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것저것

독일 두 달 살이 (3)

by 박인식

에어컨은 공공건물이나 사무실 같은 곳이나 있지 가정집에는 아예 없다. 아무리 더워도 부채도 없고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난다. 몇 년 전부터 유례없는 더위가 찾아와 혜인이네는 한국에 휴가 다녀갈 때 선풍기를 사갔다. 그나마 라도 있는 건 혜인이네 뿐이다. 산책하다가 앞 동네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봤다. 작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올 여름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최근 유례없는 더위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탄소배출 때문이라면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독일에서 에어컨 매출이 꽤 오르겠다.


이곳 사람들은 발코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다못해 두 사람이 엉덩이 붙일 공간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마저 없으면 세가 나가지 않는다. 런던에 며칠 가있는 동안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시내에는 발코니 있는 집이 없는데 외곽으로 나갈수록 새집일수록 발코니 있는 집이 많았고, 최근에 지은 주택은 예외 없이 발코니가 있었다. 런던에 오래 사신 분께 요즘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바뀌었는지 물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발코니가 정원을 대신하는 것이란다. 주택은 모두 정원이 있는데 요즘 짓는 아파트는 정원을 만들 수 없으니 그것을 대체하는 용도로 발코니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서 발코니가 있는지 따지는 집들은 모두 정원을 가질 수 없는 아파트였고, 우리처럼 발코니를 유리로 막는 경우도 보지 못했다. 정원과 같이 열린 공간을 생활하는데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혜인이네가 비스바덴에 살던 5년 전만 해도 배달이라는 게 없었다. 소포를 보내면 으레 우체국에 가서 찾아와야 했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물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배달까지 삼사 일을 넘기지 않는다. 예전 독일 시스템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전화나 인터넷을 신청하고 일주일 안에 설치가 끝나면 놀라는 나라였으니 말이다. 거기에는 코로나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배달은 직접 전달하는 게 원칙이라는데 실제로는 문 앞에 물건을 두고 벨을 누르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츰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직접 전달하지 못할 경우 동네마다 있는 보관함에 두고 바코드가 담긴 메모를 남기고 간다. 그곳에 가서 바코드를 찍고 가구별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보관함이 열린다. 무한정 둘 수 있는 건 아니고 일주일인가 지나면 반송시킨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이 워낙 좋기도 하지만 독일의 인터넷 사정은 얼마 전까지 국가 위상에 미치지 못했다. 차츰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어 지금은 헤비유저가 아닌 이상 인터넷 때문에 불편을 느낄 일은 없다. 작년에는 혼자 돌아다닐 일이 없어 경험하지 못했지만 올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어지간한 지하철이나 버스에도 모두 와이파이 시설을 갖추었다. 시내에서도 와이파이 한두 개는 늘 연결할 수 있다. 숙소야 종류와 등급을 막론하고 와이파이 갖추지 않은 곳이 없고. 젊은 사람들만큼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머무는 동안 굳이 와이파이 단말기를 사용하거나 데이터 로밍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혜인이네는 이사를 몇 번 다녔는데 하나 같이 창호 시스템이 아주 훌륭했다. 일부러 덤벼들어도 망가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고 방음이나 보온 성능도 아주 뛰어났다. 지금 사는 곳은 인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는 비행기 소리로 하루 종일 시끄럽다. 하지만 문을 닫고 있으면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이다. 요즘 우리나라 창호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내 눈에는 차이가 커 보인다. 이곳에 바우하우스라는 주택 관련 제품을 취급하는 대형 매장이 있다. 창호가 그 정도라면 다른 것도 볼만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영부영 하다가 가볼 기회를 놓쳤다. 이번에 몇몇 도시를 다니며 유심히 살펴봤는데 독일의 창호 시스템만큼 야무진 것은 찾기 어려웠다.


독일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우리만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에 유학 온 학생들이 무슨 선진국이 이러냐며 실망하는 일이 적지 않단다. 업무 처리가 더디고, 병원에 가서 의사 한 번 만나려면 예약하고 기다리고, 그렇게 만나 봐야 시원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환경도 뒤떨어지고 (나는 못 느꼈지만).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가 ‘선진국’이라는 것을 그저 ‘일상을 좀 더 편하게 누릴 수 있고 모든 것이 좀 더 풍요로운 곳’ 정도로 여긴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잠시 사회 시스템과 개인 일상사 바탕에 깔려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 사회 구성원으로서 법적 의무 뿐 아니라 도덕적 의무까지 감당하려는 자세, 내 권리만큼 남의 권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로 눈길을 돌려보자. 그래도 이곳이 우리만 못하다고 생각이 들까? 앞서 예를 든 것과 같은 불편함이 이런 저력을 지울 만큼 크고 중요한 것일까? 아마 아니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그것까지도 따라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S-bahn Wifi.jpg
309599563_5498618600174243_954912200582594824_n.jpg
311299123_5498618673507569_8297468343264290135_n.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일 두 달 살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