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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8.26 (금)

by 박인식

라인강을 처음 봤을 때 왜 한반도 대운하를 꿈꾸게 되었는지 이해가 됐다. 설마하니 강에 떠다니는 배가 만들어 내는 풍경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고, 운반선이 감당하는 엄청난 물동량이 부럽지 않았을까.


독일에 전례 없는 가뭄이 들어 라인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운반선이 적재량을 채우지 못하고 다닌다. 적재량이 줄어든 만큼 운송비가 올라가고 그것이 그대로 가격에 전가되는 구조이니 물가가 들썩들썩 하는 모양이다. 어제 공항에서 내려 들어오는 길에 녹음이 한창 우거질 시기에 누렇게 변한 나무를 보면서 가뭄을 실감했고, 그래서 마인츠에 볼 일 있어 나가는 길에 라인강부터 찾았다. 생각만큼 수위가 낮아진 것 같지는 않은데 배가 예전보다 수면 위로 훨씬 많이 올라왔다.


지난주에는 잦아들지 않은 비가 겁나더니 오늘은 가뭄 때문에 적재량을 채우지 못한 배를 보면서 사람의 힘이라는 게 자연 앞에서 참 무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만 제대로 공부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하천운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않았을까. 설령 본인이 몰랐다고 해도 누군가 이야기 했을 텐데, 건설회사 사장 노릇할 때 만들어 낸 실적이 자기 실력인 줄 착각하고 밀어붙인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자연에 손을 대는 건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건 자연의 특성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사람의 손길이 닿았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제대로 예측하는 게 쉽지 않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고 단지 ‘의심에 대한 잠정적인 대답’이라고 하더라. 제대로 모른다는 말이다. 그런데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조차 몰라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지난주 한반도를 휩쓴 폭우나 여름 내내 지속된 유럽의 가뭄에 뭐 하나 변변히 대응하지 못하지 않았나.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던지 모르겠거든 자연을 무서워하기라도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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