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답사 안내서
안충기
위즈덤하우스
2022년 11월 3일
은퇴하고 할 일 없는 백수에게 도서관만한 친구가 없다. 귀국한 후 집에서 가까운 정독도서관에서 터 잡고 산다. 한동안 홍은동 집에서 정독도서관까지 걸어 다녔지만 요즘은 꾀가 나서 경복궁역까지 타고 가서 거기서 도서관까지 걷는다. 걸어가며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이며 경복궁에 놀러온 사람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주까지는 소풍 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돌아올 때는 청와대까지 올라가 정문 맞은편에 있는 신무문으로 해서 경복궁을 한 바퀴 돌아보는 걸 낙으로 삼는다. 눈 내린 경복궁 보려고 들렀다 반해서 꽃 피고 단풍 드는 걸 지켜보다 보니 다시 눈 내릴 때가 되어 간다. 그것 모두 입장료 면제받아서 가능한 일이다.
정릉에서 십 년, 홍은동에서 삼십 년 살면서 여의도로 출근하다 보니 늘 청와대 주변을 맴돌았다. 정릉에서 다닐 때만 해도 청와대 서슬이 퍼렇던 때라 북악산길은 차만 다닐 수 있었다. 홍은동으로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 앞길 통행제한이 풀렸다. 귀가할 때 빠른 길이 있는데도 굳이 청와대 앞길을 지나다녔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도 차가 별로 붐비지 않아 서울을 떠날 때까지 내내 그 길로 다녔다. 통행제한이 풀렸다고 해도 청와대 앞길은 선뜻 가게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1939년 경복궁 후원에 조선총독 관저로 세워진 경무대는 해방 이후 미 군정사령관 관저를 거쳐 이승만 대통령 관저가 된다. 1960년 4.19로 정권이 교체된 후 윤보선 대통령은 관저 이름을 청와대로 바꾼다. 독재정권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표시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 후 간간히 개방하던 청와대는 1968년 1.21 사태를 기점으로 특급통제구역이 되고,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이후 주변도로를 차단하고 인왕산과 북악산(백악산) 출입을 전면 금지한다. 1980년 말 일부 도로의 통행을 허용하지만 1983년 아웅산 묘소 테러로 다시 전면통제에 들어간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지만 심야시간은 여전히 통행을 금지한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심야시간마저 통행을 허용한다. 그렇기는 해도 대통령 관저인 이상 통행이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베일에 감춰져 있던 청와대는 올 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83년 만에 완전 개방에 이르렀다.
본업이 기자인 저자는 워낙 화가를 꿈꾸었다고 한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한국사 전공자로서 우리 땅의 역사와 지리에 관심을 두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틈틈이 취미 삼아 펜화를 그리던 저자는 수년간 중앙일보에 <비행산수>를 연재했고 드디어 작년에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저자의 작업은 고강도의 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그림의 대상이 되는 곳곳을 다니며 만난 사람과 사연을 작업과정에 녹여낸 서사이기도 했다. 그 이력을 개방된 청와대로 초점을 옮겨 다시 구현해 낸 결과가 책으로 나왔다. 펜화는 청와대 전경과 바위와 숲을 그린 네 점과 서촌과 체부동 골목을 그린 한 점씩, 이렇게 여섯 점이 실려 있고 사진이 나머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펜화에 드는 고강도의 노동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차마 불평은 못하겠다.
청와대가 개방을 했다니 한 번 가보기는 해야겠지만 지나다니면서 담벼락에 세워놓은 청와대 건물 사진을 보니 크게 궁금하지도 호기심이 일지도 않았다. 콘크리트 건물에 기둥은 갈색, 벽은 베이지색으로 마감한데다가 곳곳에 어울리지도 않는 대형 상들리에를 걸어놓은 청와대 건물에서 무슨 품위나 격조를 찾겠나 싶어서 말이다. 저자도 같은 마음인지 내내 건조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청와대에 대한 저자의 서술보다는 청와대를 채우고 있는 나무와 풀, 예술품과 문화유산, 거기에 청와대를 둘러싸고 있는 서촌, 북촌, 그리고 산과 물에 더 눈길이 끌렸다.
청와대 경내에는 208종 5만5천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대통령이 식목 행사 때 심은 나무도 있고 원주-강릉 고속도로 건설 때 옮겨다 심은 금강송도 열 그루 남짓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 자리에서 자란 나무들이다. 그 중 가장 어른은 옛 본관 자리에 있는 744세 된 주목이고,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은 녹지원에 있는 높이와 너비가 각각 15미터가 넘는 반송(쟁반 모양의 소나무)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수백 년 묵은 적송과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작품이 되는 회화나무를 꼽는다. 위치를 자세하게 밝혀놓아서 찾는데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녹음은 지나갔으니 눈 내린 날 그 앞에 서서 작품 하나를 만들어 보리라.
