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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Jun 23. 2023

빈 살만의 두 얼굴

Blood and Oil

브래들리 호프, 저스틴 섹

박광호 옮김

2023년 6월 1일


우리는 언론이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그에 동의하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통제가 일상이던 세상에서 자랐고, 언론통제가 일상인 나라에서 십 수 년 살아온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한대의 자유라는 게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사우디를 떠난 지 한 해 하고도 반이나 지났다.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사우디에서 살던 십삼 년간 달라진 것보다 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렇기는 해도 언론통제는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사우디 사정은 사우디 언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외신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더 많다. 외신 링크가 막혀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그럴 땐 독일에 사는 아들에게 링크를 보내 내용을 받아보았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인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처럼 실시간으로 소상히 알고 지낸다. 그런데도 실상이 왜곡되어 전해진 나라의 대표적인 사례가 사우디가 아닐까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우디는 돈이 흘러넘치는 나라쯤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도 낮고 국가예산도 작을 뿐 아니라 유가가 정점에 이르렀던 작년 한 해 동안 사우디가 원유를 수출해 올린 수입이 삼성전자 한 해 매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나 될까.


사우디아라비아 왕국(Kingdom of Saudi Arabia)의 실질적인 통치자(de facto ruler)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심지어 그가 권력에 오르기 한참 전부터 그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까지를 모두 지켜본 나조차 그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우디를 실질 지배하던 그는 요즘 중동을 넘어 세계정세를 뒤흔들어놓고 있다. 그 나라의 선의에 기대 오랜 시간 살아왔고, 그래서 그곳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아직도 놓지 못하는 내 눈에는 그의 그런 모습이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비해 우리는 그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2021년 말에 사우디를 떠날 때까지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무척 어려웠고, 그에 대한 책도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작년쯤 몇 권이 발간되었고 이달 초에 그 중 하나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번역본으로 소개되었다.


예약 주문한 책을 받고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책의 번역을 마치고 출판을 기다리고 있는 역자로서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그 책을 가장 정밀하게 들여다본 첫 번째 독자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내가 번역해 다음 주에 발간될 <무함마드 빈 살만, MBS>와 다루고 있는 범위와 깊이가 사안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였을 뿐 내용이 서로 어긋난 부분은 없었다. 우선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두 책 모두 인물에 치중하고 있다 보니 그것만으로 사우디의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번역하면서 그것이 아쉬워 편집자를 조르다시피 해서 사우디 상황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조망한 해제를 긴 분량으로 실었다. 해제를 쓰면서도 역자로서 주제넘은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사우디에 주재하면서 허접한 성과 밖에 올리지 못한 사람의 넋두리가 아닌가 싶어 편집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다행히 그 해제가 두 책을 가르는 분수령이 된 듯해 면이 좀 서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브래들리 호프와 저스틴 섹은 모두 퓰리처 상 후보에 올랐던 쟁쟁한 언론인들이다. 네임밸류에 있어서 <MBS>의 저자보다 앞선 듯해서 긴장한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책이 사실관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없었다. 분량도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이 책이 사실 보도에 중점을 두었다면 <MBS>는 르포 기사처럼 독자가 쉽게 이야기를 따라가도록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날짜순으로, <MBS>는 사건 별로 서술한다.


몇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2016년에 아람코 직원 주택단지에서 화재가 일어나 직원과 가족 십여 명이 사망했다.” 매일 아침 영자 신문 두 가지를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던 내가 들어보지 못한 사건이다. 놀랍게도 부실한 설계가 부실한 시공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세계 수준의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아람코가 직원 주택을 저렇게 건설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십 년을 넘게 살면서 그 분야의 일을 하고 있었던 나도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다.


“피해 직원들이 손해보상을 청구하지도 못했고, 보상을 제대로 받기는커녕 화재로 소실된 차량을 폐기처분하는데 소요된 비용을 물어야 했고, 자동차 미납 세금을 납부하고 나서야 사우디를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늘 그러던 사람들이니 말이다. 내가 차량 사고를 당했을 때 가해차량의 운전자인 사우디 젊은이가 당신이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사고 낼 일이 없었지 않았겠냐며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교통경찰이 조서도 받지 않고 그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워낙 그런 나라이다.


“2017년 트럼프가 사우디를 방문했을 때 반테러센터에 설치된 최첨단 상황실을 둘러봤다. 그 안에는 사우디 직원 이백 여명이 AI 프로그램을 사용해 새로운 목표물이나 이데올로기 변동의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체로 치듯 면밀히 걸러내고 있다고 했다.”


기가 막힌 일이다.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언론 감시기구를 방문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트럼프에게 그걸 보여줘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우디 왕실의 사고방식이다. 그게 뭐 어떠냐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트럼프라면 그런 건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네옴 이사회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우선 공공투자기금(PIF)의 수장인 루마이얀이 “네옴은 지원금(아마 정부 재정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으로 건설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네옴에서는 그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상시 감시를 해서 범죄자들을 범행과 동시에 체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자격을 가진 사우디 사람들만 입주를 허용할 것인가 등을 논의했다”는 사실이다.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짐작했다는 정도의 글이었지 이와 같이 근거를 밝히며 그런 사실을 확인한 것은 그동안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이것을 근거로 사용할 수 있겠다.


이 두 가지 언급 중 ‘상시 감시’ 계획은 네옴 거주민의 인권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데 이 사실을 문제 삼는 언론은 아직 보지 못했다. 이 글이 그런 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사우디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구가 세 곳이다. 국방부와 내무부와 국가방위부. 지금은 모두 MBS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지만 살만 국왕이 즉위하기 전까지는 국방부는 술탄 왕세제 집안이, 내무부는 나예프 왕세제 집안이, 국가방위부는 압둘라 국왕 집안이 오십 여년씩 지배해 오고 있었다. 다른 매체에서 이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본 기억이 없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저 그런 사실만 거론하고 지나가서 아쉬웠다.


이 책의 원제는 <Blood and Oil>이다. 적절하고 직관적인 제목이다. 그런데 번역서는 <빈 살만의 두 얼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주인공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이다. 저자가 사우디에서 이름을 어떻게 붙이는지 책의 앞머리에 설명해 놓은 것처럼 ‘무함마드 빈 살만’은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라는 뜻이다. 살만 국왕은 아들 열둘을 두었다. 빈 살만이 열두 명이라는 뜻이다. 장남인 파드 빈 살만으로부터, 사우디 첫 번째 우주인인 술탄 빈 살만, 석유장관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메디나 주지사인 파이살 빈 살만, 주미대사를 지내고 현재 국방부장관인 칼리드 빈 살만까지. 그걸 모르고 제목을 붙였을 리는 없었을 것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간단한’ 이름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렇기는 해도 적절한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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