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음악
신경아
문학동네
2019년 10월 23일
신경아 선생의 책을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꽤 오래 된 일이다. 도서관 서가에서 선생의 책을 몇 번이나 꺼내 보다가 책만 읽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미뤄두었다. 선생께서 강릉에서 아예 눌러 살 요량으로 집을 짓고 계시다는데, 집도 궁금하고 노래 이야기도 듣고 싶어 언제 한 번 방문하겠다고 청을 넣어볼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이라면 오래 전 방송에 나왔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듣던 낯선 노래와 느낌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에 언급된 Youssou N'dour이나 Ismael Lo와 같은 가수의 노래는 낯선 것, 날 것이 아니었다. 매우 다듬어지고 상업화된 노래여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검색을 했고, 유튜브에서 책 이름과 같은 채널을 만났다. 책에 소개된 노래 팔십 여 편이 올라와 있었다. 노래가 올라온 날짜를 보니 원고를 다 넘기고 채널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 책에 왜 채널을 소개하지 않았느냐고 불평하려던 마음을 접었다. 앞으로 돌아가 책에 소개된 노래를 하나씩 찾아 들으며 다시 읽기 시작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HiJt6h9-joay1gwtFJWo0w/videos
모니터에 유튜브 띄워놓고 옆에 지도 펼쳐놓고 책을 읽어나갔다. 유튜브 영상 촬영일자에 따르면 저자는 2017년 3월 북아프리카 말리, 세네갈, 모로코, 모리타니를, 이듬해 3월과 4월에 터키(튀르키에),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를 여행했다. 터키는 이 시점 이전에 세 번, 이후에 한 번 더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에게 터키는 좀 낯선 곳일 수 있지만 중동에 오래 살면서 터키 역사와 환경과 지정학적 위치에 익숙해 있는 내 관점에서는 저자가 그곳 음악에 그렇게 공을 들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곳을 다녀온 이웃들이 이구동성으로 가볼만한 곳이라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가보지 못해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평생 묶여 살다 보니 가장 길게 여행한 것이 보름이었다. 그 보름동안 교통편과 숙소는 물론 식당과 일정까지도 모두 예약해놓고 다녀왔다. 저자는 떠나기 전에 어디서 어떤 노래를 들어보리라 하는 정도 계획만 세우고 구체적인 일정도 마련하지 않는다. 저자가 여행한 곳은 하나 같이 교통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막연한 곳도 많아서 일정을 미리 세우는 게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보다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 때문이었다.
“이젠 떠나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많이 가지지 않으려 한다. 정보가 많으면 자꾸만 그런 곳으로 발길이 향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간 곳에서 바라던 것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동선을 그리기 위해 안내서를 훑어보지만 현지에서 안내서를 열어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그려놓은 동선대로 따라가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저자는 아프리카에서 두드려서 소리 나는 것이면, 금이 가고 부서졌어도 현이 걸려 있으면 어떻게든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음악성이 타고나는 것인지 학습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저자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들 중에 ‘그리오’라는 독특한 집단이 눈길을 끈다.
“‘그리오’는 카스트의 한 계급으로서 부족의 역사를 암송하여 전승하고 부족민들에게 덕담을 건네고 축원해주기도 하고 마을의 흉사를 관장하거나 명명식이나 혼례식 등의 잔치에선 여흥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들의 직업은 세습되기 때문에 자녀들은 갓난쟁이 시절부터 다양한 의례에 따라다니며 자연스레 조기교육을 받는다. 그렇게 자연스레 음악과 가무에 능하게 되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지역 출신 음악가들 가운데 ‘그리오’ 출신이 아주 많다. 이들은 말리, 세네갈, 모리타니와 같은 지역에서 전통음악을 주도하고 있다.”
저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을 가진 또 다른 부족으로 ‘투아레그’를 소개한다. ‘투아레그’는 아주 용맹한 전사들이지만 1960년대에 알제리, 리비아, 말리가 프랑스와 독립 협상을 하면서 사하라사막에 국경선을 그을 때 협상에 참여조차 하지 못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은 같은 사하라사막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을 지닌 소수민족 신세가 된다. 저자는 이들과 같은 모습을 쿠르드인에게서 다시 발견한다.
