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에 남아있는 그리그 흔적을 찾아서
‘솔베이지의 노래’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는 베르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활동하고 그곳에 묻힌 명실 공히 베르겐을 대표하는 예술인이다. 증조부 대에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의 베르겐으로 처음 이주해 베르겐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하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활동하였으며, 30대 후반에 고향 베르겐으로 돌아와 작곡에 전념한다. 죽기 전 십여 년 병으로 어두운 나날을 보내고 고향에서 세상을 떠나 평소에 작곡하던 곳 바닷가 피오르드 암벽에 안치되었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노르웨이 극작가인 입센의 연극 ‘페르귄트(Peer Gynte)’에 그리그가 곡을 붙인 ‘모음곡 페르귄트’ 중 한 곡이다. 이 모음곡에는 ‘솔베이지의 노래’ 외에도 ‘아침’, ‘오제의 죽음’, ‘산왕의 궁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제목만 들으면 무슨 노래인가 하겠지만 들어보면 누구나 바로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특히 ‘오제의 죽음’은 장송음악의 대표적인 곡으로 국가적인 장례가 있을 때 늘 연주된다.
모음곡 페르귄트; 솔베이지의 노래 (Solveig's song)
https://www.youtube.com/watch?v=R8AD75_sNJM
모음곡 페르귄트; 아침 (Morning Mood)
https://www.youtube.com/watch?v=aMs0rNtBZJk
모음곡 페르귄트; 산왕의 궁전에서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https://www.youtube.com/watch?v=4nMUr8Rt2AI
모음곡 페르귄트; 오제의 죽음 (Aese's Death)
https://www.youtube.com/watch?v=RF7kbmxJsfI
베르겐의 대표적인 예술가이다 보니 베르겐 콘서트홀을 ‘그리그 홀(Grieghallen)’이라고 부른다. ‘그리그 홀’은 베르겐 기차역 근처 호수공원(Lille Lungegardsvannet)에 있는 미술관 KODE 3, KODE 4 뒤편에 있다. 홀 마당에 가면 그리그 입상이 있는데 등신대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서 의아했다. 알고 보니 거구인 일반적인 노르웨이인과 달리 그리그는 150센티미터가 겨우 넘는 단신이었다고 한다.
그리그 박물관이 베르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겐을 갈 때까지만 해도 그곳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그 홀 앞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어딘가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이 박물관이겠다 싶었고, 물어보니 공항 가는 전철 중간 어디쯤이라고 해서 비행기 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들르기를 참 잘했다.
베르겐 관광안내소에 물으니 공항 가는 전철 중간 ‘호프(Hop)’ 역에서 내려 이십 여분 남짓 걸으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삼십 분 정도 걸렸는데 지도에서 거리를 재어보니 2킬로미터 정도였다. 공항 전철은 시점과 종점을 합해 정거장이 모두 27개인데, ‘호프’ 역은 그중 정중앙으로 어느 쪽에서든 열세 번째 정거장이다. 요금은 성인 40크로네(5,400원) 시니어는 그 절반인 20크로네이다.
인터넷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으면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와이파이에 연결되지 않아 관광안내소에서 설명한 대로 찾아 갔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호프 역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보면 ‘그리그 박물관(Grieg Museum)’이라는 팻말이 보이고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 다만 박물관 거의 다 가서 영어 팻말이 사라져 행인에게 물었는데 곁에 트롤하우겐(Troldhaugen)이라는 노르웨이 팻말이 있었던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떠나는 날 마지막 일정으로 잡다 보니 시간이 늦어 폐관하는 시간 가까이 되어 도착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도 관람하기에 충분치 않다며 들여보내지 않았다. 대신 주변은 돌아보는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박물관 내부는 보지 못하고 생가 주변과 작곡할 때 주로 머물렀다는 ‘작곡가의 오두막’, 그리고 ‘노르도스 호수(실제로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작곡을 구상했다는 정원에 한참을 앉아 그가 즐겼던 풍경을 누리고 그의 작품을 떠올렸다.
박물관으로 쓰는 그리그의 별장은 1885년에 세운 것으로, 그리그는 이 별장을 여태까지 본 것 중 ‘최고의 작품’으로 여겼을 정도로 아꼈으며 생의 마지막 이십 여 년을 여름이 되면 항상 이곳에서 지냈다. 내부를 보지 못하기는 했지만 여느 박물관과 크게 다를 바 없어 크게 아쉽지는 않다. 박물관의 진수는 그리그가 생전에 내려다보던 ‘노르도스 호수’와 ‘작곡가의 오두막’이고, 어차피 오두막은 밖에서 창문으로 들여다 볼 수밖에 없으니 진수는 다 누린 셈이다.
그리그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나 심지어 호수에서 노 젓는 소리까지도 귀에 거슬려 했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하기 위해 1891년에 이 오두막집을 세웠다. 창문으로 보니 그가 사용한 피아노, 책상, 소파만 놓여있다.
오두막으로 내려가는 길에 전날 ‘그리그 홀’ 앞에서 본 입상과 똑같은 입상이 서있었다. 베르겐 시내 어딘가 그리그 입상이 하나 더 서있다던데, 그것도 같은 모습인 것을 보니 같은 입상을 여러 점 제작해 전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물관을 보지 못한 것은 크게 아쉽지 않은데 연주장을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다. 노르웨이는 지하시설 건설 기술에 있어서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이십 년도 훨씬 넘은 옛날에 노르웨이에 출장 갔던 것도 지하시설(터널) 설계 때문이었고, 그때 베르겐을 와본 일이 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한 요빅 경기장이 바로 그런 대규모 지하시설의 상징과도 같다. 터널 기술은 폭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로 결정된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터널의 폭이 20미터 정도였는데 요빅 경기장은 무려 60미터에 달했다. (길이 90미터, 높이 30미터) 그것과 아울러 열손실을 막기 위한 건물도 독보적이었다. 예컨대 건물을 지하에 짓지는 않지만 마치 지하에 지은 것처럼 지붕을 잔디로 덮는 건물도 흔했다. 이곳의 연주장이 바로 그렇게 지어졌다. 그것은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니고 정작 특별한 것은 연주장 내부의 모습이다. 무대가 객석 아래쪽 끝에 놓여 있고 무대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작곡가의 오두막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객석에서 보면 오두막과 호수가 배경이 되는 셈이다. 베르겐을 두 번 찾은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다시 찾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그 모습은 영영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찌 아쉽지 않겠는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곳의 진수는 오두막과 ‘노르도스 호수’인데, 나는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진수 중의 진수라고 생각한다. 아마 한 시간 남짓 앉아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고단해하지 않았으면 좀 더 머물렀을 것이다. 그날만 삼만 보 가까이 걸었으니 더 있다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