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본디 정의롭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도의도 신의도 저버린 채 이전투구를 이어가고 있어 보기에 여간 민망하지 않다. 예전의 정치 또한 정의롭지는 않았지만 나름 도리도 있었고,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것 역시 지금과 다를 바 없지만 신의는 지킬 줄 알았다. 정치는 국민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세상은 한 걸음씩 나아져 가는데 정치는 제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이 나아져간다는 게 착각인가, 아니면 요즘 정치인들이 돌연변이인가?
죄는 결정적인 순간에 값을 요구한단다. 치러야 할 값이 엄청나게 많은데 지금까지 죄 값 치른 일이 없다. 아직 결정적인 순간을 맞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 맞을 인생 절정의 순간 때문에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앞으로 치를 값 때문에 걱정해야 하나?
성경의 핵심은 복음서에 있고, 복음서의 진수는 예수께서 전하신 산상수훈에 있다고 믿는다. 어느 하나 가볍게 여길 말씀이 없고 어느 하나 따르기 쉬운 말씀도 없다. 오죽하면 종교개혁자 마틴루터가 “산상수훈은 우리더러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 말씀 중 어느 하나도 우리 힘으로 따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을까. 그러니 겸손하게 이를 따를 수 있는 힘을 주십사 구해야 하지 않을까. 찬송도 이와 다르지 않다. 찬송의 가사를 묵상해보면 어느 하나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는 찬송이 없는데도 그저 아무런 감격도 감동도 없이 습관적으로 부른다. 매일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는 하지만 그에 대한 감격과 감동은 잊은 지 오래 되었다. 내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격을 회복하게 해주십사 구하리라.
여당의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이 언론사 간부들과 간담회를 갖겠다는 보도가 있어 이번에는 뭐가 달라지려나 했다. 사진을 보니 대통령은 여전히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한다.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자는 요량이라면 육성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을 정도 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이크 들고 이야기해야 할 만큼 많은 사람과 얼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서 나누는 이야기에 무슨 진심이 담기겠나.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정말 변하지 않는가보다. 오죽하면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는 게 기적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람이 바뀌는 게 기적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