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해서 가능한 말석에 앉으려 한다. 겸손이란 뭔가 갖추고 있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걸 말하는 것일 텐데, 갖추고 있는 것도 없는데다가 심은 것보다 훨씬 많이 누리고 사니 겸손할 자격조차 없는지 모른다. 그러니 말석이야말로 내가 당연히 앉아야할 자리가 아닌가. 그런데도 겸손해서 말석을 찾는 것으로 착각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히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소명으로 믿고 이 땅에 발을 디딘 지 팔 년이 되도록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짐만 되었다. 소명으로 확신했고, 그래서 언젠가 그 소명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마저 난망하게 되니 이젠 뭔가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임이 내게 있으니 누구를 원망할까? 낙심이 오히려 분노가 되었다. 그리고 겨냥할 곳을 찾지 못한 그 분노가 터져 나가 애꿎은 사람을 괴롭혔다. 눈을 감아도 기도가 되지 않았다. 앉아서 눈을 감아도, 엎드려 눈을 감아도 기도의 문은 열리지 않았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었다.
새벽 미명에 알 수 없는 손길이 가슴을 쓰다듬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했지만 방엔 나 혼자 뿐이었다. 마치 흙탕물로 범벅이 된 자동차 앞 유리를 와이퍼가 쓸고 지나가듯 그 손길이 지나가자 놀랍도록 마음이 평안해졌다. 낙심과 울분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1초가 되었을까 싶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기억이 너무도 선명했다.
오전이 지나면서 문득 그것이 성령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생전 겪어보지 않은 일이었다. 찰나에 지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너무 강렬해 성령의 위로 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았다.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가 아침에 내 모습이 놀랍도록 평안해 보였다고 했다.
서영은 선생이 800km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성령의 위로를 네 번이나 경험했더란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지만 성령의 위로는 나와 무관한 역사였다. 곤고한 가운데 처하니 단 한 번만이라도 성령의 위로를 체험하고 싶었고, 그 길에 도전하기로 했고, 몇 년 계획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허락하신다면 나도 네 번, 아니 열 번이라도 체험했으면 했다. 하지만 오늘 그 위로를 체험하고 나니 그것이면 족했다. 한 번이면 족하고도 남았다. 그것은 충만함이었고, 충만하다는 건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위로보다는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으니 말이다.
고통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결과일 수 있고, 발전을 위한 훈련일 수 있으며, 누군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애매하게 겪는 피해일 수 있다. 잘못에 대한 징계는 당연한 것이고 발전을 위한 훈련은 훗날 열매를 누릴 수 있으니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애매하게 피해를 입는 건 억울하기는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어울려 살도록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러고 보면 고통이란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결과가 아닐까.
기독교에서는 모든 고통에 뜻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다는 것이다. 뭔가 선하게 인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일부러 고통을 허락하신다는 말인데, 나는 좀처럼 그 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고통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에 부치는데, 하나님께서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것으로 모자라 거기에 더 큰 고통을 더하신다는 말인가. 비록 고통이 우리 잘못으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것으로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내기 원하시고, 그 과정에서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 해야 할 유일한 일도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친구가 제자 둘이나 청천벽력과 같은 암 선고를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황망해하는 글을 올렸다. 전도가 창창한 젊은이, 이제 갓 결혼한 새댁이 암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스승의 입장에서도 이리 황망한데 본인이며 그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떨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하나님의 자비에 기대는 일,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시도록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고, 그런 가운데 고통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었고, 결국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고통을 당한 그들과 그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기를.
혜인이가 눈에 가물가물해서 혜인 엄마한테 다녀가라고 했다. 비자 초청장을 신청해놓고 날짜를 헤아리는데 뜻밖에도 거부되었다. 직계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아들이 함께 오지 않으면 며느리도 못 오고 손녀도 못 온다니, 호적법 바뀌고 나서 아들을 통하지 않으면 며느리와도 손녀와도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없어 몹시 언짢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생각할수록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 혜인이를 보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며느리도 손녀도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지 이곳의 법이 그런 거라면 한 번 언짢고 말 일이기는 하다. 나는 자식의 인생이 내 인생이고, 며느리와 손주의 인생까지도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래서 그들을 내 자신만큼이나, 어쩌면 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을 속박하려 한 적은 없지만, 오늘 이 일을 통해 그 생각이 어리석은 것인 줄 알게 되었다. 진즉에 그 생각이 잘못된 줄 알았으면서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젠 꼼짝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훗날 리야드에서 보낸 날을 돌아보면 금요일 아침 교회 가기 전 거실에 앉아 묵상하던 순간이 가장 그립지 않을까 싶다. 찬양을 나지막하게 틀어놓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묵상을 하는지 기도를 하는지, 그렇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 밀려오는 편안함, 포근함, 따듯함. 그리고 이어지는 충만함과 감사함. 다시 고단한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망정. 그 순간을 오늘도 허락하시니 감사.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으리라는 건 필부인 나도 짐작했던 일인데, 그렇다면 그에 맞게 시간이나 역량을 적절히 배분하고 우선순위를 살펴 꼭 필요한 것을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지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고,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걸 왜 특검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은 권한대행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사하는 내내 전선을 너무 확대하는 게 아닐까 염려했는데 설마하니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지 못했겠나? 그렇다면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다른 노림수가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