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두 분 목사님께 큰 영향을 받았다. 한 분에게서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다른 한 분에게서는 믿음대로 사는 것을 배웠다. 두 분 중 한 분은 지금까지도 목회를 시작했을 때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한 모습으로 본분을 다 하고 있는데 다른 한 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만과 독선으로 점철된 목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밟는 그 전철을 되풀이 하고 있어 한 때 그분의 가르침에 심취하고 감동하였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며칠 전 책장에서 그분이 쓴 책을 모두 빼어버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목회자들이 몰락해가는 첫 번째 징조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기 견해를 전한다는 것이다. 최근 어느 신흥 대형교회 담임목사 한 분의 설교를 몇 년 만에 다시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몇 가정으로 출발한 교회가 10년 남짓한 새 교인 수가 수천에 이르게 되었으니 자기 목회에 대한 자부심이 없을 수는 없겠다. 그렇다고 해도 예전 설교에서도 자기 이야기가 너무 많아 걱정스럽더니 이제는 하나님은 어디 가고 자기와 자기교회 이야기가 설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설교 듣는 내내 마음이 아슬아슬했다. 도대체 사회적 성공이라는 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변질시키는 것일까? 아직 젊은 분인데, 하나님의 특별하신 가호가 그분과 그 교회에 함께 하셔서 초심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 달 가까이 감기를 앓고 있다. 처음에는 목이 갈라지는가 싶더니 코가 막히고 급기야는 콧물을 주체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병원에 간다, 약을 먹는다, 별 궁리를 다해도 도무지 차도가 없었다. 감기로 불편한 것이야 견디면 되는 일이니 조급해 할 일은 아니었지만, 당장 성가대에 설 수 없으니 목쉰 것만이라도 어떻게 조치를 취할 수 없을까 해서였다. 지난주에는 연습실까지 갔다가 결국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한 주를 더 보냈지만 좀처럼 갈라진 목은 돌아오지를 않았다. 며칠 전부터는 정해준 용량보다 약을 과하게 먹기도 하고, 새벽기도를 건너뛰면서 열 시간 넘게 잠을 자기도 했다. 말 수도 줄였다. 어지간히 회복된 것 같아 오늘은 찬양을 드릴 수 있으려니 했는데, 연습시간에 한 번 제대로 불러보지도 못하고 목소리가 다시 갈라져버리고 말았다. 따라 부르기를 포기하고 정신을 집중했다.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몇 분만이라도 목소리를 회복해서 오늘만큼은 찬양을 제대로 드리고 싶었다. 눈을 감고 도우심을 구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언제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려 했던 일이 있었나 싶었다.
성가대에 서기는 했는데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실망할만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평온했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평생 어느 때보다도 오랜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찬양을 준비할 수 있어서 말이다.
잡초는 쓸모없는 풀이 아니라 쓸모가 확인되지 않은 풀이다. 그러니 알량한 지식으로 남을 판단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