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스트라우드
진규선 역
감은사
2022년 8월 16일
자식이 독일에 살다 보니 자주 왕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눈여겨보게 된다. 몇 년 전에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를 읽으면서 독일인들이 패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에 대해 어떤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그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된 내용이 없었다. 언젠가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적막감을 떠올리면 도대체 무엇이 독일로 하여금 그토록 잔인한 만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치 정부가 유대인을 그토록 핍박한 것은 인종주의 때문이라고 한다. 과문한 탓이기는 하지만, 독일인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다룰 만큼 유대인들이 빌미를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그렇다면 그저 유대인이 싫었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데, 과연 그런 감정으로 그토록 잔인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이 단지 ‘나치 정권’의 책임일까? 그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한 독일인들은 책임이 없을까?
나치 시대에 이름을 남긴 몇몇 신학자들이 당시에 행한 설교를 묶은 책이 발간되었다고 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칼 바르트, 루돌프 볼트만. 신학에 문외한인 내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저자는 히틀러의 그늘 아래에서 설교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을지 염려하지만, 그들이 위험했던 것은 단지 설교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른’ 설교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저자는 신학자들이 나치 그늘 아래서 행한 ‘바른’ 설교를 정리하면서 신앙을 자기 안위와 최선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왜곡한 당시 게르만 기독교의 악행을 아울러 고발한다.
누군가 이유도 없이 싫을 수 있고 그래서 험담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감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가 나치 정권이, 아니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한 동기를 설명하는 글을 집중해서 읽었다.
저자는 나치가 세계를 인종으로만 평가했다고 서술한다.
“인종이 섞이면 인종 고유의 특질이 약화되는데, 그런 면에서 게르만 민족이 우월하고 유대인이 가장 열등하며, 유대인 때문에 우월한 게르만 인종이 파괴될 수 있으므로 유대인은 제거해야할 존재로 여겼다. 그렇게 터무니없는 행동이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인이 유대인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독일 내에 유대인 인구가 1% 정도로 극소수였으며, 그래서 독일인 대다수가 유대인을 개인적으로 만나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사실 유대계 독일인들이 유대인의 율법이나 관습을 지키지도 않았고 스스로를 온전한 독일인으로 여겨 독일을 위해 열심히 싸우기도 했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짓밟는데 민족적 우월성을 근거로 삼은 경우가 적지 않으니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박해한 근거를 민족적 우월성에서 찾은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대미문의 6백만 명 학살에까지 이어진 것은 경악할 일이다. 나치가 주도한 일이기는 해도 그 과정에 수많은 독일인들이 간여되어 있었을 텐데. 저자는 그런 학살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 유대인 인구가 1% 정도로 극소수여서 독일인 대다수가 유대인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찾아보니 당시 독일 인구는 6천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학살된 유대인이 6백만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10%에 가까운데, 저자는 왜 그런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의아하다.
어찌 되었건 독일인이 당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방관한 건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 패전의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우리와 이웃한 일본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자신을 낮추고 있는 그들 또한 독일인이다. 그러면 학살을 방관한 독일인과 그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살아가는 독일인은 다른 사람들인가? 물론 이 책이 유대인 학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신학자들의 저항을 이끌어낸 중요한 동기인데, 그에 대한 접근이 너무 안일하게 느껴진다.
나치 독일의 기독교를 거론할 때 고백교회가 자주 등장한다. 문맥을 통해 대충은 짐작이 가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것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위키백과에서는 이를 “1924년 히틀러에 반대해 설립된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1935년 ‘예수그리스도만이 복종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계시’라는 바르멘 선언을 발표해 히틀러 불복종을 천명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교회도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를 게르만 교회로 지칭하고 있다. 이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독일이 개신교 전통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했으며, 독일 교회를 제국교회로 통합하려는 나치에 동조했다. 저자는 독일 교회가 히틀러를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대계 독일인들이 수용소로 이송되는 것도 막지 못했고, 나치에게도 거의 또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역사가들이 이를 ‘자발적인 공범’이라고 언급한 사실을 인용하고 있다. 바로 게르만 교회가 그런 교회였다.
