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예인(藝人)이라고 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예술가인 셈인데, 예술가라는 표현은 그 느낌과는 거리가 좀 있다. 요즘은 글 쓰고 책 만드는 분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 전부터 그런 예인의 범주에 드는 분들이 술잔을 권커니 잣거니 하는 자리 말석에 앉아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운이 좋으면 퇴주 잔 한 잔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겨울, 페친 안충기 기자의 저서 <처음 만나는 청와대> 출판을 기념하는 북콘서트에 명창 두 분이 나와 단가와 판소리 수궁가 한 대목으로 흥을 돋웠다. 자리가 파하고 그분들이 어디론가 옮겨 뒤풀이를 한다는 말에 말석이라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잘 아는 분도 없는 자리에 끼어들 만큼 뻔뻔하지는 못해 그저 아쉬움을 안고 돌아왔다.
안 기자께서는 본업이 기자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펜화를 그리는 화백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기사 쓰는 것과 아울러 십 년 넘게 펜화를 그려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데, 2015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비행산수’ 펜화를 묶어 2021년 봄에 동명의 책으로 발간했다. 며칠 전 내가 동해 해파랑길을 꾸역꾸역 걸었다고 써놓은 글에 그가 ‘꾸역꾸역’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아마 그가 그린 펜화를 본 사람이라면 나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럴 만큼 그의 펜화는 끈질기지 않고는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달부터 6월까지 퇴계로에서 펜화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관람객이 적어질 만한 때를 기다려 오늘 전시회를 찾았고, 덕분에 오붓하게 막걸리 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마침 후학을 지도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신 명창 한 분이 자리를 함께 했다. 우리 소리를 무척 좋아하는 내게는 그만한 영광의 자리가 없었다. 2019년에 판소리 심청가 완창 공연의 무려 다섯 번이나 하셨다고 했다.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한 해 판소리 완창을 다섯 번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한 화백과 함께 하기를 벼르던 술자리였는데 그만 명창 현 선생과 이야기에 정신 팔려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사실 명창과 함께 자리한 것이 감격스러워 안주가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도 몰랐는데 뭐 어쩔 것이냐. 현 명창께서 올 하반기에 서울에서 판소리 완창 공연을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 되면 맨 앞줄에 앉아 열심히 즐기고, 또 그만큼 환호를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자리를 파했다. 덕분에 오늘 소원 하나 풀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A0zg4y7QI4&t=21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