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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Feb 13. 2023

아랍의 봄

구기연 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2년 12월 30일


‘아랍의 봄’이 피어나고 사그라지는 동안 아랍의 한복판에 있었다. 중동을 말할 때 빠뜨리지 않고 거론할 만큼 커다란 소용돌이였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갖는 의미는 둘째 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우디에서 발간되는 영자신문에 간간이 기사가 나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소요가 일어난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관련 기사를 클릭하면 모두 접근이 차단되었다는 메시지만 보였다. 그래서 ‘아랍의 봄’이라고 하면 당시 압둘라 국왕이 공무원과 군인들에게 두 달 치 급여를 보너스로 지급한다는 기사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 기사를 보고 그저 급하게 민심을 다독여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귀국하고 나서 보니 중동 상황에 대한 해석은 으레 ‘아랍의 봄’에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당시 사우디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아랍의 봄’이 튀니지에서 무함마드 부아지지라는 젊은이가 경찰의 지나친 단속에 항의해 분신한 사건에서 촉발된 것이라는 정도 이상은 알지 못했다.


며칠 전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구기연 교수께서 보내주신 책을 받고나서 열흘 넘게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해가며 오늘에서야 읽기를 마쳤다. 내로라하는 중동 전문가 열한 분이 ‘아랍의 봄’ 이후 십 년을 정리한 책이어서 이참에 중동에 대해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건들이 종과 횡으로 얽히고설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가져왔던 궁금증 중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금까지 읽은 책은 거의 리뷰를 작성해왔다. 서평이라는 이름은 당치도 않고, 단지 읽은 내용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중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볼 생각으로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리뷰를 작성하는 게 난감했던 일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서가 없더라도 그저 읽으면서 메모해놨던 부분과 떠올랐던 생각을 남겨놓는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행상을 하던 무함마드 부이지지라는 젊은이가 경찰의 지나친 단속에 항의해 분신자살을 감행하고 이것이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이어졌다. 외형적으로는 경찰의 지나친 단속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살상은 당시 정권의 심화된 부패와 빈곤 때문에 누적되었던 불만이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칼리드 사이드라는 20대 젊은이가 부패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하고 기독교인에 대한 폭탄공격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이집트를 강타해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이후 이 여파가 시리아와 예멘과 바레인과 레바논으로 확산되면서 ‘아랍의 봄’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을 형성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압둘라 국왕이 전체 공무원과 군인들에게 특별 보너스를 주면서 그 여파를 막아내려 했던 정도로 ‘아랍의 봄’은 중동 전체를 관통한 도도한 흐름이었고 아랍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몇몇 국가에서는 그로 인해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민의가 반영되는 정치체제로 한 걸음 내딛기는 했지만, 총체적으로는 실패한 혁명이었다는데 모든 전문가들이 입을 모은다.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재스민 혁명이 일어난 튀니지는 초기에는 혁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진전을 이룬 것이다. 그것은 외세의 개입이 적었고, 혁명이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진전되다 보니 외부 개입이 생기기 전에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할 수 있었으며, 군부가 덜 정치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군부의 방해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이전의 독재체제로 회귀하지는 않고 있지만 경제상황이 민주화의 발목을 잡고 있고 진영이 나뉘어 극심하게 대립하는 상황이어서 총체적으로는 혁명이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으로 무바라크 정부의 퇴진으로 권위주의 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그것이 민주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무바라크 이후의 4년은 ‘무슬림형제단으로 대표되는 이슬람주의의 부상과 몰락’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대통령에 선출되었지만 군부와 권력투쟁에 실패하고 경제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것에 실망한 국민들이 돌아서면서 정계에서 퇴출되고 무슬림형제단이 다시 불법화되기에 이르렀다. 민주화로 이행되지 못한 것은 ‘권위주의 정부의 장기집권’ 때문으로, 권위주의 정부가 오랜 기간 집권하면서 시민사회 활동을 억압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리더십 역량이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권위주의 정부가 무너졌어도 바로 대안을 내세울 수 없었다. 현재 이집트는 헌정사상 가장 혹독하고 권위주의적이라고 평가되는 시시 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시시 대통령은 시민사회 활동을 불법으로 만들었다.”


시리아는 종파주의와 이를 이용한 아사드 정권의 잔혹함, 그런 아사드 정권을 대하는 방식이 갈피를 잡지 못했던 오바마 대통령, ISIS와 트럼프의 등장, 푸틴의 개입이 물고물리면서 일어난 상황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두 번을 읽어도 상황을 따라가기 벅찼다. 그에 비하면 예멘은 워낙 사우디 언론에서 많이 다뤘기 때문에 그런대로 따라갈 수 있었다. 예멘은 남예멘과 북예멘의 대립이 통일 후 여러 갈등요인으로 내전으로 이어졌으나 이후 권력을 잡으려는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의 대립에 중동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이란, 이란의 영향력을 막으려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가 뛰어들어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과정은 어찌 되었든 보도를 통해 전달되는 시리아와 예멘 국민들의 고통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예멘은 제주도 난민 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일단이 알려졌지만 시리아 국민들의 고통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 터키 지진으로 그 참상이 조금씩 알려지고는 있는데, 시리아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그런 부분적인 보도로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이에 못지않게 고통을 받고 있는 아랍국가로 레바논을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깊이 신뢰하던 동료이자 친구가 레바논 정계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고 그곳에서 사업을 추진하려 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그들이 겪는 상황과 그 상황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흐름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 부분을 더욱 집중해 읽었다.


