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와 정의
김영란
풀빛
2016년 7월 15일
나는 법치주의가 “누구나 예외 없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언젠가 법치주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쓴 글을 보기는 했는데 붙여놓은 설명만으로는 잘못 알고 있는 게 무엇이고 본래는 어떤 뜻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저자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법치주의는 ‘누구든 법 이외의 것에 지배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법치주의가 법이 지배하는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범위’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울러 법이 법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법이 ‘정의를 구현하고 기본권을 보장하기에 적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법치주의가 “법대로 하자”는 것인 줄 알고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한다”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내가 법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법치주의가 처음부터 이와 같은 개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던 법치주의가 점차 실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저자는 법치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여섯 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 법의 내용이 어떠하든 정부가 정한 법을 따라야 한다.
2단계; 법은 예측 가능하고 일반적이며 명확하고 명백해야 한다.
3단계; 법의 내용은 시민의 동의를 얻어 만들어져야 한다.
4단계; 법은 개인적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5단계; 법은 개인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그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규정해야 한다.
6단계; 법은 사회복지를 갖추도록 규정하고 국민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
법의 기준이 권력자이자 국가의 관점에서 시민이자 개인의 관점으로, 형식적인 것에서 실질적인 것으로, 포괄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명령과 규제에서 보호와 보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법은 ‘일상의 상식에 부합’해야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법이 ‘정의로운 태도로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은 잘 알려진 대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제정된 ‘성문법’과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행해지던 행위가 구속력을 얻은 관습법이나 판결의 내용이나 취지가 반복적으로 확인된 판례와 같은 ‘불문법’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성문법보다는 불문법이 저자가 정의한 대로 법이 ‘일상의 상식에 부합’해야 한다는 취지에 맞는 것이 아닐까? 소정의 절차를 밟는다고 해도 그것이 권력 집단이 주도하는 것이라면 시민보다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을 것이고 그것이 일상의 상식에 부합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실제로도 시민법 계열의 영국 법이 불문법을 따르는 것과는 달리 성문법의 대표 격인 독일법은 군국주의 색채가 짙고 시민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법은 왕권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저자는 귀족이 왕권에서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태동된 마그나카르타(1215), 왕권을 제한하기 위해 이루어진 권리청원(1628), 의회의 권리를 명실상부하게 확보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왕권을 제한한 권리장전(1689)를 거치면서 영국이 법과 민주주의를 세워나갔다면서, 그 어느 단계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권리장전은 권리청원이 있고 나서 채 백 년이 되기도 전에 일어났지만 그 사이에 권리청원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찰스1세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법령을 폐기하고 의회마저 해산한다. 이에 반발한 크롬웰의 주도로 청교도혁명이 일어나 찰스1세를 처형하고 공화국을 선언한다. 왕권에 못지않은 독재정치를 벌이던 크롬웰이 물러난 후 즉위한 찰스2세, 제임스2세도 왕권을 독단적으로 운영하자 의회와 왕권이 충돌하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한 걸음씩 진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이와 같이 법이 한 걸음씩 구체화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데 반해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영국 법이 시민의 손으로 세워지고 구체화되었다면 경국대전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법률은 지배자인 왕의 의도와 지시를 따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 시행중이던 기존의 모든 제도를 무시하고 독일의 군국주의적 법제도에 식민 지배를 위한 독소조항이 가미된 일본법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현재 우리의 법률 체계가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결과 시민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거나 상당히 뒤져있다고 평가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법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설명하는데 긴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은 시민을 통치계급, 군인계급, 생산자계급으로 나누고 한 계급의 시민이 다른 계급의 시민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것으로 정의로 여겼다. 정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령과 복종 같은 강제력을 인정했으며, 필요하다면 가족제도나 사유재산도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은 모두 대등하기 때문에 명령과 복종 같은 강제력이 필요 없고 상호관계에 의해 정의가 유지되는 것으로 여겨 스승에 비해 진일보한 자세를 보인다. 그러나 시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이전과 다름없이 강제력에 의해 다스려야 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어 근본적으로는 스승의 생각과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근대로 들어오면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 제레미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다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훗날 존 롤스는 공리주의가 개인의 권리를 짓밟을 뿐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고려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도 가능한 큰 이익이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정의의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모든 개인이 기본적인 자유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하며, 둘째, 모든 개인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그 결과로 불평등이 발생하더라도 모든 사람, 특히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칸트의 사상에서 출발해 18세기에 성장한 신흥 시민계급의 사상으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인격을 자율적으로 발현하려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정의라고 본다. 칸트는 정의를 이루는 바탕은 행복보다는 자유이며, 그 자유는 타인의 속박을 받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이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국가권력이나 집단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에서는 이런 개인주의적 태도가 사람들이 공동체 속에서 돕고 살면서 이룰 수 있는 가치들을 사라지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채 정의에 관해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정의란 공동체가 지향하는 목적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정의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 것은 그 시대의 정의롭지 못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고민의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도 그런데 현재사회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기 때문에 어떤 법이 정의로운 법인지 정하는 것이 더욱 어려우며, 그런 판단의 기초를 보여주는 것이 헌법정신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헌법은 모든 지속적인 단체의 의사를 이행하기 위해 범위를 확정하고, 구성원의 지위를 규정하는 질서라고 말하며 이후의 서술에서 헌법과 헌법정신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이어서 헌법정신을 이루고 있는 ‘국민주권의 원리’와 ‘권력분립의 원리’도 아울러 설명한다. 그래서 헌법은 특정한 제도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국가의 조직과 작용의 원리 및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기본법’이라는 뜻의 일반명사가 되었고 그래서 각 종교단체에서 조직의 최고 규율을 헌법이라고 칭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의아해 했으면서도 이유를 찾아보지 않았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상소제도의 원칙이 반드시 3심제가 아니다. 3심제를 원칙으로 하지만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 특허소송이나 선거소송은 1심에서 끝나기도 2심에서 최종 심판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 선거소송은 1심에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