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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8.11 (목)

by 박인식

기도는 예배 때나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던 시절 이야기이다.


청년 성가대에서 함께 봉사하던 자매 하나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신실한 사람들인데다가 두 사람이 어찌 잘 어울렸던지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형제가 학교를 마치고 유학 간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들었다. 떨어져 지내기는 너무 긴 시간이고 결혼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짐작했던 대로 결혼 허락을 받는데 어려움이 생겼고, 우리 내외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걱정 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기도하면서 오히려 걱정이 깊어졌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양가 부모님 허락 받고 결혼하고 유학을 떠났다. 그것이 나 자신과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 첫 번째 일이었다.


무척 기뻤다. 기도가 이루어진 것도 기뻤지만, 그것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 기도하면서 그들과 한 마음이 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다 보니 그들의 상황에 늘 마음이 쓰였고, 그래서 그들의 어려움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마침내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면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그저 잘 됐네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그로서 내가 더 큰 은혜를 누렸다. 내 기도도 들으시는 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안국동에서 청년부에서 함께 지냈던 자매와 마주쳤다. 작년에 혜인이네 갔을 때 남편과 아들을 앞세우고 굳이 몇 시간이나 달려와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잠깐 휴가 와서 아들과 외출했다가 길에서 마주쳤으니 우연도 그런 우연이 없다. 이젠 아들이 엄마보다 훨씬 커졌다. 그 자매에게서 위에 이야기한 자매가 딸과 함께 잠깐 다니러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화라도 할까 하고 연락처를 물으니 벌써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연락처를 얻고, 메시지를 나누고, 아침에 가족사진까지 받았다. 이번에 대학에 입학하는 딸과 그 밑으로 아들 둘. 내가 다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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