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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8.25 (목)

by 박인식

꼬박 스물여섯 시간을 깨어있다. 오래 걸려도 열한 시간을 넘은 일이 없었던 여행길이 우크라이나 전쟁터를 비켜가느라 열네 시간 가까이 걸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수월하게 빠져나오던 입국장까지 붐벼 항공기가 도착하고 차 타러 나오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전례 없는 일이다.


며칠 전 항공사에서 공항근로자 파업으로 수하물이 제때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급한 물건은 기내 휴대품으로 가져가라는 안내문이 왔다. 혹시나 싶어서 수하물에 주소를 큼지막하게 써 붙였다. 모처럼 아이들에게 가니 음식물도 적지 않게 꾸린 모양인데, 한여름에 공항 터미널에 방치되어 있다간 음식을 모두 버릴 참이라 아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행히 제대로 처리가 되어서 찾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야 머무는 곳이 공항과 가까우니 만일 처리가 지연되더라도 나중에 집에서 받으면 되는데, 바삐 움직여야 하는 단체여행객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키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웬 오지랖인지.


택시 기사가 한국 사람이라니 반색을 한다. 할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하셨단다. 알고 보니 터키 사람. 이맘때쯤이면 녹음이 절정이어야 하는데 오랜 가뭄으로 길가 나뭇잎이 온통 누렇게 되었다. 라인강에는 물이 줄어 운반선이 제대로 다니지 못해 난리라더니 누런 나뭇잎을 보니 정말 그렇겠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살았으니 어쩌다 한국에 가면 낯설 법도 한데 한국에 도착하면 다음날로 늘 있었던 곳처럼 익숙했고 리야드로 돌아가도 언제 한국에 있었나 싶은 건 매한가지였다. 지난여름에 다녀가고 한 해 만에 다시 찾은 아이들 집도 낯설지도 않고 설렘도 없는 건 다르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감흥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나이 탓인가?


아이들 빈 방이 영 낯설다. 금방이라도 할머니를 찾으며 나올 것 같은데. 한 주일도 금방 지나가겠지. 자, 집안부터 말끔히 치워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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