저자는 히틀러가 집권 초기에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것을 거론하며 “하나님이 독일로부터 복을 거둬간 것은 1918년 독일의 원수들에게 항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며, 새로운 정부가 기독교를 민족의 도덕적 토대로 삼는다는 점을 확신시켰다고 말한다. 또한 히틀러는 프리드리히 대왕과 바그너에 이어 루터를 3대 위인으로 여겼는데, 그것은 루터가 그리스도교회의 종이 아닌 국가의 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게르만 기독교도 바로 이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많은 교인들이 히틀러의 제3제국을 루터 종교개혁의 완성으로 여겼으며, 루터가 그리스도교회의 종이 아닌 국가의 종이라는 히틀러의 논리로부터 오히려 심리적인 안정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 히틀러가 인종적 편견으로 유대인을 혐오하고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게르만 교회는 결정적인 모순에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예수가 그들이 혐오하는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유대인이 아니라 아리아인이라는 주장이 난무했고, 심지어 기원전 100년경에는 아리아인들이 사는 갈릴리를 유대인이 지배했다는 논리까지 나타났다고 한다. 그 결과 성경에서 유대인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예수를 아리아인으로 만들고, 유대인인 바울의 행적과 바울서신을 배제했으며, 구약성경마저 배제한 성경을 만들었다. (2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게르만 교회가 자기주장을 충실하게 따랐는데도 히틀러는 아이러니하게 이 성경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이르는 데에는 지난 400여 년간 독일 교회를 지배하고 있던 루터의 두 왕국 교리에 따라 국가와 교회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루터 신학에 정치에 저항해야한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확인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이 교리 때문에 누군가의 악행을 지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루터 신학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설령 저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교리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자. 그러면 그런 교리가 없다면 그런 상황은 안 일어날 것인가? 저자는 게르만 교회가 아니더라도 교회 대부분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관심이 있었을 뿐 자기희생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살아남는 데만 관심을 두고 복음 선포보다 기관유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는 말이다.
독일인 대다수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무관심하거나 자발적인 공범이라고 해서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백교회 목사들은 설교를 통해 자신들의 저항을 드러냈다. 자신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나치 이데올로기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칼 바르트는 설교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어제나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 자신의 신학을 어떤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지” 고민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신앙 공동체는 공통의 이익이나 입장, 또는 신념으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음성으로 묶여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 바르트의 제자였던 막스 라크만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일인으로서 충성심과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지만, 기독교인들에게 그런 갈증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이라면 그리스도 편에 서서 나치국가에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불의에 대해 먼저 “국가에게 그것이 합법적인 것인지 물어야 하며,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처럼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희생자라면 돕는 일을 가리지 말아야 하고, 바퀴 아래 깔려 있는 피해자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바퀴살 아래 몸을 날려야 한다”는 대응 방식을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한 것처럼 히틀러 암살에 가담해 종전 며칠을 앞두고 사형 당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나치 정권 아래에서 저항했던 고백교회 목사들의 설교집인 줄 알았다. 그렇게 듣기도 했고, 저자인 딘 스트라우드의 이름을 편집자로 표기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실제로는 설교와 그에 대한 해제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2부에 대표적인 설교 다섯 편을 싣고 1부에 설교를 중심으로 한 해제를 실었다. 1부와 2부의 분량이 같고, 1부에서 2부에 실린 설교 내용과 당시 상황을 잘 정리해 놓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자가 스스로를 편집자로 표기한 것은 지나친 겸양으로 보인다. 사실 이 책의 핵심이 1부에 실려 있는데다가, 2부에 실린 설교만으로 1부에 실린 내용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책 읽기를 마치고 다시 처음부터 살피다 보니 이 책이 원전을 그대로 출간한 것이 아니라 발췌본이라는 설명이 달렸다. 2부에 실린 설교만으로 1부에 실린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던 것이나 편집자의 해제로 보기에 1부 비중이 너무 크게 느껴진 의아함이 이로 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