“인구가 3천만 명에 이르는 쿠르드인들은 서아시아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들은 흩어져 사는 게 아니라 늘 살던 곳에 같이 모여 살고 있는데 이들이 사는 지역에 국경선이 그어졌을 뿐이다. 쿠르드인들이 속해 있는 터기, 이란, 이라크, 시리아 국경은 어깨를 서로 맞대고 있다. 이 나라들의 국경이 지나가는 산악이 바로 쿠르드인들의 고향이다. 지도에 선을 정확히 그을 수 없는 이 지역을 쿠르드인들은 ‘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의 국경이 직선으로 이루어진 것을 의아해 했으면서도 그것이 그 땅에 사는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대국 이해에 따라 결정된 것인 줄은 몰랐다.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38선이 그어진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비록 남북으로 갈라졌으나 양쪽 모두 국가로서 나름의 위상을 갖추고 있는데 투아레그나 쿠르드는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국적으로 갈라진 것으로도 모자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든 그 음악에 희로애락이 들어있게 마련이지만, 그래서인지 이들의 음악 중 애수가 깃든 음악은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앞서 말한 대로 아프리카의 ‘그리오’는 길흉사가 있을 때 덕담도 하고 축원도 하며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리의 ‘비나리’와도 같다. 서아시아 쿠르디스탄 전통음악을 계승하고 있는 ‘뎅베지’가 결혼식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으니 경기소리가 연상되고, 그 중 시집가는 새색시가 고향집을 떠나며 부모형제에게 부르는 작별노래인 ‘신부의 노래’는 서도소리 중 ‘배뱅이굿’을 떠오르게 한다. 민속음악이라는 게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담는 것이고 사는 곳이 다르다고 희로애락이 근본적으로 다를 리 없으니 그렇게 닮은 데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들 모두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민족이 여러 국민으로 나뉜 경우인데, 저자는 그들의 또 다른 일면을 찾아낸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라 없는 민족이 음악을 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무에 능하기로 소문난 집시 민족들이 그렇고 이제는 정착했지만 오랫동안 디아스포라 민족이던 유대인들도 그렇다. 그리고 쿠르드인들 역시 노래를 잘하고 즐긴다. 이들은 어쩌면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음악을 더욱 굳건히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음악이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철학이며 가치관이고 삶의 근거라는 말이다. 저자는 집시의 음악성과 그 근원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무엇보다 집시들의 큰 미덕은 그들이 타고난 음악성이다. 집시들은 자신만의 음악은 없고 자신들의 연주 스타일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 정착한 지역의 음악을 받아들여 집시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새로운 음악과 악기를 받아들이는 빠르다. 그러나 집시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들과 인간적인 정을 나누지 않는다. 오로지 거래를 할 뿐이다. 너무나 오랜 세월 정착민들에게 배반당하고 핍박 받은 결과일 수 있겠다.”
나는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민속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른 것으로 읽었다. (내가 오독한 것일 수도 있고 저자가 경험한 것을 모두 서술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젊은이들이 민속음악을 모바일이나 휴대기기에 넣어 다니며 즐길 뿐 아니라 음악적인 전통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음악인들을 대우한다. 물론 도시 젊은이들이 팝문화를 즐기고 있지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쿠르드 젊은이들은 정도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이를 배우려는 젊은이도 없어 민속음악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문득 우리 젊은이들은 민속음악이나 전통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에 전통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경연 프로그램도 방송하던데.
저자는 음악을 얻기 위해 세상의 끝까지 찾아간다. 그래서 이 책은 음악 이야기이면서 여행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책이 되었다고 아쉬워하지만, 나는 음악 이야기 못지않게 저자가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도 때로 공감하면서 때로 부러워하면서 읽었다. 저자는 사하라사막에서 완벽한 정적을 경험한다. 사막에 서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느낌일 것이다.
“이토록 넓은 대지 위에 이토록 높은 하늘 아래 두 발 딛고 서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 것도 없는 넓은 땅은 무서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자연스러워 편안한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가득 들어찼다가 폐허가 된 것이라면 무섭고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그 상태는 무섭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별들과 함께 밤이 내려앉고 있는 대지는 포근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 번 서보시라. 정말 그렇다.
이런 감성을 가진 저자는 유명한 유적지나 웅장한 자연경관보다는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이나 밭일하는 농부, 절구질 하는 아낙네를 사진에 담는 걸 즐긴다. 물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 연주하는 걸 보는 게 가장 기쁜 일이지만, 음악을 들으러 가서 밥까지 얻어먹게 되는 걸 매우 기뻐한다. 저자 스스로 말한 대로 공짜 밥을 좋아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고, 별 생각 없이 노래 부르고 이야기 나누는 가운데 자신들의 예술을 알아주는 것에 감동해 대접하려는 마음이 고마웠기 때문일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저자의 취재 요청에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흔쾌히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으며, 저자를 극진히 대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가 떠올랐다고 하지 않았나. 저자 부군께서 음악 수집하는 분이라는 걸 읽은 기억이 나서 혹시나 하고 찾았더니, 세상에, 저자와 함께 음악을 찾아 세상 끝을 다녀오신 부군이 바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만드신 최상일PD가 아니신가. 그것을 알고 나서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었고,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저자와 부군께서 다녀온 길을 더듬어 보니 유튜브에 공개한 노래가 여행하면서 채록한 음악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시골로 갈수록 카메라를 극도로 싫어해 촬영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하니 전체 채록한 음악은 상당한 분량에 이를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끝내기는 여행과 채록에 들어간 노력이 너무 크다는 말이다. 여행이 끝난 지도 꽤 되었으니 공들여 채록한 것이 어디선가 잘 익어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빠른 시간 안에 그 결실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는 책과 아울러 영상을 통해 저자와 부군께서 경험한 것들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