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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8.30 (화)

by 박인식

여행은 혼자 다니는 게 가장 좋다. 단체 여행 뿐 아니라 누군가 안내를 받아 다니는 여행은 여행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은가 한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어딘가 가고 무언가 봐야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은혼식을 맞아 아내와 유럽 여행을 간 일이 있었다. 밀라노에 가까운 분이 계셔서 그 댁에 며칠 묵었다. 마음 같아서는 잠시 만나 식사나 할까 했는데 어떻게 그곳까지 와서 다른 곳에서 먹고 자냐며 펄쩍 뛰는 통에 꼼짝없이 붙들렸다. 밀라노도 그렇고 베네치아까지 편하게 잘 돌아보기는 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가다가 멈춰 서서 구경할 수도 있고 때론 계획을 뒤집기도 하고 그런 재미로 다니는 게 아닌가. 편하기는 했으나 정작 벼르던 곳을 가보지도 못하고 한눈파는 재미도 없이 그 귀한 시간을 날렸다. 아들 집에 와도 다르지 않다. 모처럼 부모와 여행한다고 이것저것 잔뜩 준비했는데 싫은 티를 낼 수도 없고, 다니는 내내 방긋방긋 웃어야 하니 말이다.


아무도 없는 아들 집에서 아내와 며칠을 보내고 있다. 주말에 아이들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내심 어디에도 억매지 않고 아내와 돌아다닐 수 있어 이게 웬 떡이냐 싶다. 쇤부르그 고성에 다녀오는 길에 라인강 골짜기를 따라 하염없이 오르내렸다. 가다 경치 좋은 곳 있으며 멈추어 서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사진도 찍고.


그러다가 혜인이 백일 무렵에 묵었던 호텔을 지나가게 되었다. 꼭 11년 만이었다. 라인강변 마을 중 경치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는데, 마침 우리가 그곳에 묵었을 때 요리사였던 이가 주방장이 되어 맞아주었다. 물론 서로가 기억할리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저 옛날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때 혜인이네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행복했다. 이제는 혜인이가 중학생이 되고 혜원이까지 생겼으니, 거기에 직장생활의 압박에서 벗어났으니 뭐를 더 기대하겠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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