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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8.03 (수)

by 박인식

상사로 두 분을 모셨다. 한 분은 1982년 연구소에서 일하던 나를 채용해 임원이 될 때까지 이끌어주셨고, 또 한 분은 1981년 연구소에서 일할 때 발주처 감독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가 정년퇴직하고 우리 회사로 오셔서 사장으로 퇴임하셨다.


직장생활하면서 나만큼 상사 복이 많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결코 원만한 성격이라고 할 수 없는 내가 한 번도 두 분의 지시를 거역해본 일이 없다. 그분들이라고 언제나 옳은 지시만 내리기야 했겠으며, 만만치 않은 내가 부당한 지시를 고분고분 들었을 리가 있겠나. 그런데도 그분들의 지시를 거역하지 않았던 것은 언제든 내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을 듣고 지시를 거두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지시를 따르라고 하기도 하셨다. 나는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하급자 역할을 다 한 것이고 남은 일은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내 이의가 받아 들여지지 않은 일은 대체로 그분들의 판단이 옳았으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현지법인으로 떠날 때 내 업무를 이어받았던 후배가 두 분 상사와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요즘 사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옛날 추억을 돌이키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나는 좋은 상사 만나 편안하게 살았는데 후배는 선배 잘못 만나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이렇게 식사자리에 불러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생각해보니 네 사람이 공통점이 있다. 모두 개신교인으로 직장예배를 이끌었고, 사오십 년 경력자인데도 우리 회사가 두 번째 회사로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한 기간만 따지면 처음 모신 상사는 41년, 두 번째 모신 상사는 정년퇴직 후 옮겨 오셔서 15년, 나는 40년, 후배는 28년. 질기기로 말하면 우리만한 이들도 없다. 하나 더 있다. 내가 임원이 되었을 때 상사께서 방해된다며 부서장에서 물러나 현장으로 나가셨고, 후배가 임원이 되었을 때 나는 현지법인으로 떠났고, 그 후배도 자기 후배가 임원이 되자 부서장에서 물러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니 만나면 늘 즐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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