특급통제구역으로 오래 묶여 있던 탓에 청와대 경내에 어떤 유적이 남아있고 어떤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통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중 유적에 대해서는 뜻밖에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경호실 역사문화유산 연구 동아리에서 자료를 수집해 <청와대와 주변 역사ㆍ문화유산>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추천사에서 동아리 수준을 뛰어 넘은 본격적인 저술이라고 평가하며 놀라움과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저자는 창덕궁 시절 왕들이 대조전 후정의 우물물을 마셨는데, 대조전에 목욕실을 새로 지으면서 길어 올리던 물이 탁해지고 물맛이 예전만 못해져 지금 청와대 경내에 있는 오운각 옆 샘물을 마셨다고 소개하고 있다. 목욕실을 새로 짓고 나서 우물물이 탁해졌다면 하수가 그대로 스며들어갔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무리 조선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까?
대통령 관저답게 청와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이 꽤 되는 모양이다. 한때는 국전 대통령상 수상작을 모두 사들이기도 하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대가들의 작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지자들에게서 받은 선물도 적지 않은데 선물은 대개 선전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한다. 어쩌다 카메라에 한 번 잡히면 작가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니 투자도 그런 투자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 모든 미술품을 소개하는 저자의 필치에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미술품 전수조사에 참여한 전문가가 ‘청와대 미술 작품은 1970~1980년대 강남 주택 수준’이라고 평가했다는 걸 인용한 것이 그의 의중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게다가 청와대 시설이 예술품 전시에 적합하지도 않고 조명은 물론 보호시설도 미비하기 짝이 없단다. 그뿐 아니라 그 중 손꼽을 만한 작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건물의 격이나 건물을 차지한 이들의 격이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에 반해 저자는 청와대를 둘러싸고 있는 서촌과 북촌, 그 아래를 흐르는 물길과 울타리가 되어주는 북악산과 인왕산을 애정을 듬뿍 담아 소개하고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명륜동에서 태어나고 그 언저리를 평생 맴돈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최종현 선생의 <오래된 서울>, 염복규 선생의 <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최근에 황정수 선생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를 읽으며 북촌과 서촌의 역사를 더듬어왔고, 지난겨울부터 한 해 넘도록 그곳을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녀 나름 그곳 사정에 익숙해 있기는 하다. 최종현 선생은 조선사 이전부터, 염복규 선생은 근대사에 초점을 맞춰, 황정수 선생은 서화작품과 작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그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종합판인 셈이다. 종합판이다 보니 세세한 맛은 덜하지만 이 지역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또 들고 다니며 답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인왕산에 있던 초소를 리모델링해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2021 완성도 높은 건물 베스트7’에 뽑힌 인왕산 숲속쉼터, 대통령 시해장소이자 남한산성의 주인공인 김상헌 집터인 아는 사람만 안다는 궁정동 무궁화동산, 4.19 당시 시민을 향한 발포 현장 표지판, 수성동 계곡 들어가는 길 초입에 있는 박노수 미술관과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과 소설가 이상의 집. 그곳을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다니고 많이 다녔다는 나도 모르고 있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저자는 청계천 발원지가 청운동 자하문 고개 옆, 최규식 경무관 동상에서 백악산 쪽으로 약 150미터 지점에 있는 약수터라고 밝히고 있다. 언뜻 감이 오지 않았는데 곧 이어 그곳이 청운동 벽산빌라 부근이라고 첨언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청운문학도서관에 가느라 몇 번이나 그 길을 지나갔으면서도 그곳이 청계천 발원지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진명여고 강당인 삼일당은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생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큰 공연장이었다. 그곳에서 합창대회가 열려 응원하러 갔던 일이 있었다. 학교가 파하고 난 후 행사가 열려 여학생을 볼 수도 없었지만 여학교에 들어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삼일당에 직접 휘호를 내렸고 이곳이 국가 기념식과 음악회를 비롯한 공연이 열리던 당대 최고의 문화공간이었다고 소개한다. 내 기억에는 시민회관이 그보다 훨씬 컸던 것 같은데.
청와대가 속해 있는 종로구는 동이 무척 많다. 황정수 선생의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를 읽으면서 종로구의 동을 확인한 일이 있다. 동에는 행정동과 법정동이 있는데, 종로구에는 법정동이 무려 87개나 되었다. 예전에는 익숙했으나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져간 이름을 보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마 기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 모양이다. 판서가 여덟이 났다는 팔판동, 분식집인 당주당 냉면으로 유명했던 당주동, 정독도서관이 있는 화동, 수도통합병원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바뀐 소격동, 몇 집 건너 붙어 있던 통의동ㆍ필운동ㆍ체부동까지. 예전에는 넓이가 아니라 인구를 따라 동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책 읽기를 마쳤으니 이 책을 들고 청와대를 찾아 하나씩 짚어가며 숨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차례이다. 두 시간이면 돌아보기 부족하지 않다고 했는데, 관람시간을 확인해 보니 1시간30분으로 잡혀 있다. 저자는 친절하게 관람 예약하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65세 이상은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탓할 일은 아니고.
오래 전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일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그 책을 들고 답사 온 사람들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가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간혹 기사로 소개될 뿐 본격적으로 청와대를 소개한 책을 아직 본 일이 없으니 이 책이 청와대 관람에 좋은 안내자가 되지 않을까 한다. 어디 청와대 건물뿐이겠는가. 청와대를 안고 있는 인왕ㆍ북악, 그 밑을 흐르는 물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북촌과 서촌까지. 조만간 나도 이 책을 들고 그 길을 찾아 나설 것인데, 그곳에서 같은 책을 들고 있는 독자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