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가장 남쪽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는 Kristiansand이라고 쓰고 크리스티안산이라고 읽는다. d는 어디로 도망가고 없다. 인구 십만에도 미치지 않는 아주 작은 동네이고 도시 전체가 매우 깔끔하다. 인구는 2018년 통계인데 며칠 지내면서 돌아본 느낌으로는 그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만 보를 걸으면 도시 중심부 둘레를 돌 수 있다.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35번 시내버스는 대체로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요금은 57크로네(8천원)이고 카드로 결제한다. 현금을 받는 버스도 있고 카드만 받기도 한다. 버스 터미널이 시내 중심가에 있다.
도시 남쪽 끝에 있는 어시장 주변이 특히 아름답다. 사진으로 보면 동화 속 나라 같다. 항구라고는 하지만 여객선과 화물선이 운항하는 항구이고 어항이 아니다 보니 이곳 어시장에서 파는 생선은 모두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다. 어시장 한편에서 새우튀김이나 피시앤칩스를 파는데 값이 다른 곳에 비해 싸기는 하지만 특별히 신선하지도 않고 튀김솜씨도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남쪽 해변에 크리스천스홀름 요새는 무료로 개방한다. 돈을 받을 만큼 볼 것은 없지만 주변 경관이 기가 막히다. 청동대포 여덟 문과 망루처럼 생긴 로툰다(원형건물)가 전부이다. 이곳에서 베르겐을 운항하는 저가 항공은 프로펠러기이다.
저가호텔인 시티박스 호텔은 하루 십만 원 정도로 달랑 침대 하나와 샤워부스가 달린 화장실이 전부이다. 얼마나 좁은지 두 사람이 운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1층에 간이 주방이 달린 공용공간에 식탁도 여럿 있어서 거실 겸 식당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값도 그렇고 실제로 사용하기도 훨씬 편리하다. 시티박스 호텔은 이곳 말고도 오슬로와 베르겐에 있다. ‘도심에 있는 저가호텔’이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도심에 있어 도시 어느 곳이나 걸어서 다닐 수 있다.
볼 것, 마실 것, 먹을 것은 크리스티안산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구역에 모두 몰려있다. 물가가 워낙 비싸고 이곳에만 있는 것이 없어서 살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 가서도 새우젓 꽁댕이를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청바지를 한국보다 싼 값에 샀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두 번째 도시답게 상당히 넓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베르겐은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극히 일부 지역이다. 공항에서 전철을 타고 베르겐 항구까지 갈 수 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그 옆에 있는 매표기에서 A구간을 선택해 사면 된다. 요금은 성인 40크로네(5,400원) 시니어는 그 절반인 20크로네이다. 곁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시니어가 몇 살부터냐고 물으니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며 길게 설명을 한다. 대개 60대 후반에 은퇴를 하지만 조기 은퇴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은퇴하면 모두 시니어라고 하기도 어렵단다. 그래서 내 나이를 말하니 그 정도면 틀림없이 시니어일 거라고 한다.
이곳에도 시티박스 호텔이 베르겐 중심가에 있는 공연장인 ‘그리그홀’ 앞에 있다. 숙박비가 20만 원으로 저가호텔이라고 하기엔 매우 비싸기는 하지만, 그마나 베르겐에서 저렴한 숙소에 해당한다. 간단한 취사도 가능하지만 미리 식품을 챙겨간 게 아니면 별로 절약되지 않는다. 햇반과 컵라면이 그렇게 요긴할 줄 몰랐다.
베르겐 생선수프가 명물이라며 꼭 맛보라는 글이 곳곳에 보인다. 노르웨이 음식 중 먹을 만 한 것은 맞지만 명물일 것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그 중 우리 입맛에 맞기는 하다. 굳이 맛보겠다면 값을 잘 살피는 것이 좋다. 알량한 수프하나에 이삼 만원 한다. 잘 찾아보면 만 원 정도로 맛볼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밖에 다른 음식도 삼만 원 밑으로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시장 끝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선원들의 기념탑(Sailor's Monument)이 서있는 광장이 보이는데 그 기념탑 바로 옆 갤러리아(Galleriet) 2층에 ‘Sabrura 스시’에 스시 뷔페가 삼만 원 정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은 아니고 연어 스시와 롤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은 돈으로 밥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어시장에서 바다를 끼고 십 분쯤 걸으면 길 끝에서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노르드네스(Nordnes) 공원을 만난다. 그 공원 전망대(view point)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기가 막히다. 시간 여유가 없더라도 무리해서라도 꼭 찾을만한 곳이다.
베르겐 전철은 공항에서 항구까지 다니는 노선 하나뿐이다. 시점과 종점을 포함해 모두 27개 정거장이 있다. 그리그 생가가 있는 그리그 박물관은 그 중간인 호프(Hop)에서 내리면 된다. 공항에서도 항구에서도 열세 번째 정거장이다. 정거장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그리그 박물관(Greig Museum)이라는 팻말이 계속 이어지니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다 갈림길 한 곳에서 영문 팻말이 없어지는데 그럴 때는 Troldhaugen이라는 노르웨이 팻말을 따라가면 된다. 관광안내소에 물으니 이십 여분 걸으면 된다는데 그보다는 더 걸리고, 그래도 오가는 길 경치가 좋아서 걸을 만하다. 그리그 박물관 입장료가 이만 원쯤 되는데 굳이 사지 않아도 생가 분위기를 느끼고 작곡했던 오두막을 둘러보는데 지장이 없다. 내가 보기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생가 앞마당과 물가에 있는 작곡가의 오두막이 핵심인데, 입장권 없이 돌아볼 수 있다.
노르웨이는 워낙 물가가 비싸서 뭘 사기가 어렵다. 면세(tax free) 상점이 대부분이지만 값이나 품질이 살만큼 매력적인 것이 별로 없어 출국할 때 세금을 환급받을 일이 별로 없기는 하다. 어쩌다 보니 싸고 좋은 청바지가 있어 사고 면세 확인서를 받았다. 오슬로 공항에서 세금 환급 창구를 찾는데 표시도 없고 근무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찾고 나서 보니 탑승장 안 면세 상점 사이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이를 취급하고 있었다.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따로 환급 창구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슬로는 다른 국제공항과 달리 입국심사 절차가 없다. 어느 국적이건 입국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간혹 비행기에서 내릴 때 여권을 검사하기는 한다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탄 비행기가 그 경우가 되었다. 다들 여권 보여주고 쉽게 나가는데 우리 내외만 붙들고 꼬치꼬치 물었다. 왜 왔느냐, 어디를 경우해서 왔느냐, 한국에서 떠나 이곳에 올 때까지 항공권을 전부 보여 달라, 숙소 예약 서류를 보자. 왜 우리에게만 유난하게 구느냐고 항의하니 무작위라고 한다. 그 무작위가 왜 하필 우리이냐, 인종 차별하는 거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니 당황해하며 그냥 가란다. 우리만 솅겐 조약국 여권이 아니라서 그렇다고는 했지만 당황하는 거 보니 동양인 차별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런 경우라면 강하게 항의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