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래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신 줄 믿습니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 줄 믿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을 우리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역사의 주관자로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가 참혹하게 우리 앞에 펼쳐진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것이 큰 죄악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회개합니다. 우리의 무지와 불신과 그 결과로 빚어진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그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우리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위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들을 위해,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서, 나라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 정도까지 망가져있을 줄 정말 몰랐다고 이야기합니다. 국민으로서 내 책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벌을, 나라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국민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다 하지 않은 벌을 이제 받는 줄 깨닫사오니, 비록 우리가 자초한 고통이기는 하지만 우리 눈물을 기억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지금 세계는 미국 대선으로부터 촉발된 격랑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대응해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격랑에 파묻힌 일엽편주에 불과한 조국은 선장마저 잃고 갈 바를 몰라 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라는 이들은 자기 이익에 눈 어두워 상황을 저울질하기 바쁘고 국민은 국민대로 마음이 갈가리 나뉘었습니다. 백척간두에 서있는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애통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시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들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 살고자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줄 깨닫게 하옵소서. 죽기를 무릅쓰고 자기를 버려야 남도 살리고 궁극에는 자기도 사는 길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모든 국민이 하나 되어 이 모진 격랑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인도하시는 나라가 될 그날을 기대합니다. 정의가 하수같이 공법이 물같이 흐르는 그 나라가 될 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저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그와 같은 정의의 날이 오지 않을 줄 깨닫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자기소임을 다 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깨어 기도하며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말씀 위에 바로 세워나가는 것으로 국민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인이 물경 천 만을 헤아린다고 자부하던 나라입니다. 돌아보니 그 숫자는 교회의 자기 포장에 지나지 않았고, 포장을 걷어낸다 해도 정작 빛이라 소금이라 칭함을 받을 그리스도인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는 이미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빛과 소금의 본분을 지켜나가도록 애쓰겠으나, 우리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 줄 깨닫사오니 도와주옵소서. 힘을 주옵소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시며,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히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목사님께 갑절의 영감을 허락하심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인지 바로 전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의 성찬에 지쳤습니다. 지나간 시절에 있었던 부흥의 기억에 매달려 정작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이 어떤지는 잊었습니다. 믿음은 실천이요 이론이 아닌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도록 도와주옵소서. 입으로 성령을 이야기하고 주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다고 한들 우리 삶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그 믿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서 마지막 남기신 명령이 당신께서 분부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오니 모든 교우들이 예수께서 분부하신 것을 지키는 일에 우리 모든 삶을 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이 공주고등학교에서 포수를 보고 있을 때였다. 해설자가 포수 파울플라이를 처리하는 그를 무척 칭찬했다. 솟아오른 공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자니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대개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공을 쫓아가는데 그는 공 떨어질 곳을 확인한 후 포구하러 뛰어가는데 걸리지 않을 곳에 마스크를 던진다고 했다. 다른 선수보다 한 수를 더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 해설이 무척 인상에 남아서 그 후로 그가 나온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대학을 졸업하고 OB베어스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박철순과 원년 우승을 일궈냈고 훗날 두산베어스 감독에 올랐다.
지난달 코리언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베어스 김태형 감독이 인터뷰에서 적장으로 맞붙었던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쏟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형님이자 스승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준 분을 패장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던 상황을 못내 가슴 아파했다. 김경문 감독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자기는 그럴 자격이 못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었다. 매스컴에서는 그런 김태형 감독을 진정한 스포츠맨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적장에게서 그런 존경을 받는 김경문 감독이 더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살았기에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적장으로부터 그런 마음에서 우러난 찬사를 받을 수 있었나 싶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로, 감독으로, 또한 국가대표 감독으로 좋은 성적을 이룬 그에 대해 오래 전부터 호감을 가져왔다. 고등학교 때 그의 한 수 높은 경기력을 칭찬하던 해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감독으로 선수단이나 구단과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거기에 성적까지 좋으니 앞으로도 호감을 가지고 지켜보지 않겠나. 적장으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들을 사람이니 나이가 들어가며 더 아름다워지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겠다.
평생 우파로 살아온 내가 이렇게 절망을 느꼈을 때에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느끼는 분노는 얼마나 클까. 한국에 있었다면 촛불 들고 광장에 나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을 비판하지는 않았겠다. 사방에서 분노의 소리가 들린다. 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어느 젊은 여성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를 향해 노기 띤 음성으로 꾸짖는 영상이 올라왔다. 처음 보는 낯선 의원이었다. 그 의원의 질책을 치켜세우는 글이 도처에 넘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기세등등한 시절이었어도 저렇게 국무총리를 질책할 수 있었을까? 혹시 죽은 고기라고 생각하고 물어뜯는 건 아닐까? 이런 사람이 어찌 그 의원뿐이겠나 마는.
보고서 쓰는 걸 업으로 삼고 살았다. 보고서 말고도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쓰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기왕이면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기도 하다. 글을 좀 더 잘 써보자니, 치매예방에도 좋다니 비록 짧은 글이라도 틈틈이 써보고 있다.
불현 듯 떠오른 생각을 글로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고, 짧은 글이라도 하나 쓰는데 보통 하루 이틀은 걸린다. 때로는 한 주일 넘게 이리 재고 저리 재서 쓰고, 또 그만큼 다듬기도 한다. 주제가 생각나면 우선 그에 대한 내 생각이나 입장을 정리한 후 글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그 글에 관계된 사실을 확인한다. 글을 쓰면서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게 바로 이 부분인데, 글을 쓰는 전제가 사실이 아니면 그 글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미려해도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워낙 정보가 많아서 이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실과 거리가 먼 정보도 적지 않아 이를 걸러내는 것도 꽤 신경 쓰고 있다. 선입견을 가지고 글을 쓰려다 그것이 사실과 다른 걸 확인하고 그만 둔 일도 꽤 여러 번 있었다. 글의 전제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나서 비로소 글을 쓰는데, 쓰는 것보다 다듬는 게 더 오래 걸린다.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덜어내고, 복잡한 표현을 단순하고 선명하게 바꾸고, 긴 문장을 짧게 나눈다. 쉽게 읽히고, 읽으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때까지 고친다.
이렇게 해도 써놓고 나면 늘 아쉽다. 언제쯤이면 써놓은 글이 마음에 들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나. 허락하신다면 이십 년쯤 지나서 한 번 더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 그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면 자기를 돌아보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고,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될 테니 이래저래 남는 장사가 아닐까.
복지는 나눌 재원이 있어야 가능하니 성장이 바탕이 되어야 펼칠 수 있는 정책이다. 우리 경제사를 돌아보면 성장이 후퇴했을 때 복지가 악화되었고 성장이 이루어졌을 때 복지도 개선되었다. 복지가 확대되어 그 결과로 성장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장의 결과를 바탕으로 복지가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은 모든 국민이 보편적 복지를 누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니, 보편적 복지를 희생해 가면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건 옳지 않다. 마찬가지로 복지가 우선 될 수도 없다. 경제성장을 희생해서는 복지의 발판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것이 우선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일 게 아니라 어떻게 두 가지를 조화시킬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데 우파에서는 경제성장이 우선이라고 우기고 좌파에서는 복지가 우선이라는 데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