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거리에서는 영어를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표지판이 자국어 일색이다. 고객에게 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백화점도 다를 바 없다. 음식점이나 가야 메뉴판에 영어를 병기하는 정도이다. 이게 생각보다 무척 답답하다. 구글번역기를 꺼내들던지 물어봐야 해결되니 말이다. 물어봐야 해결된다는 것은 말은 통한다는 말이다. 독일에서는 마주치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영어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다.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서는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못 봤다. 비스바덴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끔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혜인네가 사는 호흐하임 같은 위성도시에서는 누가 영어로 물어보는데 못 알아듣겠으면 옆 사람을 동원한다. 부족한 영어를 친절로 덮는다는 말이다. 결국 영어로 불편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표지판에 영어를 적어놓지 않는 것은 불친절 말고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불친절은 자국어에 대한 긍지를 넘은 오만함일 것이고.
같은 솅겐조약국을 여행할 때는 외국인도 여권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육로로 넘나들 땐 그러려니 했는데 공항에 입국장이 없으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솅겐조약국은 동유럽의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포함해 그 서쪽으로 있는 국가, 발트3국, 스칸디나비아3국이다. 영국은 해당이 되었는데도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 지금은 유럽연합을 탈퇴했고. 그런데도 영국 공항에서 여권에 스탬프를 찍지는 않는다. 그저 여권 본인이 맞는지 정도를 확인한다고나 할까. 한 솅겐조약국에서 다른 솅겐조약국으로 입국할 때 간혹 여권을 보자고도 하는데, 말만 무작위지 인종차별로 여겨질 소지가 다분하다. 만만한 사람만 잡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돌아갈 사람인지 눌러 앉을 사람인지 구분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숙소 예약증이나 돌아가는 항공권을 보여주면 오래 시간 끌 일이 없다.
루프트한자 항공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뒤에 앉은 승객이 큰 소리로 떠들어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굳이 얼굴 붉힐 일이 아니어서 승무원을 불러 조용히 시켜달라고 부탁했는데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승객은 누구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불편하다니 그런 사실을 전하기는 하겠다”는 것이었다. 승무원 요청대로 뒤에 앉은 승객들이 조용해지기는 했는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늘 그렇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고 승무원 개인의 성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오랫동안 일하던 사우디에서도 쓰레기는 밤새 치웠다. 쓰레기차가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집집마다 서서 쓰레기를 치워야 하니 낮에 작업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교통혼잡 때문에라도 밤새 치울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그래서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위험한 심야로 내모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야간작업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교통혼잡이 문제라면 교통량 많은 나라에서 낮에 쓰레기 치우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곳은 쓰레기 치우는 일도 낮에 이루어진다. 당연히 교통체증을 일으킨다. 혜인이네 동네와 같이 왕복2차로 도로에서는 빼도 박도 못하고 쓰레기차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관련 업무를 했던 사람으로 유심히 지켜봤지만 쓰레기차에 막혔다고 짜증을 내거나 경적 울리는 모습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돈이 많다고 선진국이 아니더라.
혜인이네 동네는 왕복2차로 도로에 한 쪽도 아니고 양쪽에 모두 주차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양쪽 통행은 고사하고 한 쪽 통행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도 모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좁은 곳을 통행하다 보면 맞서서 버티는 차가 있을 법도 한데 그것도 보지 못했다. 통행우선순위가 있다고 하더라마는 그보다는 그런 모습이 생활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것이 너에게 나에게 모두에게 쉽고 편한 길이 아닌가. 우리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좀 더 노력하면 작은 아쉬움조차 아예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혜인이네가 출석하는 마인츠교회는 독일교회 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린다. 독일 교인들은 11시면 모든 예배가 끝나고, 그 시간 이후로 마인츠교회가 사용한다. 코로나 이후로 출석교인이 들쭉날쭉하지만 대체로 주일 예배 인원이 교회학교를 합쳐 150명 정도를 넘나든다. 독일교회는 스무 명 남짓하다. 독일은 국가에 교회를 등록하고 교역자 급여도 국가에서 지급한다. 물론 모든 교회가 국가에 등록해야 하는 건 아니고 교회 선택에 달렸는데, 대부분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교회에 지급되는 예산은 국가에서 징수하는 종교세로 충당한다. 소득세의 8~9% 정도로, 종교를 가졌다고 등록하고 신분증에 교인인 것을 표기한 독일 국민에게 부과한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교인이 줄면 전담 교역자에서 겸임 교역자로 바뀌고 더 줄면 교회를 통폐합한다. 마인츠교회가 빌려 쓰고 있는 독일교회는 교인이 이미 많이 줄어 겸임 교역자가 이끌고 있는데, 이 상태대로 가면 통폐합될 수도 있어 교인이 적지 않은 마인츠교회로서는 다른 곳을 찾을 일로 걱정이 많다. 교인이 늘어나면 그렇지 않겠지만, 교인이 줄어드는 건 우리나라도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으니 이곳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