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뉴스 심층보도의 새로운 형태
김수형
메디치
2022년 10월 17일
사우디에서 십삼 년을 보내면서 한국 기자가 주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사우디가 우리 교역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요즘이야 굳이 현장에 있지 않고서도 사안을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은 널렸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오랜 시간동안 제대로 된 분석 기사를 읽을 기억은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도 바쁘다. 사우디 관련 기사라는 건 그저 받아쓰기 아니면 베껴 쓰기였다.
우리 언론에서 외국에 나가 있는 기자가 한둘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라고는 하지만 외국의 주요 인사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가 주목할 만한 질문을 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주목 받을만한 질문은 고사하고 질문하는 것 자체를 보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우리에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외국 기자들도 그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래저래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그렇게 묻히고 만다. 국내에서는 중요 사안이 발생하면 관계자 인터뷰가 줄을 잇더라만 그런 취재가 왜 외국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한국 언론에 큰 기대가 없었다. 중동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기사는 관두고 그저 사실이라도 정확하게 보도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요즘은 유튜브나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보다 훨씬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는 이들이 많고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공개된 정보를 얻는 건 일도 아니다. 이대로 가면 기성 언론이 도태되는 게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 미국 특파원으로 나간 기자와 페친이 되었다. 파견 나가기 전에 올린 글을 읽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 특파원이 되고 난 후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생생한 현지 사정과 아울러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올려 관심 있게 읽고 있었지만, 그의 글을 본격적으로 챙겨보게 된 것은 그저 외신으로나 접할 수 있었던 저명인사들과 인터뷰한 영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 대선, 코로나, 미군의 아프간 철수,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면서 그때그때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놀라웠고 페이스북에 취재기를 올리는 것도 신선했다. 특파원 마치고 복귀할 무렵에는 중요사안에 대해 상당히 긴 분량으로 보도 자료를 만들어 유튜브에 공개하기도 했다. 모두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저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취재 뒷이야기들을 통해 인터뷰가 성사되기까지 얼마만한 수고가 드는지 알게 되었고, 그들 역시 한국 언론에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명인사라고 해서 인터뷰에 마지못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적극적으로, 모호한 화법을 구사하지 않고 허용된 범위 안에서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답변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저자는 귀국하고 나서도 <글로벌 인사이트>라는 심층보도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요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전해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뉴스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은 시청자로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저자 말고도 그렇게 노력하는 기자들이 요즘 들어 부쩍 많이 눈에 뜨인다.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하나둘 나타나는 것이리라. 그런 그들에게 저자가 그동안 보여줬던 많은 결과물들이 자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다음 몇 가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는 기회만 있으면 한국이 주한미군에 대한 분담금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다. 미국이 안보를 제공하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물건이나 팔고 있는 건 불공평한 것이고, 그래서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한다고 위협했다. 그럴 때마다 미 정부의 관계자들은 해명하기 급급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트럼프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나 의회의 공통적인 의견인지 궁금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부장관이었던 에스퍼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뒤 방위비 분담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를 실제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그렇게 발언할 때마다 해명하느라 곤혹을 치렀던 에스퍼는 자신은 그에 반대했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주한미군이 한국만을 위해 주둔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지역의 다른 동맹국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은 지역의 충돌을 예방하고 전쟁 억지력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 지역의 안정을 해친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며 따라서 이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미군의 주둔은 현지 안보와 지역 안보 그리고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주한미군은 한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동맹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 일본, 독일처럼 주요 경제 국가들이 똑같이 절반씩 내는 것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논의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제3세계에 미군이 주둔한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이다. 내 계산으로 한국은 주한미군 비용의 3분의 1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미국 납세자들의 돈으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방어비용을 충당할 수는 없다.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국가가 진정한 파트너이자 동맹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지불하는 분담금 대부분은 한국 경제로 다시 돌아간다. 물류와 전기, 수도, 미군 기지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이다.”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를 반대하는 진영에서야 어차피 귀담아 들을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안보를 지역 안보나 세계안보와 떼 내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고, 그 비용을 미국 납세자의 돈으로 충당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게다가 분담금의 상당 부분이 한국 경제에 편입된다지 않는가. 안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다면 경제력이 큰 국가가 얻는 이익이 경제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가 얻는 이익보다 당연히 클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맞기는 하다.
결국 “문제에 접근하는 트럼프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지 문제 자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식은 다르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심화되어가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바쁜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짐이 하나 더 얹힌 셈이다.
에스퍼는 인터뷰 끝에 서울과 도쿄 사이에서 지소미아 분쟁이 일어났을 때 매우 실망스러웠다고 말한다. 그것이 북한과 중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소미아를 한일 간의 문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겠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문제를 친일과 반일의 대결구도로 이해하고 있다.