레바논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먼저 챙겨본 것은 정부의 투명성과 자금 조달 능력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독 그것부터 챙겨본 것은 그만큼 불안한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각제야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철저하게 종파별로 권력을 분점하는 것은 낯설면서도 절묘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후 선거와 정부구성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레바논의 정치를 망가뜨리고 있는지 절감했다. 그리고 발주와 입찰과정 뿐 아니라 사업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부정과 결탁하거나 최소한 부정을 용인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어보였다.


당시 레바논의 가장 큰 현안은 쓰레기와 전력이었다. 쓰레기가 도시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정부에서는 이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보였다. 전력 부족도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베이루트 인근 산지에 댐을 건설해 수력발전을 도모하고 발전선박을 베이루트 항구에 정박시켜 전력을 공급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마침 쓰레기를 소각하고 이때 발생하는 폐열을 회수해 발전하는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던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장이었다. 거리에 넘치는 쓰레기를 처리하고 그로서 전력도 생산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레바논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그에 필요한 재원이 없을뿐 아니라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한다 해도 정정이 워낙 불안해 자금 회수를 장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사업 추진을 포기했다. 무리하게 추진했더라면 그 후과가 어땠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와 2015년 쓰레기 사태 시위에서 “종파주의 정권의 타도를 원한다”고 했던 레바논 국민들은 2019년부터는 “정권의 타도를 원한다”며 모든 정치인의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대로 정치인이 물러난다고 해도 그를 대체할 세력이 없다는 것이 바로 레바논의 사태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결국은 철저한 안배에 의한 정치체제가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불러왔고, 거기에 베이루트 항구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화폐가 한 순간에 휴지가 되었다. 레바논 국민이 당면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레바논이 현재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아랍의 봄’이 미친 영향을 국가별로 분석한 후에 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아랍의 봄’으로 장기 독재정권이 치명상을 입었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졌다. 그러나 예멘과 리비아는 순조로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시리아와 함께 어두운 내전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걸프지역 아랍 왕정국가와 이란 등 기존 권력을 유지하는 나라 역시 국민의 거센 변화 요구에 일방통행식 관례를 조금씩 수정한 타협책을 내놓으며 격동하는 민심에 대처했다.”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이 10주년을 향해 가고 있지만, 혁명의 근원인 튀니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민주화에 실패했다. 이집트는 군부 권위주의로 돌아갔고, 시리아와 리비아와 예멘은 장기 내전을 겪고 있다. 전조 현상 없이 갑자기 일어난 독재정권의 붕괴는 민주주의 안착으로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10년 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던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는 2010년도 중반 이래 청년층을 겨냥한 파격적인 개혁개방을 실현해 왔는데, 이는 간접적으로나마 이 혁명이 가져온 긍정적 결과다. 당시 혁명을 이끈 아랍의 젊은이들이 희망으로 여겼던 터키의 무슬림 민주주의 모델은 실패했다.”


“아랍 정치 변동이 모두 소위 시민혁명은 아니었다. 실제로 정체성이나 소속감과 상관없이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례는 튀니지와 이집트뿐이었다. 리비아 가다피 정권의 붕괴는 오랜 동서갈등으로 인한 부족전쟁의 성격이 강했다. 시민혁명이 아니라 지역 단위의 오랜 내전 양상이었다는 말이다. 예멘도 종파분쟁의 성격이 짙었다. 시민혁명보다는 이질적인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필연적 갈등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아랍의 봄’의 결과로 나타난 양상은 둘로 갈린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시도를 계속 모색하면서 대안을 찾아나가는 이들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 거버넌스를 유지하려는 튀니지 사례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권위주의 통치 이념과 수단을 통해 안정화를 추구하며 정치 이익을 모색하는 태도도 있다. 이집트 사례다.”


“유럽의 시선에서 볼 때 아랍의 민주화운동 또는 시민혁명은 결론적으로는 재앙이었다. 유럽이 강조했던 민주주의가 아랍에 세워질지 모른다는 기대는 이내 비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아랍에서 벌어지는 민주화운동 이후 일련의 사건들의 결과로 유럽이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불가피한 입장 변화가 뒤따랐다. 즉 불안적안 민주주의 시도보다는 차라리 안정된 권위주의가 더 낫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에 인용한 의미심장한 결론은 이미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튀니지 사례에서 이미 언급되어 있었다.


“유럽과 미국은 이슬람주의를 악마화하면서 이 최대의 악을 막기 위해서는 권위주의 정권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로 독재정권의 편에 서왔다.”


유럽과 미국은 자기네 계산에 어긋나면 독재정권의 편에 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는 말이니 놀랍지 않은가. 하긴 놀랄 것도 없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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