꾸란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히잡에 대한 중동과 인도네시아의 관점 차이


나는 그동안 신앙이 깊은 무슬림이라고 해도 히잡을 원해서 착용하는 여성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여성이라면 누구든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게 마련이고, 그걸 통제하는 건 억압이라고 여겼으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들이 아랍을 벗어나면 아바야와 니캅을 벗고 평상복을 즐기는 모습을 적지 않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거부감을 찾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에서도 보수적인 여성들은 니캅이나 부르카가 오히려 여성을 존중하는 모습이라는 이유로 이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서도 종교적인 이유에서뿐 아니라 히잡을 착용함으로서 성적인 대상이 아닌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히잡을 지지하는 여성이 더 많은 모양이다. 다만 중동과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히잡을 새롭게 해석해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패션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사우디에 고용된 가정부 중 상당수가 인도네시아 여성들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히잡을 착용하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듯 패션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은 본 일이 없다. 그런 모습을 허용하지 않는 사우디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이유였을 수도 있고, 저자가 관찰한 모습이 인도네시아 전체가 아닌 일부의 모습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시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주된 이유가 이슬람 신앙 때문이 아니라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남성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수단인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저자가 언급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성희롱과 성추행이 아직도 인도네시아에서 용인되는 모양이다. 사실 우리도 이삼십 년 전까지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면서 바뀐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인도네시아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인데, 히잡에 대한 필요성도 그만큼 줄어들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남성의 끈적거리는 시선을 피하는 수단으로 히잡을 착용한다면서 동시에 히잡을 자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편으로 여기는 것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인도네시아 보수적인 무슬림들이 ‘화려한 히잡’은 꾸란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것은 마치 “심한 노출이 성희롱을 유발시킨다”는 논리와 같지 않은가. 나도 아직 고루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저자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걸 잊었다. 후반에 한국인의 관점에서 평가한 내용이 잠깐 나오는데 그제야 비로소 저자가 한국인이라는 걸 의식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은 시종 객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저자 김형준은 호주 국립대에서 자바 농촌 마을의 사회문화적 변화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 홈페이지에 오십 편 넘는 논문과 삼십 권 넘는 저서 목록이 올라 있다. 자타 공인 인도네시아 이슬람 전문가로 2021년 3월 임기 2년의 한국동남아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KakaoTalk_20220801_234125724_0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최명길 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