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가 열한 번째 생일을 맞도록 한 번도 같이 있어주지 못했다. 이제는 매인 몸이 아니니 올해는 큰애 생일에 맞춰 아이들에게 가기로 했다. 생일날 아침,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간식을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큰애를 학교까지 태워갔다. 제 아빠가 있었으면 나한테까지 차례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간식 그릇을 들고 온다는 핑계로 다시 학교로 가서 큰애를 태워왔다. 학교 파하고 나서도 친구들과 한참동안 서서 이야기 하고, 차안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거리는 큰애를 보면서 생일에 맞춰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이 윤삼월이다 보니 지금까지 생일을 세 번 맞았다. 첫 번째 생일이 열두 살 때였는데 그때는 끼니는 이어갈 정도까지는 형편이 피어서 어머니가 모처럼 시장에 가서 떡을 여남은 개쯤 사오셨다. 막 먹으려는 참에 이웃이 찾아왔다. 이웃이 방바닥에 놓인 떡을 보고 웬 떡이냐고 묻고, 어머니는 빈말로 드시라고 하고, 몇 개 되지 않던 떡은 그렇게 없어졌다. 나는 쳐다만 보고 있었고. 그날 어머니는 밤새 주무시지를 못했다. 자식 생일이라고 큰 맘 먹고 사온 떡을 막상 자식에게는 하나도 먹이지 못했으니 말이다. 서른아홉에 두 번째 생일을 맞았다. 어머니가 온다고 전화하셨다는 말을 듣고 일을 핑계로 늦게 들어갔다. 그 나이에 어머니가 차리신 생일상을 받는다는 게 거북스러워서였다. 어머니가 몹시 서운해 하며 돌아가셨다는 아내 말에 어머니는 왜 괜히 일을 만드시느냐고 역정을 냈다. 역정을 낼 일도, 그게 아내에게 향할 일도 아니었는데.
다음 윤삼월은 2031년이라는데 그때면 어머니가 백수를 채우신다. 그때 생일상 차려주신다면 두 말 않고 받으리라. 생일상 피해 도망간 아들이 괘씸하셨으면 그때까지 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