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해안복원사업을 마친 후 두 해가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세월 끝 모를 기다림과 좌절의 순간들조차 훗날 이룬 성과의 발판으로 삼게 하셨으니, 지금 이 기다림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고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 이루게 하시지 않겠나. 이런 끝 모를 기다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건 기필코 이루어 내리라는 열정 때문이 아니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거두리라는 희망 때문도 아니다. 다만 포기라는 것이 내게 주어진 선택지에 들어있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건 대체로 잘 해보자고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란다. 그럴 때는 차라리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 게 낫겠다는 설교를 들었다. 잘하자고 언성을 높이는 것 보다는 잘하지는 못해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화목한 것이 하나님께서 더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올해는 교회에서 재정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는데, 교회 재정은 엄격할수록 덕이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다가 성격까지 까칠하니 교우들과 부딪칠 일이 걱정되었다. 며칠 전, 부서를 맡은 교우 한 분께서 신청한 비용 때문에 언성이 높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설교 말씀이 생각났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언성을 높인 건 잘못한 일이었고, 언성을 높인다고 해서 이미 벌어진 일을 없던 것으로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전화를 드려 사과했다. 다행히 그 교우께서 사과를 흔쾌히 받아주셨다. 설교를 귀담아 들은 덕분에 더 큰 잘못을 막을 수 있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겨루어 두 판을 내리 패했다. 최종승부가 어떻게 나던 두 번 내리 패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만하다.
이번 대결은 감정이 있는 사람과 감정이 없는 기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바둑 뿐 아니라 모든 경기에서 심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는데, 알파고는 감정에 휘둘릴 필요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이세돌 9단이 한 수 접히고 들어간 셈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분야는 확대될 것이고 머지않아 인간이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일이 일상화되지 않겠나. 그럴 때 상대의 심리상태나 반응에 따라 대응하는 게임이론이나 전략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지 않을까 싶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겠다.
우리 믿음의 본질은 죄의 용서와 구원, 그로 인해 얻게 될 영생,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있다. 이에 대해 분명한 확신이 있고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왜 이 크나 큰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고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나? 수 년 전부터 이 벽을 넘어서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왔지만 올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부활절을 흘려보낸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Kyrie Eleison
어쩌다 보니 온라인 친구들 중에 젊은이들이 꽤 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관심사를 늘 공유하게 된다. 비판적인 기질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진보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먼 내게는 그들의 관심사가 부담스러운 때가 종종 있다. 그 때문에 몇몇은 친구 관계를 끊기도 했다. 그 이후로 몇몇 젊은이들이 새롭게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관심사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부담스러운 글도 열심히 읽고 있다. 한국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과 의견을 나눌 일도 없고, 그래서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