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있는 자식이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 게 2006년 말. 그때부터 가정을 이루고 아이 둘의 아빠가 된 지금까지 독일에서 산다. 아들이 결혼하던 2009년 나는 사우디 현지법인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때부터 한국에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독일을 오갔다. 시차도 두 시간에 불과하니 거의 같은 시간대에 산 셈이다. (그것도 서머타임이 적용되는 하절기에는 한 시간으로 줄어든다.) 세월이 좋아 영상통화가 가능해지고 같은 시간대에 사는 덕분에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볼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달 휴가를 반으로 쪼개 반은 어머니 뵈러 한국에 가고 나머지 반으로 아이를 보러 다녔다. 보름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를 두고 돌아서는 일은 언제든 아쉽고 섭섭했다. 하루라도 빨리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와 보낼 날을 기다렸고, 그 날이 되어 무려 ‘독일 두 달 살기’에 나섰다.
코로나로 왕래가 끊어진 시간을 빼놓고 매년 아이들을 보러 다녔다. 그러니 독일을 다녀온 것이 열 번은 넘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름은 가족으로 지내기는 짧은 시간이어서 우리는 손님처럼 머물렀고 아들 내외는 우리를 손님처럼 대접했다. 두 달은 그런 어색함을 가족으로 녹여낼 만한 시간이었다. 가족이 되어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을 치우고 장을 보러 다녔다. 비로소 독일과 독일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곳은 생활비가 매우 싸다. 선진국 중 으뜸이라는 독일의 생활비가 우리보다 싸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한국에는 아직 월세가 보편화되지 않아 집세가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곳과 생활비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식품이나 생활용품은 상당히 싸다. 소고기, 돼지고기, 소시지는 한국의 반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채소와 과일도 싸다.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빵도 다르지 않다. 큼직한 크라상 다섯 개에 1유로이니 하나에 채 삼백 원이 안 된다. 서울에서 크라상을 천 원 밑으로 사본 기억이 없다. 혜인이네가 사는 중부지역은 바다와 멀어서 생선이 그리 많지 않고 어종도 달라서 비교하기 어렵다.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이 적어도 우리보다 비싸지는 않다.
커피숍에서 파는 커피는 대체로 4천 원 내외이고 비싸도 7천 원을 넘지 않으니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음식은 같거나 다소 비싸다. 파스타가 1만5천~2만 원, 일반 단품요리도 그 정도이고 생선요리는 그보다 조금 비싸다. 우리야 음식 하나 시키면 끝나니 그게 전부이지만 이곳은 전채요리에 디저트, 음료수까지 추가하면 우리 음식 값의 두 배를 쉽게 넘는다. 요즘은 이곳에서도 그렇게 이것저것 다 시키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고급음식점은 별개이고. 우리와 다른 게 하나 있다. 이곳에서는 자리 때문에 음식 값을 비싸게 받지는 않는다. 우리는 인기 있는 곳이나 경치 좋은 곳에 가면 같은 음식이라도 비싼 걸 당연하게 여긴다. 나 역시 관광 삼아 왔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을 찾고 그러다 보니 음식도 으레 비싸려니 했는데, 자리 때문에 음식 값이 비싼 곳은 보지 못했다. 내가 돌아다녔어야 얼마나 돌아다녔겠는가마는, 하도 인상이 깊어 잘못 기억했을 리는 없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커피가 뜨겁지 않아서 아쉬웠던 일이 자주 있었다. 차라는 게 따끈한 맛으로 마시는 게 아닌가. 차를 즐기는 이들에게 흉잡힐 말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그렇다. 커피를 다시 덥혀달라고 부탁하니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덥혀주기는 하더라. 커피가 미지근한 건 노르웨이가 더 했다. 오죽하면 크루즈에서 뜨거운 커피 마신 게 기억에 남았을까.
독일 음식 중에 기억에 남고 그래서 다시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한 음식이 별로 없다. 그런데 빵은 참 맛있다. 달짝지근한 케이크가 아니라 식사 때 먹는 빵 말이다. 오래 전에 아내와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호텔 조식을 먹다가 빵이 얼마나 맛있던지 서로 쳐다보며 감탄을 연발한 일이 있다. 혜인네 오가기 시작하면서 빵맛을 제대로 알았는데, 이곳은 슈퍼에서 산 빵도 서울 어지간히 이름난 빵집보다 못하지 않다. 서울에 돌아가 이곳에서 먹던 것과 같은 빵을 찾기는 했지만 그 맛에 이르지 못해서 이곳에서 생지를 사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재료인가 빵 만드는 기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