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문 닫히는 소리 때문에 깨고 나니 아직 날도 밝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꿈에서 한참 더 용을 써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 보러 갈 때면 늘 겪는 일이다. 아무리 휴가라고 해도 보름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고, 이상하리만치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 휴가를 미루거나 취소해야 할 일이 생기곤 했다. 그렇다고 못갈 내가 아니지.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아이들에게 가는 일은 한 번도 양보한 기억이 없다. 그렇기는 해도 마음이 편할 리 없으니 늘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이제는 매인 몸이 아니어서 날짜만 되면 아이들에게 갈 수 있는데, 여느 때처럼 꿈에서 아이들에게 가지 못할 일이 생겨 그걸 해결하느라 밤새도록 용을 썼다.
날더러 유난히 아이들을 바친다고 핀잔을 주는 이들이 있다. 물론 대놓고 그러지는 않고 겉으로야 자상한 할아버지라고 추어주지만, 그렇다고 돌아서서 흉보는 그들의 속내를 내가 모를까. 그래도 괜찮다. 오죽하면 손주를 보지 못한 사람들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겠나. 그들의 속내를 다 알지만, 그래서 속으로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고 일갈하고 만다. 그런 핀잔에 주눅 들기는커녕 오히려 희희낙락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바칠 줄은 몰랐다. 자식 키울 때는 생각해보지 못한 일인데, 아이들 대신에 나를 던져야 할 일이 생긴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 같다.
날짜 걱정하지 않고 아이들과 시간 보낼 생각으로 벌써부터 마음은 하늘을 날아다닌다. 작은 애 유치원 데리고 다니고, 큰 애 학교에서 올 때쯤 버스 정거장에 나가 기다리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가 유난해 보이는가? 그대들은 아직 인생이 뭔지 몰라서 그런다. 살아보시라. 인생 그거 별 거 아니다. 내가 넓은 아량으로 다 이해할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