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가뭄으로 잔디가 다 죽어서 가을쯤 새로 갈아 넣을 것이라고 했다. 오랜 가뭄이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잔디밭이 누렇게 변한 걸 보니 안타까웠다. 그것도 생명인데. 혜인이네 와서 옆집을 보니 그 집은 멀쩡하다. 아범 말로는 그 집 주인은 하루 종일 마당만 들여다본단다. 예전에 미국에서 온 친구가 수영장 딸린 집에 산다는 말을 듣고 엄청 부자인 모양이라고 하니 “부자는 무슨 부자, 잔디 가꾸기 힘들어 그렇지”하며 일축했던 기억이 난다. 잔디밭 제대로 가꾸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기는 한 모양이다.
그래도 생명인데 한 여름 가물었다고 그렇게 쉽게 죽겠나 싶기도 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잔디밭을 두루 손보고 열심히 물도 줬다. 사나흘 지나니 마당 색깔이 완연히 달라졌다. 영상 통화할 때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금방 알아본다.
물주면서 잡초를 다 뽑았는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잡초가 또 보인다. 아무리 잡초라 해도 하루 만에 그렇게 자랄 리는 없고, 전날 뽑다가 빠뜨린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잔디밭을 샅샅이 뒤져 잡초를 다 뽑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보니 저렇게 잡초가 또 솟아나왔다.
말끝마다 잡초라고 하니 듣는 잡초가 기분 나쁘기는 하겠다. 사람이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렇지 그것도 생명 아닌가. 귀하게 여기는 거나 하찮게 여기는 게 모두 사람 생각이고, 잡초라는 말이 뜻하는 ‘쓸모없다’는 그 ‘쓸모’도 당장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일 뿐. 하긴 옛날에 쥐치가 잡히면 재수 없다며 버렸는데, 그게 저렇게 금값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잡초 팔자나, 사람 팔자나.
그러고 보니 아이들 맞으러 공항에 나가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이 잔디밭 보고 얼마나 좋아할까. 칭찬 좀 듣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