말 같지 않은 말이지만 트럼프의 재선 실패에 내 공도 조금은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가 재선될까 걱정했다는 말이다. 나 같은 문외한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어떻게 다른지 뭘 알겠으며,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던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그런 나마저도 그의 낙선을 간절히 염원할 만큼 그의 행동이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다른 여러 나라의 가치관에 심대한 해악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대선 토론회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 주요 언론사들은 팩트체크 기사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낸 말 중에서 근거가 없거나 틀린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자기에게 불리한 기사는 모두 가짜 뉴스라고 주장했다. 지지자들은 그 말 하나로 언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언론이 무슨 말을 해도 지지자들이 믿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결점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무얼 하든지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언론이 문제를 지적하면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는 지루한 패턴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공식처럼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 그들을 공격한다. 코로나 사태 때에도 중국과 WHO라는 적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언론이 문제를 지적하면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는 지루한 패턴이 어디 트럼프의 것 만일까.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해서가 아니라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일이 어디 미국의 일이기만 할까. 그러니 내가 그의 낙선을 그렇게 염원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미국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때, 그것이 미국 정부이든 기업이든, 항의하겠다고 몰려가는 모습에 언짢았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왜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불만스럽고, 그저 뭔가 노력을 했다는 표시로 비난을 면하자는 태도가 역겹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겼을 때 한국 대표단이 모더나 본사에 항의 방문한다고 했을 때 저자도 같은 고민을 했다고 말한다.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할 대책이 나오는 게 너무도 분명한데, 한국 정부가 화상으로 의사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데, 직접 온다고 결론이 바뀔 리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마음을 바꿔 취재를 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문 자체를 세금 낭비라고 폄하할 수 없다. 길지 않은 미국살이에서 느낀 건 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눈길을 준다는 것이다. 그게 법을 어기는 막무가내 행동이 아니라면 적극적인 요구와 의사 표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그런 사고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그건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면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일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그것 말고도 한국 언론이 이번 방문에 큰 관심을 갖고 취재하고 있다는 걸 모더나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미국 주류 언론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더나 백신 공급 부족 사태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더나가 이런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다. 내 기준 내 생각으로 판단하기엔 각자의 기준과 생각이 너무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잊고 늘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상황이 며칠 안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일 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병력과 무기를 동원하고서도 전쟁을 끝내기는커녕 오히려 패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소련이 붕괴되었다고 해도 러시아는 아직도 대국이고 전쟁을 한두 번 겪은 나라가 아닌데 그 정도도 예측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전쟁 발발의 원인이었던 안보 불안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안보 불안을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사 정도로 여겼다. 저자는 파이퍼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와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공포가 실제적인 것이며 그 근원이 무엇인지 밝혀낸다.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국가이다. 재래식 무기도 엄청나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19세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와 서구에는 완충지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토국 어디서도 러시아를 다시 공격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나토국들은 1990년 이후 군사력을 꾸준히 줄였다. 냉전이 끝날 무렵에 2천 대에 이르던 독일군의 탱크는 지금 채 2백 대도 안 된다. 그런데도 러시아는 나토가 러시아를 공격하려 한다느니 정권을 바꾸려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푸틴은 가끔 너무 엉뚱한 얘기를 꺼내고 그걸 너무 많이 말한 뒤 이내 믿어버리곤 한다.”
말하자면 푸틴의 편집증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큰 문제는 푸틴의 편집증이 아니라 푸틴의 편집증을 제어하지 못하는 러시아의 지도체제가 아닐까. 여러 면에서 푸틴은 트럼프와 달랐다. 그래도 미국은 트럼프 이후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갔지만 러시아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해결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오로지 지도자의 선의에 기대해야 하는 지도체제는 얼마나 불안한가. 푸틴이 그렇고, 김정은이 그러하며, 사우디 왕세자도 다르지 않다.
저자가 인터뷰한 알리나 플로바 전 국방부 차관은 여성으로서 2019년부터 2년 동안 우크라이나 국방 현대화작업을 진두지휘했는데, 그는 “러시아 군대가 투명하지 않은 것이 기밀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젤린스키 대통령이 모든 정보를 국가에 바로 공유한다고 말한다. 전쟁에서 기밀을 유지하는 건 승리하기 위한 것인데, 러시아가 승리와 무관하게 기밀을 유지하는 건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래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전쟁의 우열이 투명성으로 갈린다는 것이 놀랍다.
저자의 취재활동이 지금까지 봐왔던 여느 기자와 달라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 느낌을 더욱 강하게 각인시킨 것이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취재기사였다. 저자는 아군과 적군을 모두 아우르는 취재를 벌려 자칫 한 편의 주장에 매몰될 수 있는 전쟁보도에 균형을 맞췄다. (말하자면 남의 전쟁인데도 우리는 피아를 구분하고 그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당사자들의 상반된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그 인터뷰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못 기억한 것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바로 푸틴이 핵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안위와도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플로바 전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고, 카트 볼커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도 “러시아가 재래식 군사행동에서 실패하고 있고 우크라이나군이 실제로 러시아군을 격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복싱 챔피언 출신 비탈리 글리츠코 키이우 시장은 러시아의 생화학 무기 사용을 우려하면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마스크와 방독면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크라이나 측 인사들은 하나 같이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인 것이 아닐까), 그것이 우크라이나 측의 의도적인 발언인지 아닌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보이지 않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독자로서는 아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