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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잉여일기

2022.09.05 (월)

by 박인식

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울음소리로 아이를 처음 만났다.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범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울음소리를 듣는데 문득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장손인 아범을 무척 아끼셨는데 아범이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돌아가셨다. 당신을 닮아 노래를 잘했고 그래서 꿈에서나 그리던 유럽 무대에 섰는데, 의식 없이 누워계시느라 장손이 성악을 시작한 것도 모르셨다. 장손이 딸을 얻었다는 소식을 살아서 들으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하며 전화 받던 내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렸을 것이다.


아이 이름을 지혜 혜(慧)를 써서 혜인이라고 지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기도를 담았다. 그날부터 아이는 우리 내외에게 기도할 이유가 되었고 살아야할 이유가 되었다. 작은 생명 하나가 삶을 그렇게 뒤바꿀 줄 몰랐다.


오늘 중학교 첫 등교를 했다. 한국과 학제가 달라 이르게 진학하기는 했지만, 학교에 가니 어린이는 없고 모두 청소년들이다. 그들 중 하나가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제대로 견디겠나 싶어 슬며시 걱정도 된다. 하기야 걱정은 제 부모 몫이고 우리는 사랑만 쏟으면 될 일이니 괜한 오지랖 아닌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도 멀리서 축하만 했는데 중학교 첫날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이틀 뒤에 맞는 아이 생일에도 처음 함께 있게 되어 아내는 이것저것 부산하다. 생일날 학교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간식을 가져가야 한다며 학교까지 태워다 달란다. 한몫 거들 수 있으니 나야 감사할 따름이고.


학교 끝나고 겸사겸사 밖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자꾸 아이를 돌아보게 된다. 어디로 없어질 것처럼. 신기하고 신나는 하루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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