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계 앱을 깔기도 전에 걸었던 기록이 남아 있어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스마트폰 기능을 몰라서 일어난 무지의 소치였더라. 걸음 측정 앱이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에 깔려 있었고, 만보계 앱은 이렇게 측정된 자료를 가공해 나타내는 것에 불과했다. 살펴보니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10분 간격으로 측정한 걸음 수가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까맣게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다. 내가 걸은 기록을 어디 쓰겠나마는, 이렇게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개인정보가 기록되고 노출되고 본인 의사에 반해 사용된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료기관이나 기업에서 건강보험공단에 개인 진료기록을 공개해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한다더라. 개인으로서는 진료기록보다 더 내밀한 개인정보가 없을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공개해서 안 되는 일이고, 정부에서도 불가방침을 굳게 유지하고 있다고는 한다.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겠지만 이런 문제에 좀 더 예민해져야 하겠다.
2006년 정용섭 교수의 설교비평을 통해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를 만났다. 보수주의적 색채가 강한 내게는 그의 설교가 몹시 거북했지만, 옳지 않은 것에 대한 그의 추상같은 질책과 선지자적인 음성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수요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빼놓지 않고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예민한 주제가 있을 때에는 특히 그의 해석이 기다려진다.
그가 시무하는 청파교회는 올해로 108년이 되었다. 36년 전 지금 교회를 건축하고 봉헌할 때 설교 제목이 “이 성전을 허물라”였다. 눈물겨운 헌신을 통해 교회를 지어 봉헌한 교우들은 어쩌면 따뜻한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기대했겠지만, 당시 담임목사께서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다면 새로운 건물은 오히려 하나님의 무덤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런 면면을 이어온 교회를 목회하고 있으니 그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직 말씀을 따라 선지자적인 음성을 지켜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축구 중계를 보느라 수업에 늦게 들어온 학생들이 “이회택 선수가 골을 넣었다”는 말을 하는 통에 더 이상 혼내지 못하고 웃고 마셨던 이현택 선생께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제자들에게 하는 욕 중에 가장 큰 욕이 ‘나중에 마누라 속 썩일 놈’이라고. 어린 나이에 마누라 속 썩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리가 만무였겠는데도 아내에게 미안해 할 일이 생기면 그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내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속 썩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아내 생일이라고 모처럼 둘만 오붓하게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아내도 딱히 아니라고 하지 않는 걸 보니 크게 속 썩인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내 잘났다는 이야기이기야 했겠나. 평생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살아 미안한 마음을 그렇게 눙치고 말았다.
아내 환갑날 아침에 눈비비고 일어나 생전 처음으로 아내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안 하던 짓 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그것도 해보니 하겠더라. 결혼해서 삼십 년이 훨씬 넘도록 살아오면서 늘 미안했다. 오죽하면 속 썩이지 않은 걸 자랑이라고 하겠나.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아내에게 대접도 잘하고, 안 하던 짓도 하고, 살가운 남편이라는 소리도 듣도록 애써야겠다. 그래야 말년에 세 끼 밥이라도 얻어먹지 않겠나. 세 끼가 욕심이라면 그저 두 끼로 만족하리라,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